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바우'로 유명한 잇선 작가님의 신작인 '이상징후'를 읽고
삼백 페이지가 넘는 이상징후의 1권은 귀여운 보라색 버섯으로 시작된다. 이 버섯은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여자가 변한 것이다. <이상징후>는 자본주의와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는, 잔인한 현재를 살아가던 존재들이 문득, '현실이 지옥과 같다'는 느낌이 들면 이상현상이 발생하는 사회를 그린다. 매우 현실적인 설정이다. 나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번쯤은 생각해본 적 있지 않는가. '아, 저기 날아가는 비둘기는 아무런 걱정이 없어서 좋겠다'라던가, '아, 차라리 돌멩이가 되고 싶다'라던가. 이 귀여운 그림체에 그렇지 못한 내용을 담고 있는 앙증맞은 책은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잠깐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건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변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꼭 반드시 변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은은하게 알려주었다.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에게 언젠가 물어보았다. 다음 생이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으냐고.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돌멩이가 되고 싶댄다. 놀랍게도 이 책 속에는 돌멩이가 되어버린 사람이 존재했다. 여기서, 우리가 돌멩이가 되고 싶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돌멩이가 가진 특성은 무엇인가. 음, 돌멩이가 되면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즉, 주변의 시선이나 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곧 '비교로부터 반영구적인 도피를 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생긴 가장 큰 폐단인 비교사회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그 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는 '와, 쟤는 벌써 차를 뽑았네.', '와, 쟤는 해외여행을 밥먹듯이 다닐 수 있구나.'와 같은 반응들이 나온다. 이렇게 수많은 '와'들이 모여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되는, 참 서글픈 현실이다.
나는 지금까지 뭐 했지? 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땅 한 평을 가진 사람은 두 평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고, 땅 백 평을 가진 사람은 땅 이백 평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이러한 심리는 생존에 도움이 되므로, 우리 인류를 비롯한 많은 생명체들이 욕심과 질투를 가지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그렇다, 진화는 늘 좋은 방향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는 돌멩이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니, 돌멩이가 되길 소원했던 당신에게 추천한다. 돌멩이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죽어서 백골이 진토되는 방법을 제외한다면), 돌멩이처럼 사는 방식과 생각의 전환이 담겨 있다.
군대를 막 제대하였을 때,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고등학교 삼 년을 갈아넣은 수능을 마무리하였을 때와 같은 시기에 우리는 생각한다. '이제 좀 쉬자.' 하지만 경쟁 사회에 살고 있는 그대들은 잘 쉬지도 못하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무척이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내가 그 힘을 실감한 것은 군대를 막 제대하고 나서였다. SNS를 보니 내가 군대에 간 사이 친구들이 이룩해놓은 업적들이 모여서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무척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몰고 왔다. 간만에 친구들을 만나보아도 대화가 흥미롭지 않았고, 오히려 대단한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 일중독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일중독을 바라는 사람도 더러 존재하는 것 같던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차라리 식중독에 걸리는 것이 훨씬 낫다. 일중독에는 잘 듣는 약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성과가 있음에도 더 큰 성과를 바라는, 그런 상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 성공의 갈증에 끊임없이 목마른 피폐한 상태가 바로 일중독의 현실이다. 손이 여덟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그런 심리를 느낀 작중 인물도 극심한 일중독인데, 결국 이상징후에 의해 변해버린다. 스스로 평범한 인간답게 사는 것을 버리고, 남들보다 우월한 성공만을 좇아 살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그 인물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씁쓸하다.
<이상징후>에는 현실 때문에 변화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중에서는 돌이 된 사람도 있고, 버섯이 된 사람도 있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는 반면, 다시 돌아갈 필요성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변화한 모습대로 살아가고파 하는 인물도 있다. 이 두 인물을 모두 다루면서 각각의 시각과 감정을 표현하였다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주변에서 아무리 본인을 현대에 맞지 않다고 깎아내린다고 한들, 그냥 쌩 까고 본인의 시선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것이다.
현대에 맞지 않으면 어떤가, 주변에서 혀를 차도 어떤가,
나는 그냥 현대에 맞지 않는 <이상징후>를 가진 사람으로 살겠다!
-라고 당당하게 외쳐보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무척이나 각박하고 복잡하고 부정적으로 바뀌었기에,
우리는 가끔이라도 탈현대하여 본인을 현대로부터 지킬 필요가 있다.
탈현대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당신, 어서 서점으로 달려가서 이 아기자기한 만화책을 집어들자.
*도서를 협찬해주신 송송책방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