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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Jan 13. 2024

할머니의 일승

뒷집 사는 진심이

집에서 바닷가 방향으로 천천히

이십여분 걸어가면 오래된 찐빵 가게가 있다.

단팥 찐빵, 쑥찐빵, 하얀 찐빵 세 종류의 빵을 판다.

달콤한 팥이 든 찐빵도 맛있지만

나는 팥소가 없는 하얀 찐빵을 더 좋아한다.

냉동실에 쟁여두고 생각날 때마다 찜기에 하나씩

쪄서 먹으면 보들보들 담백한 맛이 좋다.

오랜만에 찐빵이 먹고 싶어

 나오는 시간에 맞춰 빵집 산책을 갔다.

7개에 오천 원씩 두 봉지를 사서

집으로 오는 길에 뒷집 할아버지댁에 들렀다.

_

새해 인사겸 찐빵을 드리러 간 뒷집은 복작복작했다.

작은 따님과 옆집 어머니, 건너편집 할머니가 계셨다.

에고 찐빵을 더 사 올걸 생각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이가 나를 맞아 주었다.

회색빛 도는 연한 누런색의 털과

아래로 접혀 내려간 작은 세모 귀에

동그란 까만 눈동자의 강아지!


처음 보는 날 보고 짖지도 않는다.

단박에 달려와 내 운동화를 핥는다.

이런 환영 감격스럽다.

"나도 반가워 우리 자주 보자."


새로운 친구를 보러 오셨는지 다들 강아지 앞에

앉아계셨다. 이틀 전 밤에 할아버지댁에 와서

집에 안 가고 있다고 했다. 찾으러 오는 이도 없어서

할아버지가 밥을 주고 있다고 따님이 이야기해 준다.


이웃분들이 강아지를 반가워하며 한 마디씩 하는데

나는 웃고 말았다.

건너편 집 할머니는 강아지를 진심이라 부르시고

뒷집어머니는 누구네 집 누렁이래?! 하고 누렁이라

부르고, 목소리 제일 큰 둘째 따님은 아후 주사도

놔주고 사료도 사야 되고 덩어리네 돈덩어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물도 챙겨주고 이불도 가져다준다.


새로운 친구 이름이 3개나 된다.

진심이, 누렁이, 덩어리(?!)

하! 나는 진심이가 맘에 든다. 진심이라 불러야지.

할머니 작명이 최고다.


나만 아는 할머니의 일승이다.


_

모처럼 쉬는 주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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