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람이라

와 정말요? 아니신 줄 알았어요

by 작은닻

처음 이 말을 들었던 건 중학생 때로 기억한다.

영어 선생님은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셨고 내 친구는 반골 기질이 있는 애였다. 여느 때처럼 선생님께서 아드님 자랑을 하시고 계셨다. 경찰대학교에 입학해서 지내고 있는데 하루에 운동을 얼마나 하고 공부는 또 얼마나 하는지 대단하더라 라는 얘기였다. 나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그저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녀석이 말했다.

"선생님, 수업 언제 시작하시나요?"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하셨다.

"저 녀석은 또 저러네. 네가 얘기 도중에 그렇게 들어오면 어떻겠냐?

나도 사람이라 말이라도 이쁘게 하는 애한테 더 관심이 가지 않겠냐?

말 좀 이쁘게 해라. 책 펴자."


내 친구가 무례하게 껴들었다는 데서 첫째로 놀랐지만 선생님의 대답에도 꽤 놀랐다. 나도 사람이라. 한 번도 그런 단어 조합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나는 한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곱씹을수록 떫은맛이 났다. 언젠가 나도 저 말을 쓸 일이 있을까? 생각했다.


이후로 여기저기서 저런 말을 들었다. 개중에는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함도 있었고 어떤 경우는 내가 그 수혜자가 되기도 하여 "나도 사람이라 아무래도 너한테 더 마음이 간다."라는 표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뒷맛이 좋지 않았다. 감사하다고 말하고선 집에 가는 길에 몇 번이고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었다. 그도 사람이다.


이 찝찝한 맛의 원인을 규명하게 된 것은 입사 후 다시 이 말을 들었을 때였다. 당시 나는 4명이서 함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었다. 어느 날, 같이 일하던 차장님께서 둘만 야근하고 있을 때 "나도 사람이라 아무래도 더 살갑게 구는 사람이 더 좋지."라고 내게 말했다.

"아 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잘해봐 봐. 뭐라도 더 챙겨줄 수 있게."

차장님은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표정을 따라 했다.

"그러면 감사하죠."

퇴근길 내내 이 말을 곱씹었다. 같이 일하는 주니어 한 명과 나를 비교해서 한 말이었을 테다. 살면서도 몇 번 들었던 그 말이 그날은 유독 넘어가지 않고 걸렸다. 흔하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결국 질문이 튀어나왔다. 나는 왜 이 말이 싫을까?


고민한 결과, 이 말 뒤에는 몇 가지 사실이 숨겨져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가정이 깔려있다. 얼마나 대단하다면 자신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이 사람은 혹시 신이 아닐까?'라고 착각할 정도의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친히 자신도 한낱 사람이라는 사실을 콕 집어서 일러주는 것이다. 네가 보기엔 내가 신처럼 엄청나겠지만 사실 나도 사람이다.

둘째, 이 말 뒤엔 결국 청자를 평가하거나, 자신에게 관용을 베푸는 말이 뒤따른다. 주로 들을 수 있는 표현은 "나도 사람이라 ~하면 더 마음에 든다/안 든다", "나도 사람이라 ~할 때도 있다"이다. 전자의 경우 현재의 평가가 좋든, 나쁘든 청자 역시 평가되고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자신의 실수를 관대하게 용서하기 위한 표현이다. 특히 전자의 경우 그렇지 못한 상대방을 내포한 경우가 많기에 그 사람을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셋째, 이것은 사실 둘째와 비슷하지만, 뒷말의 진실성을 더하는 교묘한 수법이다. 사실 사이에 의견을 숨기는 수법이다. 나도 사람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사실을 근거로 내세움으로 뒤따르는 견해의 진실성을 더한다. 하지만 견해는 견해일 뿐이다. 살가움이 동료 평가의 절대적 기준이 될 필요도 없으며 실수에 대한 용서도 스스로의 의견일 뿐이다.


그럼 이 말은 정말 나쁜 말일까? 이 말이 좋게 쓰인 예가 있다. 로마의 16대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에게 "You're just a man(너도 사람이야)"라고 말할 사람을 고용했다고 한다. 그의 역할은 단 하나,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가 교만할 때 그에게 "너도 사람이야"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자신이 제일 대단한 것 같을 때 스스로에 일러주는 것이다. 나도 내가 정복한 자들과 다를 데 없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집단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결국 동료들을 평가하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 변명할 필요도 생길 것이다. 좋은 리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나도 사람이라'는 말은 나에게만 들려주기로 했다. 내가 잘 나갈 때도, 내가 실수할 때도 '나도 사람일 뿐이라' 이 영광이 영원하지도 못할 것이며, 이 좌절이 끝없지도 않을 것임을 떠올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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