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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16. 2017

아픈 아이에게 왜 화를 낼까?

_ 엄마와 다른, 아빠들의 간병기


아이와 5일 동안 병원에서 지내다 왔다.

독감 유행은 지나갔다고 하는데, 병원에는 여전히 콜록대는 아이 환자들이 가득이었다.

첫 날은 5인실에 머물렀다.

병실에 있는 아이 환자는 셋이었다.

갓 돌이 지난 남자 아이는 사흘째 타미플루를 먹고 있다 했고, 독감 증세는 좋아지는데 장염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나머지 두 아이는 일곱 살, 다섯 살이었는데 어렸을 때 심장 수술을 받은 형이 독감에 먼저 걸려 입원했고, 곧이어 동생도 따라 입원하게 됐다 한다.

저마다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들을 보고 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안쓰럽고 애처러운 것도 물론이지만,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요구인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줄 꼬이면 안 돼. 링거 줄에 피 고여. 그렇게 뛰면 안 돼!" "그렇게 소리 지르면 어떡해!" "침대에서 일어나지 마" 5초에 한 번씩 큰소리를 내야 하는 일은 엄마에게도 큰 고역이었다.

남편은 회사에서 일을 보고 오후에 병원에 들렀는데, 병원에 도착해서 30분쯤 지나면 아이에게 인상을 쓰게 된다.

위태로운 침대 난간을 붙들고 쿵쿵 뛰는 아이를 보는 것이,

옆 침대에 누운 돌잡이 아이가 겨우 잠들었는데 소리를 질러대는 아이를 말리지 못하는것이,

불을 끄고 잠을 청하는 옆 침대 형제들의 숙면을 방해하는 내 아이의 행동을 어쩌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나는 것이었다.

아이가 아프다는 것도 알고, 아픈 아이에게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자신이 그러면 아이나 아이 엄마 모두 힘들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아이 아빠에게는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내내 아이가 눈에 밟혀 제대로 일도 못했다면서도, 막상 아이를 마주 대하고는 걱정만 한가득 아이에게 퍼붓고 마는 것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들어가 쉬라는 말이 차오르니 엄마랑도 얼굴을 붉히게 되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 품만 파고들게 되는 악순환.

자기도 모르게 아이에게 욱, 화를 내고는 그게 또 마음이 아파 "미안해. 아빠가 정말 안 그럴게." 하는 아빠.  

 

엄마들은 낮 동안 병실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고 말벗이 되어 주고, 잠깐씩 화장실에 갈 때나 식기들을 반납하러 갈 때 보호자 대신 아이를 지켜봐 주면서 감정을 쌓은 상태다.

그러니 내 아이가 상대방 아이에게 조금 폐를 끼치는 정도는 양해해 줄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쌓지 못한 아이 아빠는 병실의 다른 보호자들 역시 아픈 아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또다른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남편과 내가 가장 많이 다퉜던 바로 그 지점, 바로 그 차이가 병원에서도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결혼 초, 남편은 내가 낯선 결혼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 시댁 식구들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하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사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받아들였고, '그래서 어떻게 해 달라는 건데?'라는 식으로 대응을 하니 대화가 온전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아내가 남편에게 원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고 불안해하고 있는지 알아 달라'는 것입니다. (...) 해결하려는 아빠와 알아주기를 바라는 엄마, 이 마음의 엇갈림은 계속됩니다. - <도대체 남편은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53쪽




아이가 아파 입원해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이가 아픈 건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기는 해야겠는데 같은 병실의 다른 사람들이 내 아이 때문에 불편을 겪거나 더 힘들어하는 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마음.

결국 일인실에 자리가 나서 옮긴 뒤에야 남편의 불안은 잦아들었다.

다른 병실의 아빠들도 대동소이했다.

"죽 먹어야 하는데 간장을 안 주면 어떡합니까?"

어떤 아빠는 자기 아이 병실 밖 복도에 나와, 저 멀리 있는 배식 조리사에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아이 혼자 있으니 뛰어가 간장을 받아 올 수도 없고, 밥 나눠 주는 사람은 혼자고, 다른 병실 다 돌고 올 때까지 기다리자니 환장을 하겠는 거다.

그러니 복도에 서서 소리를 질러댈 밖에, 아이처럼.  

그렇게 아픈 아이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또 어떤 아빠는 조리사를 따라다니면서 항의를 했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 어른 수저를 주셨던데요!"

"네, 죄송한데요, 어린이 수저가 반납이 안 되어서요. 다들 왜 돌려주지 않으시는지."

(도대체, 끼니마다 소독해서 새로 내주는 병원 수저를 챙기는 까닭은 뭘까? 이 지점은 나도 이해 안 된다.)

"그렇다고 이렇게 큰 수저로 먹으란 말입니까?"

"네, 그게 당장은 저희도 어떻게 할 수가.."

"미리 알았으면 집에서라도 갖고 왔을 거 아닙니까?"

"네, 죄송합니다."

"애한테 어른 수저를.."

그 아빠의 불만은 영원히 도돌이표일 모양이었다.

더 이상 이야기해 봐야 소용이 없는 상황인데도 떼쓰는 아이처럼 막무가내로 그러고 있는 거다.

자기가 아픈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이해하고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다.


자기 마음 속의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아빠들의 마음.

아이를 위해 작은 것이라도 해 주고 싶은데, 그게 표현되는 방법이 그 지경인 것이다.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데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병원에 있는 내내 서천석 선생님 이 말을 떠올렸다.

죽는 날까지 훈련할 수밖에 없는 일.

아이 아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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