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장막과 정의

나의 욕구와 너의 필요

by 작은닻

나는 학창 시절 나서기 싫어하는, 하지만 의견은 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늘 리더 역할을 맡은 친구들을 멀리서 지켜볼 뿐으로 있다가 어쩌다 생긴 발표 기회에는 의견을 제시해 보는 정도였다. 그래서 '리더란 건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닐까.' '리더란 이런 느낌일까.' 하는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이윽고 군대에도 입대했다. 군대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원하든 원치 않든 앞으로 나서게 된다. 병영의 선임으로, 분대의 분대장으로 지낸 시간은 늘 뒤로 한 발 숨던 내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군생활에서 내가 지키고 싶던 목표는 분명했다. 첫째, 입대 전의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 둘째, 물러서지 않고 쟁취하는 사람이 될 것. 첫 번째는 군생활 이후 안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열심히 가꿔온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목표였고 두 번째는 '나아감'에 소극적이었던 나를 반성하기 위한 목표였다. 그리고 훈련소가 끝나고 병영 생활을 시작하며 하나의 목표가 더 생겼다. 셋째, 악습을 끊어낼 것.


병영 부조리는 생각보다도 세밀하고 따가운 것이었다. 계급이 낮기 때문에 할 수 없는 행동이 정해져 있었다. 갓 전입온 때에는 방문 밖을 나서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일이었을 정도다. 세세하게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악습들이 있었는데 나는 이런 부조리들이 존재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당하기 싫었던 일이면 당연히 나도 강요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하고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처음으로 '내가 당했으니 나도 해봐야지'하는 마음을 접했다.

세상은 잔혹했다. 그것도 세상이 잔혹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잔혹했다.

한동안 '착한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한탄했다. 나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착한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의 나라로 모두 떠났나 봐'하는 유치한 상상으로 나를 달랬다.


군대에서의 경험은 회사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악습과 부조리, 그리고 당했으니까 나도 누려보자는 방향성 잃은 복수심의 반복이었다. 어떤 철학자가 뉴스에서 "한국 사회는 분노가 아래로만 향합니다. 위로 표출될 기회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생산성 없는 무가치한 내리 갈굼. 회사 생활도 모습만 다를 뿐 사람들 생각은 비슷했다. "다들 그러는데 나만 안 그러면 손해잖아?"라는 논리가 정의에 대한 담론을 지배했다. 사람들은 버스 뒷문으로 타고 자기 자리에 떨어진 콩고물엔 침을 발랐다.


정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 정책은 나한테 손해니까 반대해" "저 정책 하면 나한테 경제적 이득이 얼마니까 찬성해"하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내 사적 이득'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속된 말로 이 사회의 정의를 엿 바꿔 먹겠다는 말이니까.


회사에 입사 후 오리엔테이션에서 노조위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도 이제 사회 기득권입니다." 아마 그동안은 취업 준비생 등으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던 자신의 입장을 사회의 거대한 기득권 중 하나인 기업의 입장으로 옮겨서 생각하라는 취지로 말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내 입장이 바뀌었으니 주장도 바뀌는 것이 자랑스러운 일일까? 옛 우화에서 구구절절 늘어놓던 여기 붙었다 저기 붙는 박쥐 같은 일 아닐까?


복학하여 교양 수업을 듣던 중 '무지의 장막'이라는 말을 배웠다.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주장한 개념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자신이 그 정책의 수혜자인지, 손해자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결정해야 정의로운 의사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부조리로 손해 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부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내 눈을 가려줄 장막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만 양심으로 눈을 흐리게 해 볼 뿐이다.


군대에서 분대장이 된 뒤, 나는 대부분의 악습을 없애고 고쳤다. 매주 막내들이 선임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하던 조사는 분대장인 내가 용건 있는 사람은 찾아오라는 말로 대체했다. 매번 후임들만 하던 작업 뒷정리를 끝까지 남아 함께했다. 일부러 자원 업무에 앞장서서 선임이 된 후임들도 업무에 참여하게 했다. 그렇게 짧은 군생활을 마치고 나에겐 두 개의 훈장이 남았다. 첫째는 "너처럼 열심히 한 병사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는 부소대장님의 칭찬. 둘째는 "함께 군생활해서 고마웠다"는 후임의 편지.

언젠가는 나도 우리 가족을 위한다는 핑계로 나의 상황을 목소리 높여 주장할 때가 올지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한 걸음 앞서 지반을 다져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