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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l 05. 2021

내 지난 시절의 책방

지금은 어떤 책방엘 가더라도 반드시 책 한 권은 사 들고 나올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이십 대의 나는 보고 싶은 책을 다 사 볼 수 없었다. 지금처럼 언제든 지갑을 열어 책을 살 수 있는 때가 내게도 오다니, 생각해 보니 나는 참 행복한 시절을 살고 있구나. 


오래전 그때는 책을 사러 책방에 가지 않았다. 그 시절 책방은 약속 장소였으며,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기를 기대하며 몇 시간쯤 서성이는 곳이기도 했고, 읽던 책을 놓고 나가기가 아쉬워 기다리던 사람이 많이 늦거나 아예 오지 않기를 기대하게 되는 곳이기도 했다. 손전화가 없던 시절엔 상대가 왜 늦는지도 모르고 속절없이 시간을 버티는 곳이었고, 약속 시간에 늦는 일이 허다했던 나의 벗들은 자신이 늦어도 화를 내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다. 약속 장소가 서점이 아니었던 어느 날에는 겨우 5분 늦었다가 나에게 된서리를 맞기도 했지. 책방의 시계는 현실의 시계보다 20퍼센트쯤 늦게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었던 날들.


아직 동성로에 <제일서적>이 남아 있던 시절, 오랜만에 대구에 가게 되면 반드시 그 책방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제일서적> 좌우 후미진 골목길 작은 술집 하나에 깃들어 소주를 시켜 놓고, 김치찌개 하나로 몇 시간씩 투쟁가를 불렀던 날들이 거기에 있었다.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해서인지, 크고 화려하게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교보문고의 기세를 어쩌지 못해서인지 <제일서적>이 결국 부도를 맞고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마음이 이상했다. 2층 올라가는 계단 벽에 빼곡이 꽂혀 있던 김용택과 정호승과 안도현의 시집들을 갈 때마다 펼쳐 들었던 열일곱의 내가 애잔해졌다. 그 궁벽한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혹은 선 채로 읽은 시를 또 읽고, 외운 시를 또 보고, 아껴 가며 읽고 또 읽었던 나의 시간들이 함께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베스트셀러로 가득했던 1층을 지나 2층에 올라가면 폐 가득 달겨들던 책 냄새가 참 좋았는데.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게, 아버지 일의 뒤를 잇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여기 나의 서점을 소개한다. 

그곳엔 빛바랜 책이 아무렇게나 꽂혀 있고, 때로 음식 냄새가 고약하게 진동을 하며, 여차하면 불 꺼진 지하에 웬 손님 한 명이 갇혀 있을 때도 있다. 

사진 한 장 남겨둘 예쁜 모습일랑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설령 찾는 책이 있다고 한들 분류가 엉망이라 웬만해선 찾기 어려우니, 시간을 넉넉히 낭비할 마음을 먹고 방문하시는 게 좋다.”(당신에게 말을 건다, 190)  

   

내가 자란 대구에 속초의 동아서점 같은 오래된 책방이 없다는 게 몹시 아쉽다. 할아버지 김종록이 처음 문을 열었고, 그 아들 김일수가 번영을 이루었으며, 손자 김영건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서점을 열어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있는 모습은 황홀하다. 책방에 온 손님을 사랑하게 되어 급기야 결혼을 하고, 둘이 함께 책방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풍경은 사뭇 아름다웠다. 한 달에 한 번 동아서점에 와서 절판된 시집을 발견하곤 했다는 손님, 팔순 넘은 나이에도 서점 나들이를 포기하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찾아와 책을 사 가는 분, 평전을 즐겨 읽어 책방에 ‘평전’ 코너를 따로 꾸미게 만든 분들을 기억하고 귀하게 여기는 책방 주인의 마음이 참 좋았다. 아르바이트생만 있는 곳이었다면, 그런 손님들을 발견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와서 신촌과 홍대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살던 시절에는 <홍익문고>에서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1957년부터 신촌 일대에서 책 노점을 하던 박인철 씨가 <홍익문고>를 처음 열었고, 1978년에 지금의 <홍익문고> 자리에 책방을 차렸다 하니, 그 역사가 굉장한 곳이다.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서점이라 겨울이면 특히 더 손님이 많았던 책방. 추위를 피해 들어간 사람들이 기다리다 책을 보고, 그 책을 사 들고 웃으며 거리로 나서던 시절이었다. <홍익문고>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찻집 <미네르바>에 가거나,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종로나 인사동에서 약속이 있을 때는 붐비는 광화문보다 조금 한갓진 <종로서적>을 약속 장소로 잡곤 했다. <제일서적>과 비슷한 시기에 <종로서적> 역시 부도가 나면서 책의 시대는 저무는 걸까, 절망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책 만들어 먹고사는 일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으나, 그때는 좀 더 원초적인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미래가 불확실한데, 이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던 날들. 


홍대에 자주 오가게 되었을 때는 시공사에서 운영하던 서점 <아티누스>에 자주 갔다. 홍대 놀이터 근처에 있던 그 서점엔 어쩐 일인지 1차와 2차 사이, 조금 알딸딸한 상태에서 들르는 일이 많았는데, 가질 수 없는 온갖 멋진 것들을 눈으로 구경하며 허기를 달래던 곳이었다. <숲속책방>의 백창화 선생은 이곳을 “함께 있던 아트숍에선 나처럼 문구류에 정신 못 차리는 가난한 청춘들이 차마 살 수도 없고, 그냥 돌아설 수도 없는 고급 아트상품들과 문구류로 가득해서 공간 자체가 로망”이었던 곳이라 했다. 완전 동의한다. 


상수역 가까운 곳에 살았을 때는 <땡스북스>와 <상상마당> 1층 책방이 만만했다. 슬리퍼를 끌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에 책방이 있다는 것은 혼자만 즐기는 고슬고슬한 재미였다. 토요일 느지막히 일어나 집 앞 까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책방에 들러 책 한 권 사서 들고 들어오면 하루가 꽉 차곤 했다.      


“책이라는 미디어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부터 지금껏 그랬듯 시대에 맞게 책의 물성은 변하고, 책방의 모습도 달라질 테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 ‘여기’가 아닌 ‘저기’를 꿈꾸는 사람들, 책을 읽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책과 책방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리라는 점이다.”(한미화, 9)     


책방에 가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몰랐던 책을 ‘발견’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서점은 오아시스다. 내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는 책방들의 이름은 계속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은 사실 하나, 그것이 어떤 형태든지 언제나 서점은 있어 왔다는 것.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책방들에 더 기대를 걸어 보게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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