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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Apr 01. 2024

20km를 통학하는 너에게

매일매일 해내는

여섯 시 정각

작은 방에서 낮은 알람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이층 화장실 문을 여닫는 소리까지, 일층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 멈추고 첫째의 아침 여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안심한다.


아이가 씻는 동안 식탁에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다. 금방 한 밥을 그릇에 담고 된장찌개는 작은 무쇠냄비에 일 인분만큼만 덜어 따뜻하게 데워 놓는다.


6시 45분 첫차를 타기 위해 아이는 6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마을버스를 타서 일곱 정거장 지나서 내린 후, 오 분여 뒤에 오는 시내버스로 환승한다. 대략 7시 55분에서 8시 사이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정확히 20km이고 등교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제주는 중학교 삼 년 내신을 바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공부에 무심하던 아이가 중학교 2학년 갑자기 공부를 하겠다며 문제지를 잔뜩 사달라 했다. 그러곤 한 학기 혼자 공부하더니,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알기 위해 입시학원을 가야겠다고 했다. 고가의 학원비와 저녁 9시까지 하는 수업을 따라갈까 싶어,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학원등록을 두 달여 미뤘다. 기다리다 답답했던 아이는 집과 가장 가까운 입시학원 두 곳의 명함을 나에게 내밀고 상담을 가자고 했다.


학원을 다닌     원장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적응을  못하는  같다고, 수업시간에 잠을 많이 잔다며 걱정하셨다. 원래 책상에 오래 앉아있어 보지 않았고 처음 해보는 입시학원 생활이라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했다. 원해서 들어간 곳이니 시간을 준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첫째는  달이 지나 학원에 적응했고  학년이 되어 원서를  때는 목표한 만큼 내신을 채웠다. 가고 싶어 하던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원서를 썼다.

(3월 입학하던 날)

첫째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아침 6시 30분에 현관문을 나서서 자율학습을 저녁 9시까지 하고 집에 오면 10시 30분이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등하교 길에 지친 아이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엄마 나 괜히 홍대병에 걸려서 친구들이 가까운 학교로 원서 쓸 때 혼자 머~언 학교를 1지망으로 썼나 봐 한다. 홍대병이라는 말에 풋 웃음이 나왔다. 엄마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도 좋은데 학교가 멀긴 멀어, 오늘 자율학습 안 하고 일찍 올래 하고 말한다.


그래 일찍 와

엄마는 너만 할 때 너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몸을 움직이지 않았어. 수능만 잘 보면 된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수능 공부를 하는 척했을 뿐이야.

네가 스스로

역사가 왜 재밌는지,

역사 공부해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해.

한 달 동안 학교에 잘 다닌 것만으로도 멋져.

매일매일 등교를 해내고 있잖아.

하고 말했더니 나름 수긍한 아이는


엄마 정류장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도 되죠?

하고 집을 나섰다.

_

첫째야

홍대병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는 과정엔 버텨내야만 하는 시간이 있어. 평일엔 좀 더 일찍 자고 주말에는 푹 쉬자. 너의 등하굣길 20Km의 거리와 반복되는 삼 년의 시간은 몸과 마음에 버텨내는 근육을 만들어 줄 거야.


첫째가 집을 나선 10여분 뒤 핸드폰에서 띠링 체크카드 알림음이 울린다. '세븐일레븐 제주점 2,200원 결제 완료' 홍대병에 걸려 코카콜라보다 펩시를 좋아하는 아이는 무슨 음료를 샀을까... 궁금해진다.


_

♪ Satie: Piano Works

(Pf.) Pascal Roge

_

첫째와 함께 여는 아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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