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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19. 2019

"인권이 무엇입니까?"

_ 김예원 변호사의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이야기

김예원 변호사를 처음 만난 것은 <82년생 김지영>이 한창 화제일 때였다. 

무슨 말 끝엔가, 나랑 연배는 다르지만, 공감 가는 대목들이 많더라 했더니 김예원 변호사가 그랬다.

자기도 그 책 읽었다고, 그런데 자기는 주인공이 참 답답하더라고. 남편이고 괴롭히는 남자들이고, 왜 그냥 두고 보기만 하나, 다들 혼내 줬어야 한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였다.

속으로 놀랐다.

'스스로 소수자인 처지에 '김지영'에게 감정이입이 안 된다고? 여성에다 장애인인데?' 싶었다.

알고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또한 비장애인인 나의 편견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내 속에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장애 여성은 더 많이 참고 살고, 더 숨죽여 살고, 더 힘들게 살았을 거라는 잘못된 인식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제가 좀 힘이 셌어요. 어렸을 때부터 놀리거나 하는 애들 있으면 주먹부터. ㅎㅎ"

어린 김예원 변호사의 뒤에는 장애 같은 걸로 놀리는 아이들한테 지지 말라고, 아빠가 다 책임질 테니 싸워야 할 때는 싸우라고 말해 주는 든든한 '빽'이 있었다. 

덕분에 장애를 이유로 주눅 들지 않았고, "개눈깔이래~" 하고 놀리는 아이들을 응징하면서 자랄 수 있었다.

오죽하면 중학생이 되어, 자신의 눈이 의안인 것이 태어날 때 의료사고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너무 예쁘면 지나치게 인기가 많아서 피곤해질까 봐 그런 건가?”

생각하는 아이로 자랐겠는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레고 장난감으로 집과 배를 만들며 동생과 잘 논다고 대견해하셨고,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피아노 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고, 대학에 다닐 때는 매일 연습하고 일하면서도 잘 논다고 대단해하셨다.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첫 아이를 가졌다고 대견해하셨고, 연주하며 학교에서 강의도 한다고 자랑스러워하셨고, 사회인으로 씩씩하게 잘 살아간다고 대단해하셨다. 아빠는 늘 감탄하셨다. 아빠는 항상 나를 잘나고 크고 대단한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능력에 상관없이 늘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성적이 잘못 나와도, 대회에 실패하고 여러 번 떨어져도 아쉽고 화는 났지만 당당했다."

                                                                            -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중에서


사교육 광풍이 휘몰아치는 강남 한복판에 살면서도 꿋꿋이 방목 철학으로 아이들을 키워 낸 아빠 이규천의 이야기를 담은 책 속의 한 대목이다. 이규천은 큰딸 이소연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웠고, 작은딸 이소은은 가수이자 법조인으로 키웠다. 믿어 주고 지지해 주는 어른이 곁에 있으면 그 결과는 우리가 보는 대로다.


그러나 김예원 변호사처럼 왜곡되지 않은 감정으로 잘 자랄 수 있는 운 좋은 장애인은, 사실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또한 현실이다.

사진 ⓒ 김예원



|법보다, 제도보다 그 속의 사람|




장애인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받는 월급이 얼마인지 아시는가? 백만 원? 백오십만 원? 우리의 상식은 장애인이 겪어내야 하는 현실과는 엄청 거리가 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배려하려 애썼던 선생님의 노력이 결국은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를 공격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그 까닭은 무엇일까? 장애인은 벌금 대신 사회봉사로 대체할 자격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는지? 성 추행범으로 오해받은 장애인이 두렵고 얼떨한 상태에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했고, 그것을 자백으로 인정한 경찰은 불러 주는 대로 자술서를 쓰라고 한다. 그래서 재판까지 받을 지경에 놓였을 때, 사람들에게 늘 먼저 사과하라고 교육시킨 엄마는 엄청나게 자책한다. 그러나 그게 진짜 엄마 탓일까? 기막힌 현실은 차고도 넘친다. 영화를 씨줄로, 현실 속 이야기를 날줄로 엮어, 장애 당사자와 김예원 변호사가 답답한 현실과 어떻게 싸워 왔는지 들려준다.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에게 김예원 변호사가 있어 참 다행이다, 저절로 말하게 된다. 

-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보도자료 중에서





얼마 전, 김예원 변호사는 셋째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법정에 갓난아이를 안고 들어갔다. 어쩔 수 없어서 한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김예원 변호사의 인터뷰를 본 많은 엄마 법조인들이 격려와 공감을 보내 왔다.

'아, 법정에 아기라니! 정말 그럴 수도 있구나.'

지금까지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 생각지도 못했던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김예원 변호사는 스스로를 "성격이 직업이 된 사람"이라 말한다.

눈이 하나뿐인 사람은 1종 면허를 딸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법을 바꾸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벌금 대신 사회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만히 받아들이지 않고, 제도를 개선했다. 주위에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김예원 변호사는 확신을 갖고 말한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일은 굉장히 큰 노력이 들거나 특별한 전문가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잘못된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은 세련된 법 지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대한 관심, 그리고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과의 연대에 달려 있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느리더라도 조금씩 바꿔 나가는 세상이 더 소중한 법입니다.

 -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멋지지 않은가!



“인권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 봐도 사실 답은 하나만 떠오릅니다. 그 사람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상대방의 마음이 어떨지 그 입장이 되어 헤아려 본다면 세상이 참 말랑말랑해질 텐데 싶습니다.”  ­

-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김예원 변호사 이야기를 듣다 보면, 뭐든지 다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믿게 된다. 

진심을 말하는 얼굴도 얼굴이지만, 하루를 48시간처럼 쓰는 놀라운 에너지로 피해자들을 위해 대신 싸우는 일상의 전투력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른이 된 김예원은 자신을 놀리던 아이들을 혼내 주던 그 기세로 세상과 싸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하고, 동정 따윈 집어치우라고 말하며, 쓸데없는 감정 소모 대신 깔끔한 문서로 항의한다.

김예원 변호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많은 일을 혼자서 어떻게 다하나 싶다. 놀라울 따름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면 못할 것 같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존귀하다는 제 생각이 조금이라도 전달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는 김예원 변호사의 마음이 내 마음과 똑같다.

이런 책을 펴낼 수 있어서,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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