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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Mar 06. 2024

주간보호센터와 요양병원 사이 그 어디쯤

항암 받으시는 동안, 잠깐 진관사 나들이.


2022년, 아버지가 세브란스에서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의사가 말했다. 항암 주사를 맞는다는 것은 몸에 독약을 넣는 거나 다름없으니, 그걸 잘 씻어내야 회복이 빠르다고. 아버지가 받고 있는 독한 치료가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물을 많이 드셔야 하고, 운동도 많이 하셔야 한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기력이 떨어진 아버지는 물도 싫고 운동도 싫다셨다. 가만히 있어도 힘든 연세, 거기에 힘든 치료와 운동까지 해야 하니 “몸이 천근만근”이라는 소리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올 만했다. 항암 주사 맞으시는 동안 요양원에 가 계시자고 의논을 했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기 힘들어서 병원 앞에 방을 얻어 두었지만, 아버지는 자꾸만 대구 집에 가자 하고, 기차 타고 대구에 오가는 동안 실시간으로 아버지 몸이 축나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무엇보다 집에 가도 아버지가 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집에 있으면 엄마가 아버지 편찮으신 걸 잊고 수술 자리를 건드리거나, 기대거나, 칭얼대거나 하기 때문이었다. 큰언니가 옆에 있지만 아버지가 열이 오르거나 힘들어하실 때 드릴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도 분명했다. 


“할아버지는 별로 안 보이시네요?”


우리집 근처에 있는 요양병원에 상담을 갔는데, 계시는 분들 대부분이 여자 어르신이고 남자 어르신은 보이지 않아서 상담하시는 분께 물었다. 


“네. 남자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집에서 돌볼 분들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남자분 중에는 기질적으로 이런 곳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간혹 나오셨다가 기관이 맞지 않다 판단하는 경우도 있어요.”


폭력성을 보이거나 아무렇게나 맘대로 하려는 남자 어르신들은 요양병원에서도 기피하는 대상. 결국 그분들을 돌보는 것은 집에 있는 여성 노인이거나 며느리거나 딸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여자 어르신이 아플 때는 집에 있는 남성이 돌봄을 자처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항암 단계에 있는 이들이 주로 찾는 요양병원의 여성 입원자 비율이 높은 것이다. 여성 환자들은 요양병원에서도 친구를 쉽게 사귀고, 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내는 반면 남성 환자들은 상대적으로 그게 쉽지 않은 편이라 했다. 


두 달만 입원하자 겨우 설득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영양주사도 맞고, 열이 날 때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자식들 마음과는 달리 아버지는 혼자 있는 요양병원이 편치 않았다. 입원 다음 날 새벽에 아버지 전화를 받았다. 


“나, 대구 내려갈란다.” 


결국, 큰언니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아버지 옆에 있기로 했다. 낯선 병원에 혼자 있는 것이 싫다며 노여워하시는 아버지 말을 그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걸어야 한다고 강권해 아무리 병원 이리저리 걸어도 하루 2천 보가 될까 말까. 몸이 힘드니 그러시는 거겠지만. 아버지를 부축한 큰언니의 깊어진 눈을 뒤에 두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노라면 어머니가 오실 시간이다. 시어머니는 아침 9시부터 5시 30분까지 주간보호센터에서 생활하신다. 인지장애 초기에는 색칠 활동이나 노래 활동 같은 것에도 조금씩 참여하시는 것 같았지만 요즘은 가서도 참여보다는 ‘관람’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오시는 듯하다. 나도 일을 해야 하고, 어머니에게만 매달려 있을 수 없으니 주간보호센터의 존재가, 그곳에 계시는 요양보호사님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센터에 가서 하루 걸러 한 번씩 변 실수를 하실 때가 있었다. 센터 차량 기사님에게 비닐에 담긴 어머니의 옷을 돌려받곤 할 때는 이러다 센터에서 그만 오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진심으로 했다. 걱정스러운 말을 전하면 “저희는 이게 직업인데요. 걱정 마세요.” 하시곤 했지. 말씀이라도 얼마나 감사한지. 


어머니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세탁기에 넣기 전에 주머니를 뒤집으면 센터에서 그린 그림들, 색칠하다 말고 꾸깃꾸깃 넣어둔 종이, 침인지 물인지로 잔뜩 젖은 휴지뭉치, 마스크 같은 것들이 쏟아졌다. 어떤 날은 색연필이, 또 어떤 날은 연필이 들어 있기도 하고 손거울이 들어 있는 날도 있다. 센터 것은 모아서 돌려드리고, 어머니가 주머니에 자꾸만 넣어 가시는 손거울은 닦아서 소파 옆에 둔다. 손거울을 자꾸만 바지 속에 집어넣으시는 건, 재활용 쓰레기 버리러 나가면서도 의관을 정제하곤 하셨던 단정한 시절의 어머니 습관이 남아 있어 그러신 건가 싶기도 하다. 왜 그러시는지, 그 머릿속에 든 생각이 무엇인지 끝내 알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자존심 강하던 우리 어머니가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지팡이를 구입하는 걸 보고 난 후.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화성인에게 납치당할까 봐 절대 혼자 있지 않으려고 하는 셀바 아주머니 이야기, 요양원으로 찾아오는 자식들에게 주려고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을 모아 몰래 감춰 두는 이스마엘과 우고의 어머니 훌리아의 이야기 같은 것을요.”     



그래픽 노블 <주름>을 그린 파코 로카의 ‘작가의 말’ 한 대목이다. 요양원에 사는 여러 어르신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이 책에서 기억을 잃은 은행가의 현실과 요양원에서 함께 생을 마감해 가는 중인 부부의 이야기와 그 모든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 주고 싶었던 사랑스러운 악당의 이야기까지 실감나게 보았다. 우리나라 요양원과는 많이 다른 분위기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히는 차원에서, 우리 요양원의 일상을 담은 책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 항암에 전념하는 동안, 그리고 큰언니가 그런 아버지 곁을 지키는 동안 집에 남은 엄마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요양보호사가 오시기 전까지의 공백은 가사도우미의 도움으로, 그리고 요양보호사의 퇴근 이후에는 작은오빠와 작은언니가 번갈아 엄마의 곁을 지켰다. 형제 많은 집이라 가능한 돌봄이었고, 그 모든 것들을 받쳐 주는, 퇴직한 큰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양보호사는 엄마의 끼니를 챙기고, 밥과 약을 챙기고, 운동과 목욕을 챙겨 주었다. 딸과 아들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몇 번이고 되풀이해 말해 주었고, 발음하기 힘든 단어들을 따라 하시게 했다. 아버지가 치료받으러 가 있다는 사실과 언제쯤 돌아오실 거라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아버지 없이 불안한 엄마는 보자기에 짐을 싸들고 현관문을 나서기도 하고, 자다 깨서 울기도 하고, 당신이 이제 겨우 열 살이라 말하기도 했다.     

 



점심으로 누룽지탕과 자장면을 먹었다. 아버지도 식욕이 없으시고, 언니랑 나도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 두 가지만 시켜 먹을까 했더니 아버지가 그러신다. 


“죽기 전에 돈 다 쓰고 가야지. 세 개 시켜라.”


병이 사람을 달라지게 한 건지, 시간이 사람을 달라지게 한 건지. 그 옛날 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냐 하면, 엄마가 회 먹고 싶다 해서 포항까지 차를 몰고 가셨더란다. 그런데 막상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 가 보니 너무 비싼 거다. 그리하여 엄마랑 아버지는 바람 부는 포항 바닷가에서 회가 아니라 자장면을 먹고 돌아온 것이었는데. 가끔 생각했다. 오늘의 내가 그날의 부모님께 가서 회 한 상 거하게 사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인지장애는 식성마저 달라지게 하는 것인지 엄마는 그리도 좋아하던 회를 보고도 고개를 외로 돌리고 마는 사람이 되고 말았고, 항암 중인 아버지는 날것을 먹으면 안 되는 몸이 되었다. 


아버지는 음식 앞에서 자꾸만 한숨을 쉬시며 “아이고, 어떻게든 또 한 끼 먹어 보자.” 하신다. 아픈 엄마를 두고 먼저 갈 수 없다며 힘내서 항암을 받고 있긴 하지만, 아버지의 몸은 그런 마음을 양껏 따라가기가 힘에 부친다.      



2022년 8월, 내 일기장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리 식구 모두, 그 시기를 어떻게 넘어왔는지 돌아보면 아득하기만 할 뿐, 감정은 선연하지가 않다. 


요양병원 생활은 끝내 두 달을 못 채웠으나 다행히 아버지의 치료는 성공적인 경과를 보였고, 엄마의 상태는 아버지의 상태와 정확히 반비례하는 중이다. 그동안 시어머니 역시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는 중이다. 세 분의 하루하루를 옆에서 바라보며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주간보호센터와 요양병원, 혹은 요양원 그 어디메쯤에 있으려나? 인생 모든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 바로 오늘,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저만치, 이제 겨우 열 살 된 내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안아 달라 달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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