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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룸 Jun 18. 2024

버리고 다시 해도 돼요

거절의 이유 01

2007년 11월 1일. 한밤중의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안에는 냉랭한 공기가 감돌았다. 약하게 돌아가는 히터가 냉기를 밀어내고, 쨍한 형광등 불빛이 방을 밝히고 있었지만, 나는 몸을 떨었다.      

29살. 미혼. 아시안 여성. 현재 무직이라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나를 다른 입국자들로부터 분류했다. 3일 전 스톡홀름행 비행기를 타러 나갈 때와는 사뭇 달랐다. 

나는 10월 29일 내 생일에 런던 생활을 마무리하는 여행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인 헬싱키로의 여행이었다. 이것으로 영국 생활의 완벽한 마무리가 될 것 같아 귀국 전 다소 빠듯한 일정을 잡은게 화근이었을까.    


영국에서 뭘 하셨죠?     

- 어학원에서 공부했어요. 과정을 마쳐서 이제 돌아갈 거고요.      

한국에선 뭘 했습니까?     

- 영화 스태프로 일했어요. OOO감독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고, 이제 새 작품을 들어갈 예정이라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 런던에 더 있을 이유가 없어요.      

한국으로 가는 리턴 티켓은 왜 없나요?     

-런던 제 방 책상 서랍에 있어요.      


사무관과 책상을 사이에 두고 지루한 문답이 이어졌다. 범죄자도 아닌데 심문 같은 이 행태는 뭐지. 현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도로 아득한 느낌이었다.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이미 다 돌아간 시각. 예약한 공항버스 출발 시각도 지나 티켓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내가 왜 이 나라에 더 머물 거로 생각하지? 자기네 영국이 선진국이라서?' 영국 공항의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매사에 빈틈없다고 자신해 온 내가 걸릴 줄은 몰랐다. 입국이 최종적으로 거부되면 공항에서 곧장 본국으로 돌려보내진다는 영국 출입국관리소의 무시무시한 사례를 들어왔기에 시간이 지체될수록 불안은 더욱 가중되었다. 조금씩 현실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불편한 심기를 누르고 최대한 협조하자고 마음먹었다.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런던의 내 방으로 돌아가 남은 짐을 챙기고 미처 못한 작별 인사도 해야 한다.      


사무관이 내 소지품을 뒤지다가 명함이 한 장 나왔다. 


-제 친구예요.      

당신의 상황을 증명해 줄 수 있는지 연락해 볼게요.   

   

그는 자정이 넘어 받지 않는 전화를 의식을 치르듯 걸고 있었다. 응답할 리 없는 의식. 

조사해도 더 나올 것이 없자 나는 한동안 방치되었다. 

복도 로비에 무료 음료자판기가 있었다. 생수를 눌렀는데 탄산수가 나왔다.      

아….      


버리고 다시 뽑아도 돼요.      


잠시 머뭇대는 동안 나를 줄곧 보고 있었는지 제복을 입은 한 남자가 말했다. 딱해 보여서였을까. 괜찮다고 말하고 그냥 탄산수를 마셨다. 지금 생각하면 왜 내가 원하는 걸 가지려고 좀 더 애쓰지 않았을까 싶다. 고작 탄산수인데.  왠지 지금까지도 이 장면이 아주 또렷이 남아있다. 이 말이 마치 "버리고 다시 해도 돼요" 처럼 들린다. 비관하지마, 다시 하면 돼. 


두 시간은 더 지난 것 같다. 나를 더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는지 갑자기 바뀐 사람들의 태도가 느껴졌다. 조사하며 작성된 내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들은 모두 폐기하겠다고 안심시키는 모양새가 더 의심이 갔다. 그러나 드디어 나갈 수 있다는 큰 안도감에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자정이 한참 지난 시각. 적막한 공항의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런던 옥스포드 스트릿의 나이트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익숙한 거리가 눈에 들어오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휴대전화를 꺼내 셀프비디오 촬영을 했다. 이 순간에도 나는 기록하고 있구나... 애써 담담히 말하고 있었지만, 화면 속의 나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다시 영국으로 오는 날엔 너희가 나를 초청해야 할 거야. 나를 초청하거나, 누군가 의뢰한 일 때문일 경우에만 런던에 오겠다. 그 다음번 영국행이 그로부터 3년 후 비즈니스 출장이었으니 그날의 다짐이 실현되긴 했다.     


17년이 지나 국격이 높아진 대한민국 국적자로 살아가는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이야기다. 2021년 영국은 우리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당시 내가 당한 거절은 명백한 차별이었는데, 그 차별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시간이 지나 저절로 없어졌다. 나와 나의 배경이 차별의 조건이었대도, 이제 동일한 조건이어도 차별받지않는 세상이 온 것이다. 적어도 입국심사에서는.

내가 애써 이룬 것들이 나를 증명하고 보호해주지 못할 때가 있다. 원래 그런 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세상은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뭔가 성취했다고 느낄 때 당하는 거절은 더 큰 자괴감으로 다가온다. 사회적 거절은 공식처럼, 확률처럼 운 나쁘게 당첨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 아닌 나는 당당할 수는 있다. 원치 않는 탄산수를 버리고 깔끔한 생수를 택할 수 있다. 일어난 일에 대해 일일이 의미 부여하지 않고 다음으로 넘길 수 있다. 


그러므로 이건 거절의 기억이 아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사하고 다행하게 공항을 빠져나온 좋은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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