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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l 07. 2021

어쩌다 책방


책방 주인장들의 책을 읽는 것은 그 책방에 직접 가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독서다. <책방이듬>의 주인인 시인 김이듬을 만나기 전부터 페이스북을 팔로우하며 책방의 향기를 미리 맡은 참이었다. 막상 직접 가 본 책방은 생각보다 너무 작고 아담해서 잠시 앗,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그곳을 찾는 이들에겐 별 문제가 아닌 듯했다.(내가 갔던 곳은 호수공원 건너편에 있던 책방이었고, 다정한 골목길 안쪽으로 이사하고 새로 단장한 곳에는 아직 가 보지 못했다.) 고정순 작가가 그림책 작가로 살아가는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리에 갔던 것인데, 책방지기가 이야기 손님을 대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세심해 보여서 인상적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다소 무서울지 모르는 분, 이라는 인상을 받고 있었던 탓이다.      


“책방을 열기 전엔 전혀 알지 못했다가 책방에서 만나 벗이 된 이들. 이제는 서로서로 안부를 묻고 어쩌다 보이지 않는 이가 있으면 찾고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혼자 먹는 밥이 가장 달았던 이가 더불어 사는 법을 뒤늦게 알아가고 있다. 바람이 없다는 어떻게 항해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불어주는 온기로 이 배가 천천히 항해하고 있다.”(안녕, 나의 작은 테이블이여, 36)     

 

월세 160만 원에 부가세 16만 원, 그 돈을 벌기 위해 대학에서 강의로 번 돈과 원고료를 몽땅 갈아넣는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의 책방지기의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종일 앉아서 책만 봐도 행복하다. 그래서 엉덩이에 땀띠가 나기도 한다. 책을 실컷 읽고 난 후에 어딘가로 훌쩍 떠나면 미칠 것처럼 행복하다.”(294쪽)고 썼던 시인은 책방 가까운 아쿠아리움에서 일하는 청년이 어린시절부터 현재 생활까지 두어 시간 동안 풀어 놓는 이야기를 끊지 않고 들어주는 상담사이기도 했다. 책방이 아니었다면 그 청년도 절대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털어놓을 마음이 들지 않았을 테지. 책에는, 책방에는 그런 신비한 힘이 들어 있다.      


2015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1년 2개월 뒤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장례 비용을 정산하고 조의금이 약간 남자 서점을 차린 분도 있다.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는 2018년 4월, 페이스북에 서점을 열겠다는 글을 포스팅했고 ‘좋아요’를 누르는 이가 500명을 넘으면 진짜 열겠다는 공약대로 은평구에 <니은서점>을 열었다. 

     

“저는 제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서점의 고객이었죠. 서점을 그렇게 오래 들락거렸지만 서점 주인이 되고 나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서점이라는 무대의 뒤편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서점을 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서점의 숨은 모습을 알게 된 것이죠.”(이러다 잘 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99)     


나 역시 인생 대부분을 책방의 손님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또 언젠가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책방지기로 살아도 좋겠다는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서, 노명우 교수가 책방을 시작해 가는 모습은 참으로 부러웠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엄청나게 어렵지 않게 부드럽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서둘지 않고 조금씩 일이 되어 가게 하는 것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을 걸고’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뭔가 웃으며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틈이 없기 마련인데, 노명우 교수에게는 그냥 이런저런 농담을 건네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속초 <동아서점>의 부부가 목표한 매출에 미치지 못하는 날 자신들이 읽을 책을 서점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처럼, 책방지기 노명우 역시 책이 한 권도 안 팔리는 ‘빵 권 데이’가 예감되는 날 책을 산다고 했다. 한 달에 15만 원 정도에 이르는 돈을 자기 책방에서 책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책방을 차리게 된다면, 우리 책방의 최대 고객은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하게 되는 대목이었다. 술집 주인이 자기 가게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그 가게는 곧 망하고 만다 했는데, 책방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책방을 시작하면서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책방을 하고 싶다는 분들, 일반 서적을 다루는 작은 책방인데 부분적으로 독립출판물을 책방에서 다루고 싶다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게 된 건,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은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독립 출판물을 다루고 싶다는 걸 들을 때였다.”(내가 책방 주인이 되다니, 176)     

필름 카메라가 좋아서, 필름 카메라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 회사를 차리고 해방촌에 작은 책방을 열었던 책방지기 ‘마이크’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유어마인드>는 워낙에 유명한 곳이니 논외로 하고, 독립출판물을 펴내는 사람들의 꾸준함과 놀라운 에너지는 지금도 내게 불가사의 영역이다. 내가 할 수 없는 분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그래서 귀하다. 이런 책방을 꾸려 가는 마음을 드러내 보여 주는 이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      


“책에는 당연히 미래가 있다. 그리고 서점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것 말고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외양간 가득히 젖소를 가지고 있는 농부에게 미래에도 사람들이 우유나 코코아를 마실 것이라 믿는지를 묻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믿는 것 말고는 달리 남은 선택지가 없다. 농부에게도 그렇고 서점주에게도 마찬가지로 그것 말고는 없다. 둘 다 10년 뒤에도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는지는 의문스럽다.”(내가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271)     


독일에 살고 있으면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서점을 덜컥 인수해 버린 대책 없는 부부의 유쾌한 서점 생존기도 있다. 지역 도서관과 지역 학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서점으로 자리잡기까지 이 두 사람이 폐업한 서점을 인수해 탈바꿈시키는 모습은 한마디로 눈물겹다. 언제 망하나, 모두가 그 시기만 가늠하고 있을 때 이들은 거뜬히 살아남는 쪽으로 결말을 맺는다. 한 해에 두 번 서른 명의 영업사원들이 서점 뒷방으로 들어와 신간을 판매하는 행사(우리나라 출판사들이 이런 식으로 영업을 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몹시 생경하다.)를 무사히 치르고, 해마다 늘어나는 매출로 출판사 대표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작은 서점 주인들은 책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음”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우리 서점과 대형 서점 사이의 차이라는 게 알고 보면 대수롭지 않은 뻔한 것이고 좀 시시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꿈을 살아가면서 그것과 더불어 어느 정도 생계 유지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고, 반면 그들은 이익을 남기려고 애쓴다. 그것도 해마다 더 많이.”(197)라는 말만큼 정확한 분석도 없다. 


작은 동네 책방을 열어 그 마을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은 그저 생계 유지를 위한 약간의 매출을 기대할 뿐이다. 주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내 배를 불릴 생각 같은 것은 애초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탄광 도시에 헌책방을 열었던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헌책방들은 미지의 존재라는 정체성 덕분에 큰 매력을 갖는다. 소비자들이 맥도널드를 찾는 이유는 이스탄불에서든 미국 아이오와에서든 똑같은 맛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명 중고책방을 부러 찾는 이유는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에 보물찾기에 뛰어들 기회가 몇 번이나 있겠는가?”(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251)     


조용하고 적막했던 시골 마을에 들어선 헌책방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의 책방지기들은 “당신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우리가 뭘 하고 지냈는지 모르겠어요!” 하는 찬사를 받는다. 오가는 손님들이 끝없이 늘어놓는 인생 계획을 다 들어주고, 고양이 시중을 들고, 책을 꽂아 넣고, 책값을 매기는 일상 사이사이에 사람들과 함께 이런저럼 모임을 꾸리고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책방은 책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일일지도 모른다.”(한미화 86)는 말이 꼭 맞는 것 같다.     

 

“최근에 생각하는 것은 ‘절실한 책’이 잘 팔린다는 사실입니다. ‘진지한 책’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쓸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밑바닥과 대면하고 편집자가 그 생각을 헤아려 합당한 형태로 감싸고, 그것을 정중한 판촉으로 전합니다. 마케팅의 발상에서는 그런 책이 나오지 않습니다.”(서점, 시작했습니다, 171)     

대형 서점에서 18년 동안 일했던 쓰지야마 요시오가 도쿄에 자신만의 작은 책방을 열고 1년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무릎을 쳤다. 자신이 팔고 있는책이라는 상품을 이렇게 경건하게 대하는 사람의 책방이 잘 되지 않을 리 없었다. 『서점 시작했습니다』는 ‘나날의 책’을 트위터에 성실히 소개하면서 서점, 카페, 갤러리가 함께 있는 멋진 공간을 열어 사랑받고 있는 모습을 담은 책이다. 어찌나 성실하게 기록했는지, 책을 덮고 나면 마치 내가 책방을 열고 운영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지경이다. 


책방지기의 성격에 따라, 그 책방의 모습과 색깔은 완전히 달라진다. 책방지기가 어떻게 해 나가느냐에 따라 그 책방의 생존력 또한 180도 달라진다. 나라가 다르고 사정이 달라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사람이다.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책방지기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리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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