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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대 Feb 01. 2024

0. 혜영이를 위혜영

여자친구를 놔두고 유학을 떠난 남자친구의 속죄

2024년 01월 26일


 결국 26일이 오고야 말았다. 오지 않길 바라면서도 오길 바랐던, 이중적인 날짜였다.

2일이 지나면, 2년 동안 홍콩으로 유학을 떠나기에 퍽이나 서글펐다. 

그러나 26일에 티를 내지 않기로 오래전부터 마음을 먹었다.

26일은 유학을 떠나기 전, 여자친구와 1박 2일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새벽 첫 차를 타고 만나서 쉬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 크레페를 먹고, 노래방에 갔다가 규카츠 집에 갔다.

시간은 마치 타키온 입자처럼 빠르고 매섭게 쏘아댔다.

분명 슬프고 아쉬울 텐데, 내 앞에서 울지도 않는 존재가 새삼 당차고 더 애절해보였다.

나는 이미 그 앞에서든 뒤에서든 몇 번이고 울음을 놓아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내가 우는 것을 보면서도 그 존재는 울지 않았다. 

자신마저 울어버리면 여행이 푸르죽죽한 색으로 물들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랬어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2024년 01월 27일


 원망스럽게도 다음 날이 거부할 수 없는 인사를 건네왔다. 아려오는 내면을 강제로 억누르며 뷔페로 갔다.

예상보다 훨씬 잘 되어 있는 조식이었다. 버터를 바른 빵을 토스터에 굽는 존재의 웃음은 여실히 빛났다.

어제 뽑았던 인형들을 나눠 가진 후, 우리는 만화카페로 향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몰아서 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미안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미안했다.


<수명을 팔았다. 1년에 1만엔으로>라는 만화책을 가져왔다. 세 권이 완결인, 짧은 이야기였다.

공포나 스릴러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로맨스적인 요소와 이별에 대한 서사가 많았다.

젠장.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오리온 자리를 형상화한 팔찌, 지금도 내 옆을 지킨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존재는 팔찌를 만들었다.

팔찌를 만들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었는데. 차라리 보드게임카페의 테이블로 갈 걸 그랬다.

무척이나 집중한 존재의 얼굴에서는 진심이 배어져나왔다. 

그렇게 나온 진심은 어느새 나의 감정을 강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읽던 만화책의 결말도 그 공격을 도왔다.


 그렇게 커플 팔찌를 완성했다. 사진을 찍었다. 존재의 기차는 나의 기차보다 빨랐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마 나의 기차가 빨랐으면, 나는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남겨두고 혼자 떠나는 것의 예행연습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보내주는 이의 마음을 느끼고 싶었던 나의 욕심을, 하늘이 도운 거라고 해두자.


 보내주는 이의 마음 역시도 산산조각이 났다. 기차는 잔인하게도 도착했고, 난 즉시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이 분 남짓한 그 영상에는 여러 감정이 은은하지만 강렬하게, 본인들의 존재를 피력하고 있었다.

의연함 속에 감춰진 연약함과, 감정선을 넘어버린 감정의 크기가 그 공간과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기차 문이 닫히고, 나는 달렸다. 조금만이라도, 몇 초만이라도 나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나는 부끄럽게도 그런 이기심을 입에 가득 문 채 기차와 나란히 달렸다.

숨이 차도록,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달렸다. 

그렇게 십 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나는 온통 푸르죽죽한 파란색이었다.



2024년 1월 28일 


 짐은 어젯밤에 모두 꾸려두었다. 캐리어 무게를 미리 재보는, 치밀한 우리 집안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순대국밥을 먹고 공항 2층에서 이디야 커피를 먹었다.

부모님에게 현재 가지고 있는 기프티콘을 모두 드렸다.

여권 검사 뒤 들어간 면세점에서 고추장을 봐둔 후, 전화를 걸었다.


 존재가 쾌활하게 전화를 받았다. 어제 존재는 많이 울었으리라. 

나도 짐짓 밝게 답했다. 꼭 자주 오겠다고, 사랑한다고 전했다.

그렇게 홍콩길에 올랐다.

 저가 항공이라 생각보다 좌석이 좁고, 기내식도 없었지만 그런건 아무 상관없었다.

한동안 나는 텅 비어버렸다. 


 그대로 잠에 들었다가 깨니 도착해있었다. 비행기에서의 네 시간은 이틀 전과는 달리 아주 느렸다.

이제부터 내가 쓸 글들은 모두 내가 애정해마지 않는 존재를 위함이다.

그 존재의 외로움을 최대한 덜어내고, 그 존재의 웃음과 빛나는 감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럼, 시작한다. 혜영이를 위혜영.


혜영이를 위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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