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가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야행성, 골초, 애주가,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
초저녁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 열두 시가 넘기 무섭게 잠이 든다. 야행성은 타고나는 것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잠들지 않는다고 해서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못 된다. 담배 연기가 스치기만 해도 켁켁 기침이 난다. 노력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담뱃값이 무섭게 올랐다. 끝내 못 배운 게 다행이다. 맥주는 딱 첫 모금까지다. 한 캔을 마시려면 숙취 음료와 두통약을 미리 챙겨야 한다. 애주가가 되기에는 숙취의 고통을 견딜 배포가 없다.
아침 일곱 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는 아침형 인간이라, 비흡연자라, 술을 못 먹는 탓에 작가가 될 수 없다니! 이렇게 이번 생은 망했다며 포기한다면 작가는커녕 진짜 아무것도 못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되기 위한 마지막 조건에 도전하기로 했다.
참고로 고백하자면 나는 집순이다.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스트레칭도 집에서 한다. 갑갑하고 불편하지 않냐고? 전혀. 그래도 사람 행세를 하기 위해 가끔 밖에 나가 밥도 먹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린다. 해 잘 드는 도서관 창가에서 우아하게 읽고 오고 싶지만 밖은 도무지 집중이 안 된다. 바득바득 싸 들고 집에 와서 읽는다. 그러니 먼저 이 도전이 얼마나 용기 있는지 알아주길 바란다.
스타벅스 창가 쪽 가장 구석 자리에 아이패드를 세워놓고 오늘 같은 날을 갈망하며 사둔 블루투스 키보드를 그 앞에 펼친다. 키보드 옆에 4색 볼펜이 있다. 만년필이나 검은색 펜을 준비해야 했는데 4색 볼펜은 수험생 같아 보인다. 그래도 미흡하나마 이 정도면 카페에서 글 쓰는 작가의 모습에 걸맞은 그림이다. 문제는 커피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작가에게 어울리는 것은 응당 커피이다. 작가의 고뇌를 응축해 놓은 것 같은 진하고 검은 에스프레소나 하다못해 작가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심연 같은 아메리카노라야 그럴듯하다. 귀여운 망고 패션 후르츠 블렌디드나 발랄한 핑크 말차샷 라테에서는 창작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작가가 되려면 무언가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카페 라테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테이블에는 몽글몽글한 우유 거품이 촐랑대는 허여멀건 한 카페 라테가 있다. 그렇다. 나는 아메리카노가 세상 싫다. 아메리카노는 대체 무슨 맛인가? 쓰고 시다. 시커멓게 생겨서 쓴 것은 그렇다 치자. 사실 그렇다고 치기에는 너무 쓰다. 몸에라도 좋은 약을 먹고 말지. 물을 많이 넣으면 그걸 뭔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보리차를 먹는 게 낫지 않을까? 설탕을 넣으라고? 작가 체면이 있지 애들처럼 무슨 설탕인가. 은근히 전해지는 예상치 못한 신맛은 또 어떤가? 레몬도 싫고 귤도 싫다. 김치는 겉절이만 먹는다. 이 맛없는 커피에 우유만 넣으면 고소하고 맛있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는가? 쫀쫀한 우유 거품을 떠먹는 재미는 또 어떻고.
이 글은 까페에서 카페 라떼를 마시면서 쓰는 첫 글이다. 어떤가? 위대한 작가가 될 것 같은가? 아무래도 더블 샷으로 진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