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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Jul 21. 2021

도서관이 가까운 동네에서 산다는 것

        


언제나 책이 고팠다. 집에는 언니, 오빠들의 교과서나 참고서 말고 다른 문학책은 없었다. 6학년 졸업 무렵, 아버지가 아는 분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세계문학전집을 들여놓기 전까지,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곤 어쩌다 친구 집에 갔을 때 그 아이 책장에 꽂힌 책들을 섭렵하는 것뿐이었다. 아무도 내게 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는 지금의 내 아이에게, “넌 진짜 행복한 거야. 엄마 어렸을 때는...” 이라고 말해 봤자 실감하지 못하는 행복이다. 


우리 세대는 책에 대한 결핍감이 있는 세대라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책이 읽고 싶어도 마음껏 사서 볼 수 있는 형편이 못 됐던 것이다. 좋은 책이 지금만큼 많이 출간되지도 않았지. 그러니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대구시립도서관에서 2주일 동안 독서 프로그램을 여는데 참석하라고 선생님이 추천해 주셨을 때 얼마나 황홀했겠는가. 내가 책이 고픈 아이라는 것을 어찌 아셨는지, 다시 생각해도 그 선생님 참 감사하네. 대구 시내 초등학생 6학년 중에서 스무 명인가 모여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프로그램 끝날 때 독후감을 써내는데 그 2주일이 얼만 즐거웠는지 끝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아깝고 아쉬웠다. 버스비 아깝다고 어디 가지 말라는 우리 엄마에게 학교 일이 아닌 개인 볼일로 도서관에 가야 한다는 걸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2주 동안 날마다 책을 몇 권씩 읽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그날 처음 빌려 본 책이 『아아, 무정』이라는 제목으로 아동용으로 쉽게 간추려진 『레 미제라블』이었다. 물론 일본말이었고 삽화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 읽는 재미에다 황홀감을 더해 주었다. 간추렸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두께의 책이어서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까지 속독을 했는데도 다 읽지 못했다. 대출은 허락되지 않았다. 못다 읽은 책을 그냥 놓고 와야 하는 심정은 내 혼을 거기다 반 넘게 남겨 놓고 오는 것과 같았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40)     


책이 귀했던 시절, 박완서는 처음으로 공립도서관에 간 주인공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칠 것 같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나는 이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한 시간도 넘게 걸어서 가야 하는 거리였지만 도서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때로 책은 밥이나 사탕보다 훨씬 더 삶에 필수적인 요소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학생도서관>이라는 곳에 2주에 한 번씩 가기 시작했다. 역시 학교에서 추천해서 가게 된 것이었는데, 대구 시내 중학생들 가운데 신청을 받아 연합 동아리를 꾸렸는데, 거기 신입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고는 친구랑 수다 떠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토론이라고? 독서 토론은 어떻게 하는 거지? 조금은 떨면서 갔던 것 같다.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제법 체계가 잡혀 있던 그 토론 모임에서 선배들이 맨 처음 토론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분명히 같은 중학생인데,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이지? 우리 말인 건 맞는데 이렇게 알아듣지 못하다니, 나는 바보가 아닐까? 책을 더 많이 읽으면 나도 저렇게 근사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지금 생각해 보면 겉멋으로 충만한 열네댓 살 아이들이었을 뿐인데, 엄청나게 멋져 보였다. 


그곳에서 만난 누군가와 책을 매개로 관계가 지속되었다면 영화 <러브레터>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같은 로맨틱한 이야기로 발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언제나 영화 같은 만남, 영화 같은 이별은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뿐, 일상은 비루하고 한결같이 여여할 따름이다. 


그래도 좋았다. 2주에 한 번,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선배 언니, 오빠들과 한 권의 책을 두고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뭔지,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마음을 열어 이야기하는 모든 순간들이 다 좋았다. 도서관에서 집까지, 걸어서 가면 한 시간쯤이었는데 그날 빌린 책 한 권을 들고 오래도록 천천히 걸어 집까지 가는 시간도 가슴 벅차게 좋았다. 학교에 가면 온통 여자애들뿐이었는데, 그곳에 가면 입만 열면 굉장한 말만 하는 오빠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그래픽노블 버전으로 다시 읽다가 주인공 힐데군스트가 책의 도시 부흐하임에 사는 부흐링들에게 도대체 뭘 먹는지 묻는 장면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뭐? 책을 먹는다고?”

“아, 진짜 먹는 건 아니야! 책을 읽으면 배가 불러.”

“너희 농담하는 거 좋아하는구나, 응?”

“책에 관한 한은 농담 안 해! 우리는 문학을 읽어서 칼로리로 바꿔. 그렇게 신진대사가 이루어지지. 신진대사가 너무 활발해서 안타까울 지경이야! 난 지금 장편소설을 전혀 못 읽어! 엄격하게 서정시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거든!”(꿈꾸는 책들의 도시 2, 26)     


책을 읽고 만족감에 취해, “아, 진짜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아.” 이야기하던 순간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래도 책만으로는 절대로 배가 부르지는 않았다. 다만 그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얘기일 뿐. 그러나 부흐링들에게는 책을 읽는 행위가 실제로 물리적으로 에너지를 채우는 행위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학생이 되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들어간 나는 2주에 한 번씩, 일상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공간과 도킹하는 경험을 했고, 3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다른 학교 학생들과 독서 토론을 계속해 나갔다. 그렇게 책을 읽는 동안 영혼의 허기가 조금씩 채워졌다 믿는다. 육체가 성장하는 동안, 부흐링들이 책을 통해 신진대사를 했던 것처럼 나의 정신 또한 함께 성장해 나갔다고 믿는다.      


어린 날의 독서 경험은 어른이 된 뒤의 삶에도 그대로 연결이 된다. 책이 풍족한 삶이었든 아니든, 책에 허기진 삶이었든 아니든 책을 좋아하는 어린이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의 공간을 향해 나아가곤 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교도소 안에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예산을 요청하는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책에 대한 믿음과 신뢰, 애정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곳에서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재소자를 돕고, 책을 펼쳐 들고 읽는 순간 잠깐은 자유를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구타와 폭력이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저녁 바람은 부드럽게 불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눈 감은 채 음미했던 순간들 역시,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공감하게 한다.      


이사를 간다면 책방과 도서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를 가장 먼저 살펴보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진짜 어른이 된 뒤에는 그것이 맘처럼 쉽지 않은 일임을 금방 깨달아야 했지만. 별다르게 결심하거나 따지지 않아도, 누구나 책방과 도서관 가까이 살 수 있는 그런 곳을 꿈꾼다. 5분만 걸어가면 작은 도서관이 있고, 5분만 걸어가면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며 환대하는 멋진 동네 책방이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아는 사람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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