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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돈 좀 써보자'는 시어머니

시댁과 돈 문제

by 숨구멍


시댁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반색하며 말하신다.



"우리 아들 돈 좀 써보자!"



처음 들었을 때 충격적이라 아무말도 못했더니, 정말 갈 때마다 저렇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젠 시조카까지


"삼촌 돈 쓰자!" 며 신나한다.



그럴 때 마다 참.. 거북한데, 아직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결혼 전 상견례 자리에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분명히 기억한다.



"너네 둘이 잘 사는게 중요하지.

이제 네(아들) 가족은 우리 아니야. OO(저자)이야.

이제 집 걱정은 하지 말고 둘이 잘 살아~~"



에둘러 말하시지만 돈에 대한 얘기라는걸 알고 있었다.



결혼 직전 시어머니께 큰 빚이 있어서 남편이 총 3천만원을 갚아줬다.

그 전에도 이런 저런 사고를 치시고 남편이 다 수습해줬기에 남편이 어머니 빚 갚아준걸 다 합하면 1억이 넘어간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급한 빚 약 3천만원을 갚아주며 매달 50만원씩 드리던 생활비 지원은 안하기로 약속을 했다.

어떻게 보면 완전한 독립이었다.



근데 결혼 하고 1년 쯤 지나자 왠지 어머니의 그 쿨하던 태도가 좀 바뀌셨다.

결혼 초반엔 안그랬었는데 요즘엔 집에 찾아 뵐 때 마다,



"아들 카드 쓰러 가자~"



라고 아주 흥겹게 말씀하신다.






흥에 겨운 목소리로 얘기하셨지만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어머니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달라는 얘기를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 왔으니 맛있는 것 좀 먹어 보자~~"



실제로 늘 외식은 남편이 계산을 한다.

아무도 계산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손녀(시조카)에게도 계속


"삼촌(아들) 돈 많아~~ 삼촌한테 사달라고해~~"


"삼촌 카드 쓰러 가자~~~"


이러면 편의점이라도 가서 두봉지 가득 간식을 사오는 상황이 된다.



심지어 이런 말씀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7살 시조카가 그 말을 그대로 배웠다.



"삼촌한테 사달라 그러자!"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와 시조카 그리고 때론 시누이까지,

모두 남편에게 '돈 많으니까 사달라'고 말하는 광경이 하루에도 몇번씩 펼쳐진다.






정말 돈이 많기라도 했으면 마음이 편했을까?


편의점이라도 같이 가게 되면 당연히 남편이 사는걸로 왠지 기정사실화 되어있는데 내심 속상하다.

반대로 시어머니와 시조카는 그렇게 신나한다.



"삼촌 털어 먹자~~"


하면서 시어머니와 꼬맹이 조카가 달려나간다.



"외숙모(저자)~~ 삼촌 돈 많아. 사고싶은거 다사!!"


"외숙모! 왜 안 골라! 많이 사자~~ 필요없는것도 다사~ 삼촌카드 쓸 거니까!"



7살 시조카는 삼촌 카드 쓴다고 너무 신나 방방 뛰면서 그 편의점을 다섯바퀴나 돌았다.

꼬맹이가 '삼촌 카드를 턴다'는 개념을 배워서 온갖 간식을 마구잡이로 퍼 담는걸 보는 심경은..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복잡하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사실 그 편의점에서 돈은 한 16000원 정도가 나왔다.



이 16000원도 너무 다들(시어머니, 시누이, 시초카) 미친듯이 담길래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그거 OO(저자)이 돈이야~' 라고 해서 그정도 나온거다.

안그랬으면 얼마가 나왔을까.



16000원, 작다면 작은 돈이지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정도면 사줄수도 있는거 아닌가..?'

'근데 내가 안 왔을때도 항상 이랬나? 너무 익숙해 보이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털어 먹겠다고 노래를 부르는걸까?'

'요즘 우리도 돈 없어서 커피도 안 사먹는데..'



시어머니 말대로 남편이 정말 돈이 많다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 않았겠지만 우린 1년 넘게 원룸에 월세를 살고있다.

가진 돈도 지금은 없다.

그것도 시어머니 빚 갚아주느라 빈털털이가 된거다.

심지어 내 쌈짓돈 4000만원도 빌려드렸으니...



그 돈으로 시어머니는 24평 아파트에 살고 계시고,

꼬맹이 시조카도 신축 새아파트에 살고 있다.

시조카의 아빠는 외제차도 끌고다닌다.



근데 맨날 털어먹는건 내 남편의 지갑인거다.





실제로 돈이 많아도 이렇게까지 말을 하나.. 보통?

아니면 우리가 돈이 없어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게된걸까.

기분이 왜이렇게 꽁기하다.



요즘 우린 당장 3~4천원 쓰는것도 부담스러워서 카페도 발길 끊은지 오래다.


"인스턴트 커피도 맛 똑같아! 우리 사먹지 말고 타 먹자~"



외식도 가끔 그것도 8천원 9천원짜리 식사를 찾아다닌다.


"여긴 치즈돈까스가 9천원밖에 안하네! 우리 딴데 가지 말고 외식은 여기로 오자~~"



2년차 결혼 생활 동안 옷도 신발도 한번도 산 적이 없다.


"옷 많아~~ 있는 것도 다 못입어~~"



애써 웃으며 넘기며 열심히 아끼며 살고있다.

언제까지 원룸에 살 수 없으니까.

그래서 솔직히 우린 결혼하고나서 돈 쓰는게 마음 편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근데 시댁에 가면 마치 맡겨 놓은 듯이 당연하게 '삼촌 돈 쓰자'며 신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다.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시누이도, 시조카도 모두 다 당연하게 여기는게 느껴진다.

외식하러가도 아무도 결제 안하고 다 먼저 나가신다.

남편이 살거니까. 당연히.



그래서 시댁에서 외식 가자 그러면 덕컥 겁부터 난다.



지난번에 외식하자시길래 남편 귀에 대고 조용히 물어봤다.



"...그 외식 가면 누가 사는건데??"


"음.. 우리가??"



둔한 남편은 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앉았다.





어떻게 해야 아들 돈 쓰자는 얘기가 안 나올 수 있을까.



지금 우리한테 빌려가신 5천만원도 다 못 갚은 상태인데도,

우리가 지금 돈 없어서 원룸 살고 있는거 다 아시는데도,

매번 아들 돈을 쓰자고 참 당당하게 말하시는게 너무 속상하다.

그것도 너무나 신나하시면서.



당장 2주 뒤에 또 시댁에 방문해야하는데 그때는 또 몇번이나 아들 돈 써보자고 하실까.

생각만해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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