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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an 28. 2019

강아지를 키우자는 아이에게

영화 <언더독> 관람기

"엄마, 우리도 강아지 키우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아이는 강아지 타령이다.

큰고모네가 집안 모임에 개를 데리고 온 뒤부터는 부쩍 그런 소리가 늘었다.

고모네 '마루'를 데리고 산책을 시키고, 간식을 주고, 공놀이를 함께 한 뒤로는

자기도 꼭 개를 키워야 한다며, 언제 키울 거냐고 묻는다.

"강아지 밥이랑 똥이랑 니가 다 챙길 거야?"

"당연히, 내가 다 하지!"

여섯 살 아들은 큰소리를 뻥뻥 친다.

그 말을 믿느니, 번번히 실패하면서도 이번엔 꼭 살을 빼고야 말겠다는 내 말이 더 믿음이 가는 현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그때 생각해 보자."

"그럼, 그때는 닭도 키우고 토끼도 키울 거야?"

"응? 토끼랑 닭은 의논을 좀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강아지 키우자고 조르던 아이는 이번엔 언제 이사를 갈 거냐고 성화다.

아들아,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는 게 아니란다. 


아무튼, 틈만 나면 강아지 타령인 아이와 함께 영화 <언더독>을 보러 갔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든 '오돌또기'에서 유기견을 주제로 만든 영화라는 것 말고는 더이상의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유기견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니, 아이가 개 키우는 게 간단치 않은 일임을 배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 갖고 극장에 들어갔다.

얼마 전 <주먹왕 랄프 2>를 보러 갔을 때는 극장에 빈 자리가 별로 없더니, <언더독>에는 사람이 앉은 자리 찾기가 더 어렵다. 


이 영화, 폭망인가? 엄청 후진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의심은 의문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괜찮은 영화에, 관객이 왜 이 정도뿐이지? 



<언더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영리한 작품이다.

박철민이 연기하는 '짱아'는 떡하니 전작에서 자신이 연기한 수달 캐릭터 인형 '달수'를 들고 있다. 그 장면에서 혼자 빵 터져서 낄낄대느라, 영문을 모르는 아이의 눈총을 살 정도였다. 2백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만난 <마당을 나온 암탉>의 후속작임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이런 장면은 꽤나 유쾌했다.

 버려진 개 뭉치, 야생에서 살아가는 토리네 가족과 밤이, 그리고 군견 출신 개코까지, 개성 있는 강아지들 캐릭터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크기가 작은 개들, 대형견, 야생에서 가족을 이룬 개들까지 다양한 개들을 등장시켜 애견인들 누구라도 한 마리 정도에는 감정을 제대로 이입하고자 한 것도 포인트겠다.

개인적으로는 '개코'를 연기한 강석의 목소리에 가장 호감이 갔다. 정확한 발음, 캐릭터를 압도하지 않는 목소리, 딱 알맞은 정도의 연기, 거기에 오랜 라디오 디제이 경력이 가져온 것임이 분명한 안정된 톤까지. 애니메이션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목소리라 반갑기도 했고, 젊은 개그맨들의 섣부른 연기, 유행어 남발로 얼룩진 몇몇 애니들의 아쉬운 더빙에 대한 기억 때문이기도 했다.


작품 곳곳에 펼쳐지는, 인간이라는 종의 극단적 이기심에 대한 성찰도 돋보인다.

배고픈 개들이 몰려가 음식을 얻어먹는 식당의 종업원은 이 나라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주노동자였고, 개들에게 음식 찌꺼기를 나눠 준 것을 들켜서 당장 잘리고 마는 노동자의 신세는 하루 한 끼 얻어먹는 것조차 녹록치 않은 떠돌이 개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밤이를 되찾아 평생 새끼 개를 낳는 '노동'을 하게 만드려는 개장수의 표독스러움 역시, 귀여운 강아지를 데려다 기르다가 생각보다 몸집이 커지거나 감당해야 할 책임이 커지면 슬쩍 버리고 마는 이들의 한시적이고 편리한 애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버려진 개들이 인간이 만든 동네를 떠나 자유로 옆을 달리는 장면은, 그 근처 동네에서 살아가는 나에게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이라는 나라의 살풍경한 철조망들이 어쩌면 어떤 생명체에게는 유일한 희망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강아지 꼭 키우고 싶으면, 사지 말고 입양하자!"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아이에게 말했다.

사는 것과 입양하는 것이 가지는 차이를 최선을 다해 설명했지만, 아이가 얼마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한 해 10만 마리, 버려지는 개의 숫자만큼 그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최소 10만 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쩌면 내 옆의 누군가가 아픈 개를, 늙은 개를 버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께 살아가는 동물을 진심으로 가족처럼 여기는 이들도 분명히 있다.

내 친구만 해도, 함께 살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자(물론, 그러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다.) 동물 화장장에 데리고 가 예를 다했고, 정성껏 보내 주었다. 그것은 사람 가족을 보내는 것에 진배없는 슬픔이었다.  


내 아이의 첫 반려동물이 어떤 동물일지는 모르겠으나,

동물을 통해 위로나 애정,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기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있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서, 혹은 자기도 모르게 녀석들에게 향하는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면 좋겠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더없이 귀하게 시간을 나누는 자세가 되었을 때, 그때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이 성공했듯이, <언더독> 또한 지금보다 조금만 더 힘을 내 관객들을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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