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My name is...
"My name is Eun-jin, but please call me Emma."
동네 근처 대학교에서 ESL 수업을 듣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나는 거울 앞에서 내 이름을 반복한다.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한국 영어시간에 입버릇처럼 달달 외워대던 문장들인데 마치 처음 내뱉어보는 언어같이 낯설다.
나는 꽤 대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의 나는 소심하고, 쉽게 주눅들며 조금은 길을 잃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전날 아빠가 남긴 종이를 손에 꼭 쥐고 가족들의 응원을 받고 출발했다.
손으로 반듯하게 그린 지도 위에 화살표시와 글씨가 빼곡히 적힌 작은 종이다.
이것이 오늘 나의 길잡이가 된 것이다.
첫 운전, 첫 미국 대학, 그리고 이곳에서의 첫 영어 수업.
처음인 것이 많은 나는 마음속으로 긴장을 수백 번 접었다 펼쳤다.
아빠의 손때가 뭍은 종이를 지도삼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커다란 회색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진 푸른 잔디밭과 붉은 벽돌의 건물이 보였다.
TV에서 봐왔던 미국 풍경과 닮아 있었다.
발걸음은 무겁지만, 마음속 숨겨뒀던 기대감이 조금씩 앞선다.
겨우 손짓, 발짓으로 교실을 찾았고 나는 오른편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본인을 뉴저지 출신이라고 소개한 Eric 선생님은 짙은 갈색 머리와 밝은 갈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미국 사람은 전부 노란 머리와 파란 눈동자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알던 미국은, TV 속 장면에 불과했나 보다.
그리고 이어진 자기소개 시간.
한국이든 미국이든, 자기소개는 늘 피할 수 없는 무대다.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을 떨게 했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망설이게 했다.
어색함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밤새 연습한 문장을 더듬었다.
"My name is Eun-jin, but please call me Emma."
한국인이며, 책 읽기와 드라마 보는 것을 좋아하며,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얼마 전 미국에 왔다고 말했다.
이것이 지금 이곳에서의 나였다.
딱히 더 보태 말할 것이 없었다.
교실 안, 다양한 얼굴들이 있다.
피부색, 말투, 미소, 눈빛... 조금씩 다르지만 나와 같은 편이 생긴 것 같은 묘한 동질감에 금세 편안해졌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Emma로 살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