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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Dec 29. 2023

훌륭한 양배추

늘 받기만 한다

아침 거실 큰 창 블라인드를 올리는데

마당 데크 테이블 위에 뭔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어스름한 시간이라 창을 열고 나가보았더니

동그란 양배추가 있었다.


반가워라!

누가 주셨을까?

옆집 어머니?

뒷집 할아버지?


단단한 타원형의 고운 연둣빛 양배추 덕에

마음도 덩달아 연두물이 든다.


"이거 봐! 양배추를 누가 놓고 갔나 봐.

깜짝 선물이네. 기분 너무 좋다" 했더니

두부전을 먹던 둘째가

엄마  양배추 훌륭한 양배추네요.” 한다.

첫째와 둘째를 등교시키고 막둥이 독감약을 챙겨준 뒤


양배추 겉잎을 손으로 뜯어본다.

겹겹이 단단한 잎은 빠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자연스럽게 뜯어낸 잎을 물에 담가 두었다가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양배추 잎이 투명해질 때 꺼내면 딱 좋다.

좁쌀을 넣은 밥과 양배추로 늦은 아침 식사를 한다.

입안이 꺼끌 했는데 양배추가 달고 부드러워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마침 라디오에선 말러의 교향곡 5번이 흘러나와

거실 공기가 느슨해졌다.)


훌륭한 양배추 맞네

오랜만에 나를 위한 밥상이었다.


_

Gustav Mahler

♪ Symphony No. 5 in C-Sharp Minor:

  IV. Adagietto. Sehr langsam

_

십이월 이십구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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