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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15. 2019

"여보게. 우리 서로 도와 가면서
살도록 하세."

_  그림책 <길 아저씨 손 아저씨>

"난 대구대 특교과에 갈 거야."

대입 원서를 쓸 때 내 친구에게 '특교과'란 말을 처음 들었다.

처음 들었을 떈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 십 대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지도 않았고, 대개의 학교가 그러하듯이 서울대학교에 몇 명 가는지, 국립대에 몇 명 보내는지가 그 학교의 '수준'을 가름짓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뭐, 그런 기준이야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겠다.

아무튼 내 친구는 용케도 특별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선생님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특수교육과'에서 열심히 공부한 끝에 지금도 특수학교 선생님으로 살고 있다.


선생님이 된 뒤, 학교 아이들이 자기에게 주는 절대적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이야기하면서 친구는 꽤 여러 번 눈물짓곤 했다. 혼자만 듣기 너무 아까워서 "제발 책으로 좀 써 줘." 열심히 졸랐다.

"아직. 난 아직 멀었어."

친구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상상하기 힘든 일도 있었다. 방학 때 집에 머물던 반 아이가 갑자기 열린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말았다며, 그 바로 전날 아이가 친구에게 "사랑해요, 선생님!" 하더라는 걸 이야기하면서 무너져 내리는 친구를 그저 안아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이들과 버스를 같이 타는 연습을 하는데, 대개는 친절하시지만 그렇지 못한 기사님을 만나기도 한다고, "병신들이 떼로 나와서 뭐하는 짓이냐" 대놓고 하는 폭언에도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스스로가 나약하게 느껴져서 미칠 것 같다는 고민도 들었다. 힘이 넘치는 아이들이 때로 선생님을 밀치고, 할퀴고, 때리는 일까지 있지만 그래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정말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친구 덕분에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일부는 저절로 희미해졌다.

"너 진짜 대단하다!"

진심으로 친구가 존경스러워져서 이렇게 말하면, "아니야. 우리 선배들, 동기들 다 나보다 더 훌륭해. 나는 겨우 흉내만 내는 거야." 그랬다.


내 친구를 그렇게 키운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이야기가 최근에 화제가 되었다.

15학번 김하은 씨(22)와 설진희 씨(26)가 2019학년도 공립 중동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는데, 김하은 씨는 시각장애 1급이고, 설진희 씨는 지체장애 1급으로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힘든 상황에서 거둔 결과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기숙사 룸메이트였다. 앞이 안 보이는 하은 씨는 진희 씨가 쉽게 하기 힘든 것들을 도와주고, 진희 씨는 앞이 안 보이는 하은 씨의 동영상 강의를 도왔다 한다.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똑같이 서로를 도울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두 사람의 얘기를 보는데 권정생 선생님의 책 <길 아저씨 손 아저씨> 생각이 났다. 

권정생 선생님이 하은 씨와 진희 씨의 이야기를 미리 보기라도 하고 써 주신 이야기 같았다.  



어릴 때부터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서만 살던 윗마을 길 아저씨,

태어날 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아 집 안에서만 더듬거리며 살던 아랫마을 손 아저씨는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엔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으나

두 아저씨의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구걸해서 살아가던 손 아저씨는 두 다리를 못 써 방 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앉아만 있다는 길 아저씨 이야기를 듣고는 윗마을 길 아저씨네를 찾아가 말한다.

"여보게, 우리 서로 도와 가면서 살도록 하세."


손 아저씨는 "두 어깨가 튼튼하니까 내가 자네를 업고 다니겠네" 말했고,

그날로 두 사람은 한 몸처럼 살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구걸을 다녔지만, 새끼도 꼬고 짚신도 삼으면서 점점 솜씨가 늘었고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길 아저씨의 착한 마음에 반한 숙이 아가씨와 손 아저씨에게 반한 연이 아가씨와 각각 짝을 이뤄

나란히 집을 짓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그런 이야기다.


손 아저씨가 길 아저씨의 존재를 알게 되고 선뜻 일어나 찾아가는 장면에서 독자들의 마음은 사실 조마조마하다. 비장애인과 함께 지내도 불편할 텐데 장애인 두 사람이 뭉쳐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하고.

"둘 다 불편한 몸인데 무얼 어떻게 돕겠다는 거야."

이렇게 말하는 마을 할머니의 마음과 똑같았다.

그런 마음에 아랑곳없이 손 아저씨와 길 아저씨는 거침없이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아무래도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괜히 미안해질 때가 있지만 언니와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서로 부담 없이 지내다 보니 마음까지 터놓는 사이가 됐다."(2019년 2월 13일, 파이낸셜뉴스 인터뷰 중에서)


하은 씨의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꽉 차는 기분이랄까, 뭔가 그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누가 누구를 '위해' 하는 행동보다는 저절로 그리 되는 자연스러운 태도가 편하고, 누군가에게 '베푼다'는 무의식이 시킨 행위에 담긴 넘치는 감정은 상대방에게 오히려 화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동정'받는 기분이 들면 스스로의 상황을 비관하기 쉬우며, '그래도 난 너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어설픈 위로를 담보로 하는 선의는 날카롭게 누군가를 벨 수도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나온 호의라 하더라도, 받는 사람이 편하지 않다면 그건 제대로 된 호의랄 수 없다. 정작 하는 사람은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그걸 받는 사람이 불편했다면, 안 하니만 못할 것이다. 하은 씨의 인터뷰에는 그동안 살아온 날들의 그 수많은 순간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하은 씨가 진희 씨를 만나 다행이다. 진희 씨가 하은 씨를 만나 정말 다행이다.


<길 아저씨 손 아저씨>가 장가를 든 뒤, 길 아저씨가 꽃수레 위에 앉고 그 수레를 손 아저씨가 끄는 장면이 나온다. 손 아저씨 앞에는 연이 아가씨가, 수레 뒤에서는 숙이 아가씨가 환하게 웃으며 두 사람과 함께 가고 있다.

이 장면이 나는 참 좋았다.

길 아저씨와 손 아저씨가 새롭게 만들어 가는 삶이 좋았고, 두 사람의 환한 웃음이 참 좋았다.

장애를 안쓰럽게 바라보게 하지 않고 씩씩하고 밝게 그려낸 권정생 선생님의 시선은, 그래서 참 좋다.


세상의 많은 길 아저씨 손 아저씨들, 수많은 하은 씨와 진희 씨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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