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갑자기 편지가 쓰고 싶어져서, 그러니까, 긴 긴 문장으로 말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이렇게 적어나가게 되었어. 이 마음이 전달 될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려고.
너의 이야기를 들었어. 항상 학교에서 차분하고, 바르게 생활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모범이 된다는 말 말이야. 쏟아지는 칭찬에 흐믓해지다 순간 멈칫한다. 언뜻 들으면 모든게 좋아보이는 그 칭찬들이 불편해진거야. 왜 그럴까. 잘 지낸다는거,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다는거, 바르게 앉아서 장난도 치지 않고 귀 쫑긋 선생님 얘기에 귀 기울인다는게 나쁜게 아닌데도, 이상하지? 너의 칭찬으로 기분이 이상해진다니. 엄마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일까.
엄마도 칭찬을 듣고 자랐어. 엄마 위로 오빠가 둘 있거든? 한 명은 멀리 외국에 나가 공부하느라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고, 그 다음 오빠는 언제부터인가 아빠한테 엄청 엄청 혼났어. 그런 오빠와 한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엄마는 항상 생각했어. 저 멀어진 오빠들과 나의 차이에 대해서. 그리곤 다짐하는거지. 나는 혼나지 말아야지. 멀어지지 말아야지. 그래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하기 시작했어. 머리 묶는 것도, 내 방을 정리 정돈하는 것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하는 것과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하는 것도 말이야. 그리고 놀더라도, 엄마 아빠의 칭찬을 듣는 것 위주로 놀았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뭔가에 몰두해 있으면 나를 달리 보는게 느껴졌었나봐. 기억이란 참 간사하지. 좋았던 기억보다 안 좋았던 기억이 더 많이 나니까 말이야.
엄마는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들에 점점 의심을 갖게 되었어. 그러면서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보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나봐. 가족들 말고도 타인의 칭찬, 사소한 언급에 촉을 세우게 되었지.
요즘 너를 보면 그 시절 엄마가 많이 떠올라. 분명 잘 하고 있는데, 정리도 척척 해내고 친구들도 도와주고 밝은데, 그래서 좋은 말들을 자꾸 듣는데 엄마는 다른 생각이 들어. 싫은 일을 도맡아 하는 건 아닌지, 불편한 마음을 한숨으로 내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건 정말 하기 싫다, 그런데 해야만 하는건가? 다른 애들은 안 이러는데. 그런데 이런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겠지? 저번에도 이걸로 칭찬 받았으니까 또 받고 싶다. 이런 저런 마음에 짓눌려 작은 공간에 복닥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꼼짝않고 자리를 지키는 너를 상상하면 마음이 조금 답답해진다. 엄마의 어린 시절이 너에게 옮은 걸까봐.
엄마를 그리게 한 건 칭찬이었어. 사랑의 조건처럼 들렸던 그 칭찬에 힘입어 작업하고 이제서야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중이야. 어쩌면 그때 나에게 필요한 말은,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게가 아니었을까. 엄마는 어쩌면 칭찬의 언어보다 사랑의 언어가 아주 많이 필요한 아이였나봐. 잘 해야한다는 마음 속에는 이것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위기가 들어있었고 그런 마음에 불안해지면 쓰고, 그렸어. 바로 얼마전까지.
근데 엄마는 이제서야 자유가 되었어. 너를 만나서.
너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춰져 엄마를 마주본다. 너는 분명 엄마보다 넓은 바다같고 높은 산 같은 아이야. 사랑이 넘쳐 받으려기보다 오히려 엄마에게 나눠주고 있지. 매일 매일 엄마에게 편지로, 그림으로, 눈빛으로, 글로 보여주는구나. 엄마가 좋은 엄마여서가 아니라 그냥 너의 엄마라서, 너는 너무도 좋고 사랑해주는구나. 투정을 부리는것도 간소한 떼를 쓰는 것도 엄마에게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 같다. 너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엄마를 그냥 좋은 사람으로 키워주고 있었어.
세상 많은 것들이 한쪽으로만 쏠려 있고 누군가가 맹목적으로 희생하는 듯 보여도 지구 곳곳의 계절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듯이 동식물들이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듯이 너와 나의 삶에도 분명 어떤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어. 그러니 엄마는, 왜 나만 그래야해?! 라는 너의 외침을 최선을 다해 들을게. 첫째라서, 누나라서, 더 또리방해서, 뭐든 알아서 하기 때문에 너를 내버려두지 않을게.
그러니까, 많이 울고, 많이 떼 써줘.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아주 많이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너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