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행복, 정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

by 작은닻

한 때 국내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도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책은 아이비리그의 3대 명강의라 불리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탈 벤 샤하르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중 하나를 책으로 옮긴 것이다. 대부분 이 책에만 집중해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다른 출판사에서 죽음과 행복도 도서로 출판되었다.


'이방인'을 쓴 알베르 카뮈의 다른 책, '시지프 신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 이다."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만약 자살해야겠다고 한다면 그 외의 다른 일은 모두 중요하지 않으며 자살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이유가 삶의 지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 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세 강의가 명강의로 꼽힌 것은 각 교수님의 능력에 따른 우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강의들이 우리 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답해 준다고 생각하며 그 순서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만약 죽고 나서 모든 게 끝이고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삶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아무렇게나 살고 아무렇게나 대해도 어차피 이러나 저라나 죽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은 똑같다. 지금 죽으나 30년 후 죽으나 40년 후 죽으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럼에도 살아야겠다는 해답을 얻는다.(만약 책의 대답이 죽겠다였으면 아마 교수님이 먼저 죽으셨지 않을까)

그다음은 행복이란 무엇인가이다. 우리가 살기로 했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죽지 않기로 했다면 삶의 목표가 있을 것이고 그 목표를 따르면 행복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느끼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왜 우리를 삶에 붙들어 놓았을까 하는 대답이 이 책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면 얼마큼 차지해도 될까? 내 행복을 위해 저 사람의 행복을 어디까지 넘봐도 괜찮을까? 하는 문제에 이르면 정의를 찾게 된다.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의 마찰에 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세 권을 읽으며 이 순서로 책을 읽는 것이, 또 그 순서로 사고를 쌓아 올리는 것이 옳다고 믿게 됐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특히 화제가 된 건 모두들 불의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갑질에서부터 땅콩 회항 사건까지. 정당하고 마땅하다고 믿었던 권리들이 침해되었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더욱 정의가 고팠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삶에 정의는 정착하지 못했다. 그때에 듣던 뉴스들이 요즘은 들리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런 사건들이 사사로운 일로 여겨질 정도가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정의에 대해 물었음에도 그것을 찾지 못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 앞의 중요한 질문들을 놓쳤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의에 앞선 질문은 죽음과 행복이다.

우리 사회는 행복과 죽음에 대해 침묵한다.

타인이 정해둔 행복을 받아들이며 살고 죽음은 웃어넘기고자 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의에 대해 논할 수 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정확한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시절, '어차피 잘 거면 이불 펴야 하는데 이불을 왜 개야 해?'라고 묻는 내게 '그럴 거면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라는 농담을 들은 때 이 질문에 깊이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살면서 오래도록 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시지프 신화'를 읽을 때 가슴이 후련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


시지프 신화를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한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는 '그 질문에 해답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 수밖에 없다'라고 결론 지었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얻지 못하고 오아시스 없는 사막을 끝없이 헤매는 것이 철학자의 삶이라고.

죽음이란 무엇인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시인의 시에서 창조주는 흙을 빚어 생명을 창조한다. 생명은 눈을 뜨고 창조주가 만든 세상을 바라본다. 이윽고 생명은 죽는다. 죽으며 생명은 말한다. '창조주가 만든 이 멋진 세상을 두 눈으로 보았다'라고.


나도 헤매며, 멋진 세상을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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