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인 기영이는 자기네 삼촌이 바나나를 가지고 있다는 성철이의 말을 믿고, 추위에 떨며 성철이 삼촌을 기다리다 독한 감기에 걸리고 만다. 기영이는 아파서 누워있는 와중에도 바나나를 외치는 기행을 보여주는데, 이때 가끔 마음씨가 착해지는 형인 이기철이 환등기(빔 프로젝터의 조상)를 사기 위해 힘들게 모았던 돈으로 바나나를 구해준다. 참고로 2023년 현재, 휴대용 빔프로젝터의 가격은 최소 30만원 선으로 확인된다.
그 시절 바나나, 그로미쉘
기영이는 대단한 먹방을 보여주고는 감기에서 회복된다. 여기서 우리는 궁금해진다.
우리는 왜 기영이처럼 바나나를 맛있게 느끼지 못하는가.
이미 우리는 바나나를 많이 먹어보아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시절의 바나나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기영이가 먹었을 바나나, 그로미쉘 [출처: 인사이트]
결론부터 말하자면, 종 자체가 다르다. 그 시절의 바나나와 현재의 바나나는 천지차이라는 말이다.
그로미쉘(Gros michel Banana)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품종은 달달한 맛과 진한 향, 두꺼운 껍질 덕분에 보급에 이점이 있었다. 바나나가 막 국내에 보급되던 시절에 들어온 바나나는 죄다 그로미쉘이었다.
나쁜 바나나병!
그로미쉘이 사라지게 된 이유는 비싼 가격 때문도, 공급량이 적어졌기 때문도 아닌, 파나마 병이라고 불리는 바나나병 때문이었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맛없는 바나나를 먹을 수밖에 없어진 이유가 파나마 병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말 나쁜 병이다!
바나나 병에 걸린 바나나 [출처:서울시립대 신문]
파나마 병은 곰팡이가 일으키는 병으로, 바나나의 뿌리를 말라죽게 한다. 1960년대 후반, 파나마 병이 흙이나 물을 통해 열대지방의 바나나 재배지에 퍼져버렸는데 이것이 그로미쉘의 종말을 야기했다. 바나나를 파는 기업은 어쩔 수 없이, 맛도 떨어지고 쉽게 상하는 품종인 캐번디시(Cavendish Banana)를 선택하여 재배할 수밖에 없었다. 캐번디시는 당시의 파나마 병에 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우리도 기영이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학생 시절, 생물 시간에 배운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한 조사를 하던 도중,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우리도, 기영이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2022년도 10월의 가격 [출처: 클리앙]
과일엔이라는 회사에서 수입을 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종자를 살렸는지는 찾을 수 없었다. 맛이 너무 궁금하지만 가격이 사악하여서 포기했다. 어쩌면 바나나가 빔프로젝터만큼 비쌌던, 당시의 문화를 재현한 게 아닐까. 흑흑. (저 정도면 캐번디시 바나나를 서른 송이나 살 수 있다.)
또 다시 사라져버린 기영이의 바나나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는 구매가 불가능한 것 같다. 하하... 복권 당첨되면 먹어보려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