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는 까닭
대전역에서 구급차를 타고 달려간 병원 응급실에서 아이는 열성 경련을 한 번 더 했다.
별 이상 없으면 6시간만 지켜보고 퇴원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리 되었다.
입원해서 지켜보아야겠고, 뇌 MRI나 뇌파 검사를 추가로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지 다섯 시간 만에 6인실로 옮겼고,
아이는 혹시 모를 경련에 대비하기 위해 기계를 달고 지내야 했다.
자두는 혼절하듯 잠만 잤다.
원래 경기 직후 아이들이 다 그렇다는데, 몇 번이나 코에 손을 대 봤다.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만 그리 되는 마음을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자두의 맞은편 침대에는 이제 막 돌이 됐음직한 남자아이 하나와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그리고 그 엄마가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링거를 꽂은 것은 남자아이인데, 환자복을 입은 것은 여자아이인지라 정확하게 누가 환자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면회를 온 식구들을 보니 아빠와 아들이 둘 더 있고, 큰딸까지 있는 대가족이었다.
대단하다.
아빠는 아이 셋과 집에 있고, 엄마는 아이 둘과 병원에 머무는 모양이었는데
아빠와 나머지 아이들이 한꺼번에 면회를 오면 굉장했다.
삐용삐용, 스마트폰 소리를 죽이지도 않고 게임을 하는 아빠.
환자용 휠체어를 타고 레이싱을 벌이는 사내아이들.
5초에 한 번씩 그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엄마.
아, 진상도 그런 진상 가족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자고 있는데, 좀 조용히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소리가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곧 가겠지, 설마 여기서 밤이야 새겠어?' 싶어 그냥 있었다.
간호사실에 가서 '면회객 통제 좀 해 주세요!' 하고 싶은 마음도 겨우 꾹 참았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테지, 하면서.
그런데 정말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밤이 되자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기운 없이 내내 잠만 자던 우리 아이는 열한 시가 넘어 팔팔해졌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 곤란한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 놀자!"
"안 누울래. 잠 안 와."
"엄마, 배고파. 바나나 먹을래!"
바나나 하나를 다 먹더니 이번에는 밥을 달란다.
"엄마, 밥! 밥 줘!"
"바나나 먹었으니까 괜찮아. 밥은 내일 먹자."
"아앙."
아픈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거나, 지금은 밤이니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당히 않은 듯했다.
지금은 특수하고도 특별한 상황이니까.
우리끼리 있는 거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었다.
아이가 기운을 차린 것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으나 다른 아픈 아이 가족에겐 참으로 가시방석인 상황이었다.
아이를 안고 복도로 나가 몇 바퀴를 돌고,
1층까지 내려가 크리스마스 트리 구경도 하고,
결국은 편의점 죽까지 사다 데워 먹여도
병원의 밤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새벽에 실려온 아이 한 명은 속기침을 연신 내뱉고,
우리 아이는 계속 떼를 썼다.
그 시끄러운 와중에 맞은편 가족들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쌕쌕, 한 번 깨지도 않고 몸 뒤척이는 소리도 없이 잤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노래는 아무래도 이 가족이 모델이었나 보다.
신기하고, 또 고마웠다.
아침이 되고 병원 전체가 부산해지자 맞은편 침대 가족도 일어났다.
아이들이 깨기 전에 바지런하게 샤워를 하고, 아이 둘을 야무지게 챙기는 그 엄마가 어제와는 달라 보였다.
병실 세면대를 독차지하고 거기다 옷을 빨고 있을 때는 좀 밉상이긴 했지만.
아이 때문에 서로를 조금씩 불편하게 하는 상황에서도
언제든 내가, 또 내 아이가 진상 짓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싶었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배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