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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16. 2017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는 아빠의 자세

_ 일단 피하고 보자!


인사동 전시회에 다녀왔다.

과학자 출신의 세밀화 작가인 신혜우의 그림을 보러 갔는데,

아이가 전시장에 나와 있는, 제 얼굴보다 큰 솔방울을 보고 흥분하고 말았다.

"엄마, 할 말이 있어요!"

전시장 사람들이 다 돌아볼 정도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애초에 집에서 나설 때는 아빠가 자두랑 놀아 주고, 나는 전시에 좀 집중해 보자는 계획이었는데 신기한 것을 눈앞에 두고 흥분해 버린 아이는 한사코 엄마 손만 잡아 끌었다. 

"여기는 집이 아니지? 집 아닌 데서는 그렇게 소리 지르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 돼."

"아빠, 근데, 이건 왜 이래?"

"조용히 그림 보자. 아빠가 안아서 보여 줄까?"

"싫어! 엄마가!"

"엄마 보라고 하고 우리는 밖에 나가서 놀자. 어때?"

"싫어. 아빠 가!"

몇 번이나 좋은 말로 아이를 달래 보던 아빠는 결국 손을 들고 전시장을 나가 버렸다.


아이는 그림 보는 것도 좋고, 주말이라 사람들로 북적북적하는 낯선 곳에 온 것도 좋고, 평소에 보지 못했던 커다란 솔방울도 엄청나게 신기하고 좋은데 아빠는 그게 스트레스 상황인 거다.

조용히 그림을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일이 사과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자니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럴 때는 아빠가 잠깐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이제는 생각할 수 있다.

예전엔 나도 덩달아 화가 났다.

도대체 왜 잠깐을 못 참는 거냐, 좋은 말로 더 얘기할 순 없냐,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나왔냐..

아이가 36개월 가까워지 초보 엄마인 나도 조금은 여유가 생겨서일까,  

"여보, 잠깐 나갔다 와요."

소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나도 스트레스를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아이를 살피는 것만도 힘든데, 아이 아빠 마음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은 나한테도 무리다. 


아이를 안고 어르면서 겨우 전시를 보고, 팸플릿을 챙기고, 기념품을 사고 전시장을 나왔다. 

아이 아빠 얼굴은 이미 초췌했다. 

15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아이를 안고 이십여 분을 전시장에서 버틴 엄마도 엄마지만, 전시장 밖에 있는 아빠 마음도 가시방석이었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그 시간을 위로해야 한다. 

연애할 때부터 우리는 인사동에 오면 늘 된장비빔밥을 먹곤 했다. 

자작하게 끓인 된장을 넣고, 부추와 치커리를 듬뿍 넣어, 소고기 장조림을 곁들여 먹는 <툇마루>의 된장비빔밥은 언제나 옳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가 생기기 전의 이야기다. 

아이는 된장비빔밥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등받이 없는 그곳의 의자는 아이에게 좋은 선택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인사동으로 방향을 잡은 그 순간부터 이미 마음은 <툇마루>에 가서 앉아 있었던 남편은 

"그 집에 애가 먹을 만한 게 있을까?"

에둘러 말하는 내 얘기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잘 먹는 우동이라든가, 빵이라든가 하는 선택지는 인사동 골목에 서 있는 남편의 마음에 들어설 자리가 부족했다. 

몇 년 만에 나온 인사동이란 말인가! 

맛있는 밥 한 끼를 향한 귀여운 집중력, 이라 생각하고 웃어 넘기고 말았다.


<툇마루>는 여전히 정답이었다. 

다행히 엄마와 아빠가 맛있는 된장비빔밥을 먹는 동안 우리 자두는 거기에 딸려 나오는 멸치 반찬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워 주었다.

간만에 먹은 된장비빔밥의 맛은 정말이지 은혜로웠다.

옆자리에 앉았던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아빠 무릎에 앉아 있다가 식탁에 머리를 박고 "으앙!" 울음을 터뜨리는 동안에도 점잖게 앉아 있어 주었다. 

전시장에서 힘겹게 보낸 시간은 그렇게 회복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100퍼센트 좋기만 한 일도, 100퍼센트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좋은 일에도 나쁜 면이 있고, 나쁜 일에도 좋은 면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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