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준과 공존
비유클리드 기하학 강의가 내게 충격을 준 건 강의가 끝나고 세상을 마주 하면서였다. 종교가 없는 나와 달리 어느 종교 활동에 심취한 사람, 이 정도 못된 짓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느 정당은 몹쓸 정당이라고 믿는 사람, 연예인 누구는 큰코다칠 거라는 사람. 세상에는 때때로, 아니 온통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삶을 우습게 살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도 안 되게 훌륭해 보이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그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궤도를 운항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수학과를 재학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세상에는 어떤 큰 규칙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따르고 믿으며 살아가는, 이른바 태양 같은 기준점이 존재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태양 주변을 돌 때 누군가는 시리우스 항성을, 어쩌면 베가를, 베텔기우스를 공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믿었다. "태양을 공전하지 않다니!" 그들은 궤도를 이탈했고 곧 자연히 태양으로 돌아오거나 멀리 떠나버릴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내 믿음에 불과했다. 어쩌면 바람이었다. 그들의 삶을 인정하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물론, 피해 갈 순 없는 과정이었다. 당장 그들이 거기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처음에 나는 그 사람들이 나와 매우 다른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상상했다. 그래서 다른 결론을 갖고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굉장히 특이한 분이시라거나, 어머니의 직업이 특별히 독특하다거나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 집에서 아이를 돌보시는 어머니.
그다음으로는 그 사람들이 나와 다른 문화를 접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와 성향도 비슷하고 읽은 책도 비슷했으며 장점도 단점도 닮았었다. 심지어는 사고 과정도 비슷했다. 단지 특정한 생각, 그 하나가 달랐다.
평행선 공준을 떠올리고서야 나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믿음만 달라도 그곳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존재했다. 내 세상과 완전히 다른 그곳은 나의 규칙이 없이도 완전했다. 단지 나와 다른 결론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내 세상을 돌아볼 수 있었다. 엄밀한 규칙과 결론들 위에 지었다고 생각했던 내 세상이란 것은 그저 내 믿음으로 세워진 것뿐이었다.
결론이라고 생각한 것들은 믿음에 불과했다.
내겐 내 믿음을 증명할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원인과 결과로 생각한 것들은 내 믿음의 역사에 지나지 않았다. 단단하게 쌓아 올렸다고 믿었던 나는 이토록 위태롭게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세상도 나와 똑같이 믿음들과 그 역사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내 믿음을 바탕으로 그들의 옳고 그름을 증명할 수 없었다.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고 굳게 믿고 있던 내게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장 좋은 예로 북극에서 남쪽 한 방향으로 선을 그리고, 적도에 닿으면 다시 동쪽으로 적도를 따라 선을 그어보자. 그리고 지구 둘레의 1/4을 지났을 때 다시 북쪽으로 선을 그어 올리면 지구 위에 거대한 삼각형을 만들 수 있다. 이 삼각형의 북극 쪽 내각은 90도이다. 그리고 적도와 만나는 두 내각도 각각 90도이다. 왜냐면 북에서 동으로, 동에서 북으로 꺾었으니까. 그러면 이 삼각형 내각의 합은 270도가 된다. 이 삼각형이 삼각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단지 이 삼각형은 평면이 아니라 구 위에 그려졌을 뿐이다. 나는 평면 속의 세상을 살았고 누구는 구 위의 세상을 산 것이다.
물론 세상 모든 것들이 믿음에 불과하진 않다. 어떤 것들은 증명해 낼 수 있는 것들이고-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것은 증명 가능한 문제다- 대화를 통해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논쟁도 있다. 상대방의 믿음을 존중해 줄 때, 내가 가진 공준과 다른 공준도 가능하다고 상상할 수 있을 때 공존은 찾아오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