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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수 Apr 09. 2017

이민수 활용의 날

그 금요일은 이상했다. 금요일엔 보통 약속이 없는데, 그 금요일에는 보자는 사람이 셋이나 됐다. 마치 별다른 쓸모가 없는 나의 활용을 촉진시키기 위해 일년에 하루 정도가 '이민수 활용의 날' 같은 것으로 지정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작은 목요일 오전에 강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얼마 전에 강의 결혼식에서 사회를 봤는데, 축가를 불렀던 친구와 나를 한데 모아 맛있는 것을 사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다음은 금요일 오전에 전선배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신선배와 함께 술을 마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두 약속은 토요일 오전의 중국어 학원 때문에 거절했다.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 부르면 거절하지 않는 방식의 삶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이번에도 중국어학원 숙제를 하지 않고서 가면 안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소와 다른 두 개의 제안을 평소와 다르게 거절했다. 그리고 세번째 연락이 온 것은 금요일 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였다. 탁형이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중국어 숙제를 해야하는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나는 어느새 지하철을 갈아타고 분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쩐일인지 알 수 없는 연락에는 어쩐일인지 거절 할 수가 없다는 어쩐일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번역이 마침 분당선으로 갈아탈 수 있는 도곡, 도곡역이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세 명은 각자의 만남을, 세 종류의 서로 다른 만남을 제안한 것이지만, 나에게는 왠지모르게 삼고초려로 느껴졌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 1회 '이민수 활용의 날'에 탁형과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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