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
점박이물범을 취재하러 백령도에 갔다가 그곳에 살고 있는 해녀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해녀는 제주도에만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제주에서 나서 물질하는 엄마 모습 보고 살다가 백령도로 시집와
이 먼 바다에서 물질하며 산다 했다.
벌써 십 년도 더 지난 일인지라 자세한 이야기는 잊었지만, 물질하는 엄마가 싫어서 멀리멀리 숙명으로부터 도망쳐 왔는데, 오느라고 와 보니 그곳이 또 바다 속이더라고, 바다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팔자가 참 지랄같다가도 물속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이 또한 당신의 삶이더라는, 그런 이야기였다.
시린 바다로 두려움없이 뛰어드는 그 할머니의 뒷모습은 뭐랄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흔히 '바다에 안긴다'고 하는데, 어쩌자고 그 뒷모습에 '바다에 삼켜진다'는 문장이 아로새겨졌는지 모를 일이다.
그 뒤로도 제주도에 갈 때마다 해녀를 만났지만, 그건 진정한 '만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맛있는 전복죽이 생각날 때도, 방앗간 그냥 못 지나치는 참새처럼 해안도로 달리다가도 소라회며 오분작뚝배기 같은 것들에 침 삼키며 '해녀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저녁 무렵, 문 닫기 직전의 작은 가게 주방 앞에서 왁자하니 웃고 떠들던 해녀 할머니들의 굽은 등은 테왁을 등에 멘 채 아침 바다 앞에 서면 기적처럼 반듯하게 펴지곤 했다. 그분들의 바다 속 노동은 경외로웠으나, 바다 밖 식당에서까지 이어지는 노동은 고단해 보이곤 하는 것이어서, 때로는 일부러 그 앞을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수족관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얼굴을 마주 보기 힘들었던 것은. 제주 아쿠아리움에 갔다가 커다란 수족관 안에서 물질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는 해녀 할머니들을 만났다. 공연하는 다른 잠수부들과는 물론 달랐다. 할머니들은 공연의 일부이긴 했지만, 억지로 연기를 하지는 않았으며 그저 본디 바다 속에서 했던 대로 전복을 따고, 잠수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제주에 위치한 수족관에서 보여줌직한 특별한 모습이었으나,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은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들을 산 채로 '박제'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바다 속에 있어야 자연스러운 것은 물론, 할머니들만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수많은 물고기들, 상어들, 가오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수족관이 맹렬하게 불편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 즈음에 그림책 <엄마가 해녀입니다>를 만났다.
처음, <엄마는 해녀입니다>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몹시 반가웠다. 풀기 쉽지 않은 이야기였을 텐데, 아이들에게 전해 줄 생각을 해 준 작가들이 고마웠다.
에바 알머슨을 몰랐던 내가 그 이름을 처음 새기게 된 책이기도 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가 출간됐을 때, 책을 보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뭐지? 우리 해녀 그림책을 왜 굳이 다른 나라의 화가에게 부탁해야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국내 작가들을 넘어 해외 작가들과의 협업 또한 곧잘 이루어지기 시작한 어린이책 동네의 흔한 만남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책장을 덮는 순간, 이 작가의 그림이 일방적인 발주와는 다르게 그려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책을 보고 나서 그림에 설득돼 버린 것이다.
결국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곤, '화가가 개인적으로 해녀와 인연이 있는 모양이지?'
하고 지레짐작 정도였다.
내 짐작은 다 틀렸다.
"그들과 함께 있던 매 순간마다 저는 제가 무언가 특별한 존재와 함께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해녀들이 사회의 변화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닌, 그보다는, 인간이 가진 가장 숭고한 가치가 꿋꿋하게 지켜지고 있는 것을 그녀들을 통해 목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그린이의 말 중에서
에바 알머슨은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우연히 해녀들의 사진을 보게 됐고, 순전히 해녀들을 보러 제주에 왔으며, 해녀들의 다큐멘터리를 7년 동안 찍어 온 고희영 작가와 만난 것을 인연으로 그림책 작업까지 하게 된 것이라 했다.
여러 사람의 진심이 하나로 통했다고나 할까.
책에 실린 글만으로는 실감치 못했던 에바 알머슨의 진심은 <예술의 전당>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전시,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양방언의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엄마는 해녀입니다> 애니메이션 뒤에 붙은 영상 속에서 에바 알머슨은 해녀 할머니들의 좁고 쇠락한 집에서 이질감 없이 조화로워 보였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거짓이나 가식이 아니었으며, 말이 통하지 않는 스페인의 화가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해녀 할머니의 마음 또한 기꺼운 진심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에서 이국의 화가가 포착한 따뜻하고 경이로운 숨비소리는 장면마다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눈물겨운 그림책이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아이 삼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다가 싫어 도시로 갔다가, 숨을 쉴 수가 없어 바다로 돌아오는 젊은 엄마의 길과
욕심내지 말라고 젊은 딸을 다독이는 베테랑 할머니의 축 늘어진 그물과
어쩌면 엄마보다 더 멋진 꽃 테왁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싶은 어린 손녀딸의 마음길로 굽이굽이 이어진다.
노래처럼 읽히는 글과
안온한 날 파도의 숨결처럼 부드럽게 감싸안는 포근한 그림은 절묘하게 어울린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마지막 문장까지, 더할 나위 없다.
"웃지 않는 날은 잃어버린 날과 같다"
전시 도록에 있는 에바 알머슨의 말이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화사하게 때로는 수줍게 웃는 사람들을 그리는 에바 알머슨의 그림은 보는 이의 입꼬리를 저절로 올라가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누군가의 평처럼 "깊고 따뜻"하다.
전시장에 내걸린 그림들이 건네는 이야기 또한 맑고 정갈하다.
시간이 되신다면, 꼭 가서 에바 알머슨의 원화를 만나 보시기를.
이번이 아니면 200점이 넘는 에바 알머슨의 원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는 가까운 시일 내에는 다시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의 감동을 책으로도 꼭 누려 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