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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Feb 16. 2017

아가야, 네가 선생님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김별아 글, 이장미 그림, 토토북, 2009) 중에서


살면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을 겪어야 했다. 

지난 1월 1일, 대구 친정에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 자두가 내 등에 업힌 채로 의식을 잃었다. 

 "우리 아기, 우리 아기가.. 승무원 좀.. 의사 어디 없나요?"

입술이 새파래져 넘어가는 아이를 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차는 300킬로미터 가까운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고, 내 정신도 아마 그 속도쯤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방송을 듣고 달려온 의사는 아이를 보더니, 

 "제세동기 없습니까?"

 "산소호흡기는요?"

를 외쳤고, 그 소리에 더 무서워진 나는 

"우리 아기, 우리 아기.. 살려 주세요."

떨면서 이야기하는 것말고는 무력했다. 

엄마라는 존재가 그렇게 무력할 수가 없었다. 


대전역에서 대기하던 119 구급대원을 만나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고, 

천만다행으로, 큰 병은 아니고 독감 때문에 급격하게 열이 올라 그걸 견디지 못한 몸이 경련을 일으킨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집에 있던 아이 아빠는 정신없이 서울역에서 기차 집어타고 대전으로 달려오기 시작했고, 

6시간만 지켜보고 별일 없으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던 아이는 응급실에서 한 차례 더 경련을 일으키는 바람에 결국 입원을 해야 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김별아 글, 이장미 그림, 토토북, 2009) 중에서


대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이 상태가 안정되어,

의사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집 앞 병원으로 옮겼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구급차가 지나가든 말든 길도 안 비켜 주는 막무가내 인사들에게 맹렬한 적개심을 품었다가 그래도 기적처럼 길을 만들어 열어 주는 사람들에게 한없이 감사하기도 하고 그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답답해 어쩔 줄 모르는 아이는 엄마 품만 파고들고,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그것도 150킬로미터 되는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안고 있는 게 답이 아닌 줄은 알지만 그래도 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5일 동안 입원해 있다가 자두는 예전의 개구쟁이 상태로 돌아왔다. 

떼쓰는 것도 이쁘고, 

우는 것도 이쁘고, 

자는 것도 이쁘고, 

다 이쁘다.


아이 퇴원하고 나서 돌아오자마자 내가 삭신이 쑤셔서 병원에 갔더니 이번엔 내가 독감이란다.

몸은 아파도,

신나게 뛰어다니는 자두 보니까 마음은 가볍다.

대니 그레고리 말대로, 살아 있는 "모든 날이 소중하다"

더 많이 감사하고,

더 겸손하고,

더 많이 사랑하라는 준엄한 경고라 생각하려 한다.

생 앞에 까불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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