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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고따뜻한일상 Aug 19. 2024

일상의 지극함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 기시 마사히코

작은 것들의 일렁거림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일상의 지극함

 

P. 42

우리는 이 단편적인 인생의 단편적인 서사로부터 의미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다. 전 세계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은 아무 일이 늘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모조리 우리 눈앞에 있으며, 언제라도 볼 수 있다. 이것 자체가 내 마음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단편적인 서사를 하나하나 읽는 것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방대함' 앞에서 언제나 압도당한다... 단편적인 인생에는 이모티콘을 많이 쓴 단편적인 서사가 있을 뿐이다... 누구에게도 숨겨 놓지 않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서사는 아름답다.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철저하게 고독하며, 철저하게 방대한 훌륭한 서사는 하나하나의 서사가 무의미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햇살_책_유리병)

동네를 걷다가, 막내와 놀이터에 갔을 때, 출근하다가, 하나로마트에 다녀오면서, 집 근처 바다에서 하나씩 주워온 돌멩이와 유리조각을 모아놓은 유리병이 생각나는 책이다. 돌멩이와 유리조각은 딱히 실용적이지 않다. 미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만큼 아름답지도 않다. 돈을 받고 팔 수 없을뿐더러 누군가에게 선물하기도 애매하다. 어느 순간 내 눈에 띄어 나도 모르는 사이 손을 뻗어 가져온 작은 오브제일 뿐이다. 그렇게 모여진 작은 것들은 책의 문진으로 식탁 위 수저받침으로 쓰인다. 나는 굳이 작은 존재들을 소유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쓸모를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보고 듣는 것으로 만족하며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유치원 때부터 돌멩이를 바라보는 일 자체를 좋아했다고 한다.


사회학자인 저자 기시 마사히코가 구술조사를 하면서 혹은 일상에서 마주한 단편적이지만 잊히지 않는 분석 안 되는 이야기들을 담담히 들려준다. 낡은 주택가에서 인터뷰하던 중 '아버지 개가 죽었어'라고 하는 인터뷰이의 아들의 얘기로 구술조사가 잠시 끊겼다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이어진 에피소드라던가. 한적한 밤 동네 산책을 좋아하는 저자가 평소처럼 걷다가 나체로 목욕탕에 가는 노인을 마주친 이야기는 기이하다. 잘 짜여진 소설처럼 쭈욱 서사가 흐르지 않고 불시에 툭 끊기고 멈추게 되는 게 우리 삶이지 싶다가도 그렇지만 왜 하필 그때 그런 일이? 하는 의문이 끼어든다. 멈칫하게 되는 작은 사건들은 삶의 방향을 바꾸거나 큰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강렬한 조각으로 뇌리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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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히 작다고 정의 내린 것들은 정말 작은 것일까? 학술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쓸모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이나 삶만이 큰 것일까?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바라보는 시선과 상황에 따라, 더 크게는 사회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다.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 어진 것이 세계다. 무엇이든 그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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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들은 내가 속한 사회에서 비교적 다수(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이성애자로 결혼 후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는 비장애인)인 내가 좋다고 하는 것, 선한 의지로 행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하게 해 준다. 그리고 나 또한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이나 선택으로 딱지(소수자)를 가지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것이 사는 일이라고 일깨워 준다.


 P.38~39

우선 '잃어버린 뒤에 발견된 것'에 대한 서사가 존재했다.

... 이제 마지막으로 '거기에 처음부터 존재하고, 그리고 잃어버리는 일도 없고, 그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것'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삶은 단편적이고 의미 없는 것들의 모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무의미하고 단편적인 것들이 잃어버리게 될 경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역설에 있다. 책 속 이야기들이 내게 힘을 발휘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등교하는 첫째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주먹밥을 만들어 놓는 일. 그러고 샴푸를 마친 둘째의 숱 많은 머리카락을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잠이 덜 깬 막내의 드림 렌즈를 조심스럽게 빼서 세척해 두는. 의미부여와 가치를 측정하기 애매한 반복되는 나와 아이들의 일상이 잃어버린 것이 될 때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사유에 소름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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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 함께해서 나달나달 해진 책 속에서 만난,
그들을 닮고 싶다.


함께 산책하는 시바견을 의인화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해  할머니처럼 나이 들고 싶다. 사람과 아닌 것을 구별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지 다짐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던 복장 도착자처럼 누구와도, 무엇과도 겨루지 않고 그것을 훌쩍 뛰어넘어 최초부터 그러한 험난한 싸움이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나만의 아담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 강렬한 태양 아래  흘리며  책을 만난 이천이십사년 여름. 식사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에 만나는 퐁낭에게 인사를 건네고 산봉우리구름에 감탄한다. 아이들과 웃는 사람으로 오늘. 일상. 속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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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팔월

여름의 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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