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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재미양 Apr 04. 2022

코로나 메들리

바이러스는 둘째에게 먼저 찾아왔다. 시작부터 고열이었다. 당장 마스크를 쓰고 아이와 방에 들어갔다. 나머지 가족들과 동선이 겹치는 곳에 살균제를 뿌리고 틈나면 손을 씻어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의 흔적을 지웠다. 체온계에 적힌 숫자만이 이 종잡을 수 없는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마치 귀신 탐지기 반응처럼 그것은 이 방에 없지만 있었다. 이렇게 일주일만 버티자,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다짐하고 3일 뒤, 내게도 열반응이 왔다. 체온이 0.1도씩 올라가고 있었다. 그제야 귀가 떨어질 것 같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같이 누웠다. 길고 긴 칩거의 시작이었다.


가루처럼 가라앉아 있는 문제점은 위기로 흔들리며 떠오른다. 원래부터 언어가 달랐던 방안의 나와 방 밖의 남편은 물리적인 벽을 사이에 두고 다투었다. 너무 오랜만에 아프다 보니 잊고 있었나 보다. 아픈 몸은 얼마나 마음을 연약하게 만드는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절실한가. 보채는 아이를 두고 누울 수도 없고 잘 수도 없는 와중에 대가 없는 다정함이, 요구하지 않은 섬세함이 고향처럼 그리워졌다. 그럼에도 내게 닿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몸도 마음도 상한채 그저 끙끙 앓았다. 3일간의 칩거와 조금씩 오르는 열이 쌓여 꾸질해진 모습으로 질질 울었다.


바깥 햇빛이 손짓하는 날씨에 틀어박힌다는 건 잔인한 일이다. 날짜가 바뀌는 걸 느낄 수 없다. 그 밤이 그 밤 같고 그날이 그날 같다. 그러고 보면 햇빛이 닿는다는 것, 바람이 분다는 것, 나뭇잎에 물방울이 맺힌다는 것 구름이 흐른다는 것 모두가 시간의 일부였나 보다. 이 방에서 진부하고 지루한 하루가 흘러가는 걸 느낄 수 있었던 건 끼니마다 꼬르륵 소리를 내던 나의 배와 조금씩 차도를 보이는 몸 상태였다. 아이는 소리를 지르고, 심심해서 뒹굴고, 밥을 거부하고, 간단한 부탁도 냉랭하게 반응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격리는 해야 했으니. 밖에 있는 첫째는 엄마가 그리워 밤에 깨서 조금 울었다. 닫힌 방문을 두드려 나의 생사를 확인하며 보고 싶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그런 생각도 스쳤다. 괜히 분리를 해 모두가 상처를 받는 건 아닐까. 예전 같으면 약한 마음에 종료했을 법한 상황이었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이것이 내 몸에 들어왔을 때 다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것은 뭔가가 나를 내리누르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온몸의 관절이 분리되는 것처럼 미미한 뻐근함이 전신을 감쌌다. 열은 38.6도에서 멈췄다. 아이들  체온으로 뛰어놀던데, 어른은 무거운 졸음이 계속 계속 쏟아졌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그저 잠들고 싶었다. 고양이 수십 마리가 냥펀치로 계속 때리는  온몸에 잔잔한 불편함이 감돌았다.  정도면 견딜만한걸, 생각한 4일째 되는 , 목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전신에 퍼졌던 통증이 하나로 뭉쳐져 목에 모인 듯했다. 목에 작은 언덕이 생겼고 울퉁불퉁한 신발을 신은 액체가 그곳을 거칠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사람이 환경을 받아들이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5일째 되는 날, 투덜거리던 아이가 내게 책을 들고 왔다. 시간은 여전히 느리게 흐르고 있고 차마 서로 바라보기 어려울 정도로 꼬질 거리지만, 그것쯤은 문제없다. 느림에 적응하고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반경 1미터 넘짓 공간에서, 더는 새로울 것이 없는 이곳에서 조금씩 회복하는 몸으로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 아이의 바지가 짧아진 것이 보인다. 어딘가 똑같으면서도 달라진 듯한 나. 아이. 세상 다른 곳만 바라보고 각자 할 일에 몰두하던 우리였는데, 눈을 바라보고 웃고,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 이런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급변하는 하루에서 이탈해 강제로 시간여행을 한 덕분이다.


열흘이 지나 문밖으로 나오니 책상 위 색연필이 모두 몽당이 되어 있었다. 나와 둘째가 격리에 들어간 동안 첫째가 엄마의 재료를 가까이 두고 그리고 쓴 것이었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 한번, 동생이랑 놀고 싶을 때 한번, 열흘간 아이는 글로, 그림으로 스스로를 달랜 듯하다. 바깥사람들은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에 많은 일이 비극으로 치닫는 듯 보이지만 또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멀리서 보면 희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더 희극일 때도 있다. 의외로 나 자신은 잘 헤쳐나가고 있는데 주변에서 비극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코로나는 이런 지점에서 많이 닮아있다. 감염되면 모든 주변인이 동반되고 지구의 절반이 앓고 있는 이상한 바이러스. 어떤 이에겐 치명적이고 어떤 이에겐 증상조차 없는, 언제고 다시 또 이곳을 덮칠지 모르지만 언제고 지나가는 이것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어진다.


반토막이 된 색연필들을 새것과 바꾸며 오전의 햇살을 맞고 있다. 지난 열흘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간다. 창밖은 이미 봄이다. 때마침 호크니의 신작이 기다리고 있다.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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