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으로 구원을 찾는다
그림: Sassoferrato - Jungfrun i bö(기도하는 성모)
군대를 전역하며 '다시 경험하기 힘든 인간 군상을 마주했었다.'고 느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갖고 살아온 사람들, 생각지 못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 남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또 상상도 못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 평범하게 공부하고 평범하게 대학교를 진학하고 남들같은 고민을 품고 살아온 내게 그들은 큰 충격이었고 내 세계의 확장이었다. 어쩌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정말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어? 여기 다른 길이 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서야 "아, 마지막 질문은 아니었구나."하고 느꼈다. 저 사람은 OO병장을, 저 사람은 OO 일병을 닮았고 누구는 OO하사님을 닮았다. 전혀 다른 모습의 그들 속에는 20대 때 이후로 마주하기 힘들었던 그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건 군인일 때보다 어렵지 않았다. 아무래도 미리 겪어 본 유형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공격적이지만 내면에는 유약한 어린 아이가 사는 사람, 비가 내리면 나타나는 소금쟁이처럼 기회를 노리는 사람,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사람 등등. 그렇게 회사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군대에서도 보지 못했던 사람을 만났다.
그는 새로 부임한 우리 팀의 팀장이었는데 우리 팀에서 지내다 팀장이 된 것도 아니고 모두들 예측하던 팀장 후보도 아니다. 후에 얘기된 바로는 이전 팀장이 승진했지만 여전히 팀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업무 분야도, 유대감도 겹치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자리에 앉힌 모양이었다. 그는 굉장히 낯을 가리고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몸집만큼이나 자신감도 작아 보였다. 그것이 그의 배려심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건 대화를 나눠본 후의 일이었다.
그는 스스로 팀에 어울리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팀원들을 대할 때도 멀리있는 반찬을 집어오듯 거리감과 조심성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에게는 그와 직접적으로 함께 일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팀 내 직급이 높은 직원들은 그를 바지사장으로 대했고 그와 함께 일한 팀원들은 그의 지도력에 물음표를 더했으며 승진한 전 팀장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를 타박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나도 그저 그런 사람쯤으로 치부하고 지났겠지만 그에게는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미스터리는 그의 미소였다. 어쩌다 말을 걸면 그는 늘 웃으며 대답했는데 그의 웃음은 오래된 플라스틱 물병이 전등 빛을 뿌리는 것처럼 흐리고 탁했으며, 빛났다. 한동안 나는 그의 빛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불어닥친 바람으로 내면에 폭풍이 몰아칠 텐데 도대체 어디서 구름이 개어 미소를 빛낼 수 있을까. 여태 만나본 사람들 중 폭풍을 잘 견디는 사람은 있었지만 바람이 잦아드는 사람은 없었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그러다 '죄와벌(도스토예프스키)'에 등장하는 소피야 마르멜라도바가 생각났다. 소냐라고도 불리는데, 그는 기구한 삶을 살고 있던 소녀로 주인공 라스꼴니코프와 만나 영향을 주고 받는다. 라스꼴니코프는 그녀를 처음 본 때에 그녀가 '유로지비'와 같다고 묘사한다.
스스로 고행을 겪으며 오히려 구원을 얻는 정교회의 신자
그 묘사를 처음 본 순간 동질감을 느꼈다. 사람들과 문제를 겪을 때마다 '나는 그들과 달라서 지금 고통스러운 거야. 저들을 봐. 이 상황이 고통스럽다고 느껴져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그들과의 단절을 분명히 하여 기쁨을 느꼈다. 그랬기에 그 문장을 읽으며 내 기쁨은 무너졌다. 고통은 구원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소냐의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그들을 내려다보던 나의 오만을 알게 됐다.
나는 팀장을 소피야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실상은 알 수 없지만 그의 행동들은 그렇게 두고 보면 대부분 이해됐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상황에도 떨어뜨리지 않던 고개, 주눅들지 않는 목소리, 어딘가 잔잔하게 떠오르는 고양감. 그의 업무 능력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지만 내게 그는 착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이후로 일을 하다 이따금 그의 소식이 들려오면 -대부분 안 좋은 소식이었다.- 조용히 그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회사에 출근하면 선함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적의 포탄을 피하는 그의 모습. 마침내 작은 구원을 안고 아내에게 돌아가는 가장의 모습.
꽤 오랜 시간 그의 팀에서 일하며 구원 받는 그의 모습을 그려도 보았지만 결국 사내 정치 싸움에 밀려 휴직하게 되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그를 마주했을 때 그의 미소엔 이전과 같은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의아하게 여기는 듯했다. 한 달여 뒤, 그의 모습을 회사에서 더 볼 수 없었다.
나는 시베리아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전장의 포탄도 더는 없는, 아무도 없는 추운 땅에 아내와 아이와 그가 앉아있는, 작은 촛불이 작은 빛을 내는 가정을 상상했다. 어쩌면 소냐처럼 그도 시바리아에서 구원을 얻을지 모른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커다란 구원을 받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