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父子)와 당나귀와 댓글

세상에는 몇 명의 사람이 살까

by 작은닻

나는 유튜브를 꽤 많이 보는 편이다. 그 외에 인터넷 기사도 관심 있는 분야라면 훑어본다. SNS도 전혀 안 하지는 않아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한 번씩 스크롤을 내려볼 때도 있다. 매번 게시물을 볼 때마다 댓글에 적힌 사람들의 반응도 확인해 본다. 처음 인터넷 문화를 접했을 땐 댓글들의 의견과 감정을 별다른 생각 없이 수용했다. 아, 이 글은 좀 불편하게 느껴지는구나. 이 글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구나. 사람들은 이 사람이 이렇게 행동하길 바라는구나.

언젠가 어떤 유명인에 대한 뉴스가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적이 있다. 나는 그전까지 댓글들의 반응에 동조해서 '저 사람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정정된 보도에 꽤 놀랐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놀랐을 것이라 생각하고 댓글을 열었을 때 이런 글이 꽤 많았다. "역시. 난 이 사람 믿고 있었어." "그랬을 리가 없지."


나는 사람들이 말을 바꿨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그 사람을 나쁘게 여겼으면서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다니, 치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뻔뻔한 사람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니, 대놓고 뻔뻔한 사람밖에 댓글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하나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만 나타나진 않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사람들이 "이래서 문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다른 선택지를 고르면 잠잠했던 사람들이 "저래서 문제다."라고 말한다. 결국 이런 일을 겪은 당사자는 말한다. "이래도 X랄, 저래도 X랄"


나는 첫 번째 수단이 더 이상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조삼모사는 들어봤어도 굶겠다는 게 아닌 다음에야 조삼도 싫고 조사도 싫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나는 왜 인터넷 속 사람들의 의견은 이렇게 쉽게 바뀌는지 고민하게 됐다.

해답은 간단했다. 처음부터 댓글을 작성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기에 두 가지 의견을 동시에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손쉽게 그들을 하나의 사람으로 보는 착각에 빠졌다. 사실을 깨달은 다음에도 그랬다. 특히 그들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경우 그들을 그냥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음에도.


이윽고 나는 그들을 개별의 인간으로, 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하나의 인격체이고 그들을 별개의 존재로 존중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한 번에 맺을 수 있는 관계의 수가 정해져 있다는 던바의 수와 같은 개념 때문이거나 나를 숨겨준다고 믿었던 익명성이 내 눈을 흐리게 만든 탓일 것이다.

결국 나는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나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최대한 인터넷 댓글을 많이 보지 않으려고 하며 댓글을 보더라도 그들의 주장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고 댓글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의 의견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소위 알고리즘에 노출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과 더욱이 인터넷 세상에 접근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떠올린다. 무엇보다 게시물이나 주장을 본 뒤 내 의견을 명확히 한 다음 댓글을 본다.


당나귀를 끌고 가던 아버지와 아들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 바보같이 당나귀를 안 탄다고. 다시 아들이 타고 가자 사람들은 그들을 욕한다.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이 탄다고. 나는 사람들의 의견에 휩쓸리지 말자는 교훈만 얻었지 사실 그들을 욕하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간과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은 쉽게 흩어진다. 정신 차려보면 어느 순간 세상에는 나와 같은 사람과 나와는 다른 사람, 두 사람만 남고 만다. 앞으로도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뭉뚱그리지 않고 나의 모습처럼 분명하게 그들을 인식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