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해내는
여섯 시 정각
작은 방에서 낮은 알람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이층 화장실 문을 여닫는 소리까지, 일층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 멈추고 첫째의 아침 여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안심한다.
아이가 씻는 동안 식탁에 숟가락 젓가락을 놓는다. 금방 한 밥을 그릇에 담고 된장찌개는 작은 무쇠냄비에 일 인분만큼만 덜어 따뜻하게 데워 놓는다.
6시 45분 첫차를 타기 위해 아이는 6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마을버스를 타서 일곱 정거장 지나서 내린 후, 오 분여 뒤에 오는 시내버스로 환승한다. 대략 7시 55분에서 8시 사이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정확히 20km이고 등교에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제주는 중학교 삼 년 내신을 바탕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공부에 무심하던 아이가 중학교 2학년 갑자기 공부를 하겠다며 문제지를 잔뜩 사달라 했다. 그러곤 한 학기 혼자 공부하더니,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알기 위해 입시학원을 가야겠다고 했다. 고가의 학원비와 저녁 9시까지 하는 수업을 따라갈까 싶어,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학원등록을 두 달여 미뤘다. 기다리다 답답했던 아이는 집과 가장 가까운 입시학원 두 곳의 명함을 나에게 내밀고 상담을 가자고 했다.
학원을 다닌 지 한 달 뒤 원장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다고, 수업시간에 잠을 많이 잔다며 걱정하셨다. 원래 책상에 오래 앉아있어 보지 않았고 처음 해보는 입시학원 생활이라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선생님께 부탁했다. 원해서 들어간 곳이니 시간을 준다면 스스로 방법을 찾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첫째는 세 달이 지나 학원에 적응했고 삼 학년이 되어 원서를 쓸 때는 목표한 만큼 내신을 채웠다. 가고 싶어 하던 고등학교를 1지망으로 원서를 썼다.
첫째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아침 6시 30분에 현관문을 나서서 자율학습을 저녁 9시까지 하고 집에 오면 10시 30분이 된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등하교 길에 지친 아이는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엄마 나 괜히 홍대병에 걸려서 친구들이 가까운 학교로 원서 쓸 때 혼자 머~언 학교를 1지망으로 썼나 봐 한다. 홍대병이라는 말에 풋 웃음이 나왔다. 엄마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도 좋은데 학교가 멀긴 멀어, 오늘 자율학습 안 하고 일찍 올래 하고 말한다.
그래 일찍 와
엄마는 너만 할 때 너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몸을 움직이지 않았어. 수능만 잘 보면 된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수능 공부를 하는 척했을 뿐이야.
네가 스스로
역사가 왜 재밌는지,
역사 공부해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해.
한 달 동안 학교에 잘 다닌 것만으로도 멋져.
매일매일 등교를 해내고 있잖아.
하고 말했더니 나름 수긍한 아이는
엄마 정류장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도 되죠?
하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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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야
홍대병도 좋은 경험이지 않을까?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는 과정엔 버텨내야만 하는 시간이 있어. 평일엔 좀 더 일찍 자고 주말에는 푹 쉬자. 너의 등하굣길 20Km의 거리와 반복되는 삼 년의 시간은 몸과 마음에 버텨내는 근육을 만들어 줄 거야.
첫째가 집을 나선 10여분 뒤 핸드폰에서 띠링 체크카드 알림음이 울린다. '세븐일레븐 제주점 2,200원 결제 완료' 홍대병에 걸려 코카콜라보다 펩시를 좋아하는 아이는 무슨 음료를 샀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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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tie: Piano Works
(Pf.) Pascal Ro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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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와 함께 여는 아침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