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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룸 Jun 10. 2024

할매의 추억

PLACE : 장소 02 - 용두산 공원, 부산

 <PLACE : 장소>. 기억에 남은 특별한 장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꽤 먼 거리까지 오가는 시간여행이 될 것 같네요.  


1924년 생, 쥐띠. 살아계시다면 101세. 허나 63세 되시던 해에 돌아가심. 


이월봉 할머니는 우리 엄마의 엄마다. 우리는 할머니를 ‘할매’라고 불렀다. 엄마 말에 의하면 우리는 “할매 손에 다 컸다.” 가장이자 주양육자인 엄마는 바빴던 시절이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돌아가신 할매라서 추억은 별로 없다. ‘할매’하면 텃밭 일로 검게 그을린 얼굴과 회색 몸빼 바지가 떠오른다. 며칠 전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묵은 기억 하나가 재생되었다. 할매에 관한 유일한 동영상 기억.      


어느 날 나는 할매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할매와 단 둘이 외출하는 건 이날이 처음이지 않았을까. 할매 손을 잡고 간 곳은 버스로 30분쯤 떨어진 용두산공원이었다. 부산 남포동과 대청동이 만나는 광복동 2가에 위치한 용두산공원은 부산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찾는 근린공원이었다.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원 가운데 꽃시계가 맨 먼저 시선을 붙들었다. 그 뒤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자리했고, 높이 솟은 부산타워는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올라가 본 적은 없었다. 당시에는 관광 사진사들이 목에 커다란 필름 카메라를 걸고 호객행위를 했다. 할머니는 한 사진사에게 촬영을 요청했다. 우리는 용두산공원 공식 포토존인 꽃시계 앞에 나란히 섰다. 노란 꽃 바탕에 큰 시곗바늘 두 개가 돌아가는 화단 앞에서 우리는 웃지도 않고 사진을 찍었다. 내 어깨를 두른 할매 손이 어색한 걸 보면 포즈는 사진사 요청이었던 것 같다. 사진을 찍고 나서 별 일없이 곧장 집으로 돌아왔을 거다. 공원에는 별미였을 간식 판매상이 많았을 텐데 그런 걸 사 먹은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날 찍은 사진은 군대에 있는 막내 삼촌에게 부쳐졌다. 막내아들에게 보내는 엄마 사진에 조카 아무개로 내가 출연한 셈이다. 전부 8명인 조카들 중에서 할매와 같이 살고, 마침 집에 있던 내가 걸린 것이겠지. 이 짧은 기억도 전체가 다 떠오르는 건 아니다. 용두산공원을 오르던 것, 꽃시계탑 앞에서 사진사와 이야기하던 것, 좋았던 날씨가 파편적으로 떠오를 뿐이다. 이 사진이 동영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시집보낸 딸(우리 엄마)이 사고로 남편을 잃고, 자식 셋을 앞뒤로 업고 친정에 왔을 때 할매는 어땠을까? 할매에게 우리는 어떤 손주였을까?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기나 했을까? 

     

문득, 두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동네 주민센터의 원어민 영어회화 수업을 등록해서 다녀온 날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영어를 쓸 수 있겠지 하고 큰 기대 없이 첫 수업에 갔다. 원어민 회화 중급반에는 압도적으로 노인 수강생이 많았다. 스스로 ‘초급은 아닌 것 같고 이 정도면 중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 같았다. 첫날이라 선생님은 ‘왜 이 수업을 등록했는지’를 차례로 물었다. 놀랍게도, 스무 명 남짓한 은발의 수강생들의 대답은 거의 같았다.      


“제 자식이 미국(혹은 영어권 외국)에 사는데 이번 방학에 손주들 데리고 한국에 들어와요. 손주들이랑 몇 마디라도 대화를 해야겠기에 등록했어요.”     


“몇 달 뒤에 자식들 보러 외국에 갑니다. 한국말을 못 하는 손주들을 만나려니 영어를 공부해야겠다 싶어서요.”     


소통의 장벽인 언어를 극복하고자 영어를 공부한다는 노인들. 읽을 줄은 알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걱정이라는 그분들은 누구보다 의욕이 앞서는 학생이었다. 사정으로 나는 첫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 되었다. 두 달이 지난 지금 그분들은 어느 정도 영어 자신감이 생기셨을까? 영어만 할 수 있으면 소통에는 지장이 없는 걸까? 언어도 문화도 세대도 다른 가족들의 만남이 사뭇 궁금하기도 하다. 


용두산공원 부산 타워(좌), 영도(우)


며칠 전 부산 본가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용두산공원 공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시간이 없어 올라가진 못했지만 공원의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여전히 부산타워는 시내 어디서도 한눈에 보였다. 

할매는 돌아가셨어도 용두산 공원은 용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할매의 추억은 용두산공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재생된다. 한 집에 살고, 같은 문화를 향유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소통이 어려울 수 있다. 같은 것을 보는 것, 잠시라도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 추억이나 마음이 형태가 있다면 그 안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어떤 유려한 말보다 깊고 오래 남는 소통의 방식일 수 있다. 




할매, 우리 키워주시고, 힘든 우리 엄마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천방지축 날뛰는 우리들하고 종일 복닥거리면서 무슨 대화를 했을까요. 근데 가끔 생각나요. 배탈 났을 때 할매 손이 내 아픈 배를 쓰다듬던 기억, 내 손을 잡아끌던 느낌. 검고 거칠고 따뜻한 그 손이요. 할매, 나랑 같이 용두산공원에 가서 덜 외로우셨어요? 숱한 날들 중에 작은 계집아이가 위로가 되는 날도 있었을까요? 제가 많은 걸 받기만 했을 어린 시절이지만, 혹시라도 제가 할매에게 뭔가 작고 따뜻한 걸 줄 수 있었다면 좋겠어요. 할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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