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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수 Apr 05. 2016

여행을 하면 생각이 많아지던데

어떤 비성실함도, 여행 도중에 피어오르는 생각들마저 억누를 수는 없었다

 여행을 갈 때면 괜히 무언가 쓰고, 무언가를 남겨보자는 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렇게 하면, 지나고 나서 그저 "그때 좋았지."하는 정도로 닳아 없어지는 여행들이 그 생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하지만 계획을 세울 때면 항상 "현지에서의 귀찮음으로 인해 취소되거나 변경될 수 있습니다."는 식의 약관을 슬며시 끼워 넣었던 것이 문제였다. 여행의 고단함은 언제나 귀찮음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획은 계속 반복되었으나, 여행을 글로 기록하겠다는 다짐은 아무리 다지고 다져도 단단해지지가 않는 것만 같았다. 여행이 하나 둘 끝나도 글은 하나도 써내지 못했다. 하지만 끝끝내 글쓰기의 의지를 꺾어내고야 마는 어떤 비성실함도, 여행 도중에 피어오르는 생각들마저 억누를 수는 없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는 매번 그렇게 피어오른 생각들에 겹겹이 둘러싸이게 되었고, 생활로 돌아온 후라고 해도 현실에 녹아들 수는 없었다.


 어쩌면 여행을 마친 누군가가 현실에 녹아드는 과정은 여행 동안 피어오른 생각들을 녹여내는 과정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공간에서의 다른 생각들에 둘러싸인 채로는 현실에 융화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부적응의 밤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여행의 생각들은 희미해지고, 어제의 여행자는 오늘의 현실에 녹아든다. 그러다가 문득, 녹아내리는 여행의 생각들이 아쉬울 수가 있다. 이번 여행 역시도 그저 '그때-좋았지 목록'의 한 줄로만 남는 것이 아쉬울 수가 있다. 그렇게 아쉬움이 귀찮음을 이겨내는 순간이 찾아왔다. 여행의 생각들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잡아두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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