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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대 Mar 10. 2023

<이상징후>와 함께, 탈현대하자

'우바우'로 유명한 잇선 작가님의 신작인 '이상징후'를 읽고

내가 버섯이 된다면


 삼백 페이지가 넘는 이상징후의 1권은 귀여운 보라색 버섯으로 시작된다. 이 버섯은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여자가 변한 것이다. <이상징후>는 자본주의와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는, 잔인한 현재를 살아가던 존재들이 문득, '현실이 지옥과 같다'는 느낌이 들면 이상현상이 발생하는 사회를 그린다. 매우 현실적인 설정이다. 나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번쯤은 생각해본 적 있지 않는가. '아, 저기 날아가는 비둘기는 아무런 걱정이 없어서 좋겠다'라던가, '아, 차라리 돌멩이가 되고 싶다'라던가. 이 귀여운 그림체에 그렇지 못한 내용을 담고 있는 앙증맞은 책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잠깐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건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변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꼭 반드시 변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은은하게 알려주었다.

보라색 버섯의 어딘가 슬퍼보이는 눈망울이 포인트이다.

아, 다음 생엔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에게 언젠가 물어보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돌멩이가 되고 싶댄다. 놀랍게도 이 책 속에는 돌멩이가 되어버린 사람이 존재했다. 여기서, 우리가 돌멩이가 되고 싶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참고로 이 포켓몬은 메타몽이다. 귀엽다.

 돌멩이가 가진 특성은 무엇인가. 음, 돌멩이가 되면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즉, 주변의 시선이나 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비교로부터 반영구적인 도피를 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생긴 가장 큰 폐단인 비교사회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그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는 ', 쟤는 벌써 차를 뽑았네.', ', 쟤는 해외여행을 밥먹듯이 다닐 수 있구나.'와 같은 반응들이 나온다. 이렇게 수많은 ''들이 모여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되는, 참 서글픈 현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뭐 했지? 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땅 한 평을 가진 사람은 두 평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땅 백 평을 가진 사람은 땅 이백 평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이러한 심리는 생존에 도움이 되므로, 우리 인류를 비롯한 많은 생명체들이 욕심과 질투를 가지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그렇다, 진화는 늘 좋은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는 돌멩이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니, 돌멩이가 되길 소원했던 당신에게 추천한다. 돌멩이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죽어서 백골이 진토되는 방법을 제외한다면), 돌멩이처럼 사는 방식과 생각의 전환이 담겨 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


 군대를 막 제대하였을 때,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고등학교 삼 년을 갈아넣은 수능을 마무리하였을 때와 같은 시기에 우리는 생각한다. '이제 좀 쉬자.' 하지만 경쟁 사회에 살고 있는 그대들은 잘 쉬지도 못하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무척이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내가 그 힘을 실감한 것은 군대를 막 제대하고 나서였다. SNS를 보니 내가 군대에 간 사이 친구들이 이룩해놓은 업적들이 모여서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무척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몰고 왔다. 간만에 친구들을 만나보아도 대화가 흥미롭지 않았고, 오히려 대단한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 일중독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어린왕자>속 사업가는 하루 종일 별을 센다.

 일중독을 바라는 사람도 더러 존재하는 것 같던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차라리 식중독에 걸리는 것이 훨씬 낫다. 일중독에는 잘 듣는 약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성과가 있음에도 더 큰 성과를 바라는, 그런 상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 성공의 갈증에 끊임없이 목마른 피폐한 상태가 바로 일중독의 현실이다. 손이 여덟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그런 심리를 느낀 작중 인물도 극심한 일중독인데, 결국 이상징후에 의해 변해버린다. 스스로 평범한 인간답게 사는 것을 버리고, 남들보다 우월한 성공만을 좇아 살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그 인물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씁쓸하다.


우리는 탈현대할 필요가 있다

음성지원이 되는 사진

 <이상징후>에는 현실 때문에 변화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중에서는 돌이 된 사람도 있고, 버섯이 된 사람도 있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는 반면, 다시 돌아갈 필요성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변화한 모습대로 살아가고파 하는 인물도 있다. 이 두 인물을 모두 다루면서 각각의 시각과 감정을 표현하였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주변에서 아무리 본인을 현대에 맞지 않다고 깎아내린다고 한들, 그냥 쌩 까고 본인의 시선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것이다. 

현대에 맞지 않으면 어떤가, 주변에서 혀를 차도 어떤가,
나는 그냥 현대에 맞지 않는 <이상징후>를 가진 사람으로 살겠다!


-라고 당당하게 외쳐보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무척이나 각박하고 복잡하고 부정적으로 바뀌었기에,
우리는 가끔이라도 탈현대하여 본인을 현대로부터 지킬 필요가 있다. 


탈현대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당신, 어서 서점으로 달려가서 이 아기자기한 만화책을 집어들자.



*도서를 협찬해주신 송송책방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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