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Mar 11. 2024

어떻게 죽고 싶은가

동백꽃처럼 한 번에 툭, 질 수 없는 것이 삶이어서... 


친구가 문득 물었다. 


“어떻게 죽고 싶어?”


그러면서 자신은 죽을 때 덮을 이불이 뭐였으면 좋겠다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았다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알았다. 나는 그저 노환으로 오래 아프지 않다가 죽었으면 좋겠다, 정도만 생각했을 뿐, 어떻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아직은 먼 일이라 여겨서였을까. 깨닫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언니는 말했다. 혹시나 자기가 치매를 앓는 시간이 와도, 아이에게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고. 그 순간까지 자신은 최선을 다했으므로,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그 시선이 더 힘들 거라고. 


나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봤다. 

내 장례식에 올 법한 사람들의 명단을 추려 미리 장례식을 치러 보면 좋겠다 싶었다. 


“몇 살에?”

“글쎄, 한 77살쯤? 뭔가 행운의 숫자가 겹치니까. 하하.”

“좋긴 한데. 장례식 하고도 몇 년을 더 살면 그건 그것대로 좀 민망할 것 같다.”


그건 또 그러네. 

장례식은 미리 치르지 못해도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불필요한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선택은 미리 할 수 있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신청하려고 보건소에 갔더니, 벽에 “소중한 나,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죽음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등록증도 신청했다. 어머니의 병환을 함께 겪어 내면서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들이 늘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연명의료중단에 대해서도 정확한 개념을 알게 되었다.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받지 않는다는 결정이지,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적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다. 본인이 원한다고 해서 무작정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도 아니고, 병원 내 윤리위원회에 소속된 의사들이 함께 결정해야 한다. 환자 본인이 원한다고 해도 무작정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나오는 길, 다음엔 장기 기증하러 같이 가자 했더니 남편이 그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케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 거지.     


죽음을 터부시하지 말자. 노화를 혐오하지 말자. 태어난 이상 누구나 늙고, 누구나 죽는다… 말은 쉽다. 그러나 막상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라치면, 무엇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하지. 겪어 본 적 없는 일이니까. 언젠가 죽음 체험이라고, 관 속에 들어가 눕는 체험을 하는 것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관 속에서 자신의 생을 파노라마처럼 보고 나왔다는 사람도 있고, 펑펑 울면서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미리 유서를 쓰는 행사에 사람들이 몰리기도 하고, <모두 웃는 장례식>처럼 자신의 장례식에 사람들을 불러다 함께 웃고 떠드는 이야기가 담긴 책도 있다. 죽음을 죄악시하고 입에 올리기조차 꺼리던 세상으로부터는 몇 발자국쯤 흘러온 셈이다. 톨스토이는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지만,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살아 있는 지금에 충실하는 것 또한 썩 틀린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노년을 준비한다고 할 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본 이들이 몇이나 될까?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지만 막상 그런 곳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감정적으로 무너지기 쉽다. 우리 아버지를 보아도, 어머니를 보아도 그랬다. 경제 능력 충분하고, 엄마와 아버지가 함께 지낼 수 있는 곳에 미리 가 보기도 했던 아버지는 엄마가 인지장애 판정을 받자 오히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지 말자고 하셨다. “멀쩡하지도 않은 상태로 가면 구박받는다”면서. 결국, 엄마의 무너지는 정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어디로든 보내자고 하셨지만, 여러 가지로 여의치 않아서 집에서 계속 모시게 됐다. 당신 혼자서는 요양병원에서 지내는 하룻밤도 견디기 어려워하시더니 지금은, 죽을 때까지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으셨다. 언니네 집에 모시겠다고 해도, 안 된다 하신다. 두 분을 돌보아야 하는 기간이 더 길어지면 결국 자식들이 두 손 들고 포기하는 순간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이런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 같다. 


기관에서 생활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자신의 기호를 마음껏 얘기할 수 없다는 데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는 딸기를 먹고 싶어.”라는 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것. 공동생활을 하는데, 짜여진 식단에 맞춰 살아야 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것 위주의 식단이나 일상을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누군가 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상태, 국수를 싫어하는데도 먹어야 하는 상태, 그런 생활이 싫지만 대안이 없는 삶. 어르신의 자리에 나를 놓고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무거워진다. 그러나 어쩌면 이미 맞닥뜨린 현실이다. 


이런 이야기 끝에 나오는 결론이라고는 운동하자, 건강하자, 약 잘 챙겨 먹자, 같은 것들이다. 왁자하니 웃으며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도 아직은 현실이 아니라는 여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잘 죽는 것이 무엇인지, 내 죽음의 형태는 어쩌면 좋을지 미리 상상해 보고, 죽음의 순간을 디자인해 두자. 어른들의 병환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들이다. 


작가의 이전글 주간보호센터와 요양병원 사이 그 어디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