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를 추앙해요

by 작은닻

브런치 작가가 되고 어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이건 예전에 인스타그램에 인스타툰을 그릴 때도 했던 고민이다. 첫 글은 뭐가 좋을까. 첫 모습은 뭐가 좋을까.

비슷한 고민을 소개팅에서도 하게 된다. 또는 처음 사람을 만날 때도 하게 된다. 내 첫인상은 어떻게 보이면 좋을까. 나의 어떤 면을 드러내야 좋을까.


사람은 여러 가지 모습이 있게 마련이다. 사실 사람 말고도 온 세상이 그렇다. 중학생 즈음에는 그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사실을 밝혀내는 데 열광했다. 좋은 점이 있으면 꼭 나쁜 점이 따르고, 멋있는 변신 로봇 장난감 뒤에는 각 파츠를 돌리고 끼우는 수작업이 있다. 싫은 데서 좋은 것을 찾을 수 있고 좋은 데서도 싫은 것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소개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새 학기, 새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하기도 두려웠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못난 내 모습이 나의 뿌듯함 사이로 비치는 것이 두려웠다. 스누피 만화를 통해 전문가들은 작가가 우울증이 있었으며 인간관계가 소극적이었음을 알아냈다고 했으니까.


말 뒤에 나를 숨기는 법을 배운 뒤로는 그럭저럭 괜찮아졌다. 진짜 나와 이 사람 앞의 나를 분리하고 다음엔 어떤 모습을 드러낼지 잘 골라내면 지금의 관계에서 적절한 나로 있을 수 있었다. 적당히 배려하고, 적당히 나를 챙기면 모나지 않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아마 거기서 안 좋은 습관이 생겼을지 모른다. 어느 순간 나는 나에 대해 얘기할 때 나를 신격화했다. 무려 초등학교 2학년부터 욕을 그만둔 사람, 심지어 초등학생 때 컴퓨터 학원을 정복한 사람, 게다가 학교에선 칭찬받았던 학생, 이제는 교수님 수업을 좇아가는 똑똑한 동기. 나의 멋있고 좋은 모습들만 사람들에게 소개했고 이야기 나눌 땐 의도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었으며 나를 칭찬해 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나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나를 소개할 땐 부족한 모습을 최대한 감추었고 내 결핍이 드러날 주제에선 소리를 죽였다. 어쩌다 내 비판을 들을 때도 있었지만 내 안에선 그저 '비판마저 듣는 사람'으로 소화될 뿐이었다.


문제가 있다 느낀 건 대학교 2학년, 나를 자기 친구에게 소개해 준다는 동기에게 덜컥 화를 냈을 때이다. 자기 친구에게 '키 크고 성격 착한 친구'로 나를 소개했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나는 그다지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고 키도 그렇게 크지도 않았으며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동기에게 취소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좋게만 설명하면 어떡해. 그러면 만나서 실망하실걸.

동기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친구가 뭐가 미안해야 했는지 나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내가 좀 그렇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집에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인간관계란 만나서 실망하는 일을 포함한 단어다. 내가 이걸 왜 이렇게 걱정할까? 그러다 알게 됐다. 내가 잘 나가는 사람인 게 아니라, 잘 나가는 사람으로 포장돼 있다는 것을. 모두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추앙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의 못난 모습도 보여주었다.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눈빛도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나를 자유로이 평가하게 내버려 뒀다.

사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여전히 쉽지 않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포장하고 싶고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싶다. 그래서 '첫 글'에 무엇을 담을까 한참 고민했다.


이제 브런치의 작가가 되고 처음 쓰는 글이라는 첫인상의 순간은 이 글을 핑계 삼아 휘발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글에서 여전히 나는 독자가 나를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하길, 범상치 않은 작가로 기억하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편협한 모습들을 여기 펼쳐놓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중학생 때처럼 유치하게 양가적인 내 마음과 아름답고도 추악한 내 내면에 열광하고 싶진 않다. 최대한 담담하게 내 일상의 관찰과 고찰을 여기 적을 생각이다. 그래서 내 생각과 다른 독자들의 시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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