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냐

_ 김선미 작가 <비스킷>, 그리고 그 아이 영숙이

by 단비

하필이면 이름도 영숙이었다.


수많은 이름들 중에, 어쩜 그렇게 성의 없이 지은 걸까 싶은 그런 이름, 그것이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나보다 윗 세대 중에는 좀 더 흔했을 그 이름은 내 또래 중에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더 눈에 띄었던 이름, 동시에 좀처럼 눈에 띄는 법이 없었던 그 아이가 선명히 떠오르는 소설을 만났다. 김선미 작가의 <비스킷>이다.


그 아이를 만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1학년, 2학년 올라오는 동안 어지간한 아이는 소문으로라도 들어봄직했는데, 영숙이는 같은 반이 되고도 한참 동안 말 한마디 섞어 보지 않은 채였다. 열다섯 여자아이들은 둘만 묶어 놓아도 그저 웃음이 팡팡 터질 때였는지라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이 1초도 없었을 것 같은 시절이었다. 말이 없던 그 아이는 와글와글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뒤로 가끔씩 소리 없는 미소를 얹을 뿐, 목소리를 높여 아이들 사이에 끼여드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어느 날, 그 아이가 내 손에 종이 한 장을 쥐여준 것은 몹시 뜻밖이었다. 자기 집에 놀러오라는 초대장이었다. 날짜는 오늘.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그냥 말로 해도 되는데, 굳이굳이 직접 초대장을 만들고 거기에 꾹꾹 눌러 쓴 손글씨를 담은 것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내게도 전해졌던 모양이다. 친하지도 않았던 아이의 초대에 선뜻 응한 것은 그래서였겠지.


놀라운 일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영숙이가 나를 데려간 곳은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집이 아니었다. 집치고는 몹시 컸는데, 문패가 아니라 “〇〇보육원”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영숙이가 조용하긴 했지만 보육원 아이였으면 아이들 사이에 말이 돌았을 법도 한데,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보육원이 어떤 곳인지도 사실,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영숙이는 나를 데리고 자기 집을 안내하고, 식당에 있던 언니들, 오빠들에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왠지 부끄러워하던 영숙이.


그날은 영숙이의 생일이었다. 진짜 생일도 아니고, 보육원에 온 날을 생일로 삼은 아이. 알았다면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했을 텐데, 나는 아예 몰랐다. 그날 그 아이가 왜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는지 나는 모른다.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에 자신도 남들처럼 친구를 초대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던 것인지, 나를 특별한 친구로 여기고 있다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러기에는 우리 사이에 쌓인 것이 너무도 없었지만.


그날부터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이라 기대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날 영숙이와 몇 명의 식구들이 함께 쓰는 영숙이 방에 엎드려 같이 뭔가 수다를 떨기도 했고, 식당에서 뭔가 먹기도 했겠으나 영숙이와 베프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날, 학교에서 영숙이와 나는 그전과 똑같은 사이였다. 다만, 그날 이모네 집이 영숙이 집과 가까워서 집으로 가지 않고 이모네 집으로 갔는데 가끔씩 영숙이가 쓴 손편지가 이모네 집 우체통에 들어 있다며 사촌언니가 연락을 하곤 했다. 영숙이는 내게 왜 그런 마음을 쓴 것일까?


그러나 영숙이가 바꿔 놓은 것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대전의 한 보육원을 알게 되고, 그곳의 한 아이와 개인 결연을 맺고 집으로 아이를 초청하거나 생일에 찾아가거나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은 단연코 영숙이였다. 그날의 초대가 없었다면 내 삶의 어느 순간들에 한 아이를 깃들게 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내 없는 듯이 존재하던 영숙이가 내게 편지를 전하고, 초대하기까지 어떤 감정의 동요가 있었을지 나는 모른다. 그 모든 것을 짐작하기에 나는 많이 어렸다. 그날 이후, 영숙이는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 반에 확실히 존재하는 아이였다.


“비스킷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주변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다. 세상에서 소외되면 많은 사람들은 자존감을 잃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용기마저 잃고 만다. 그렇게 스스로 고립을 택하고 자신을 지켜 낼 힘을 잃으면서 단계를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스스로를 지켜 내기 위해 힘껏 노력하지만, 꾹꾹 눌러 담았던 쓸쓸한 마음이 어쩔 수 없이 왈칵 쏟아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모습이 희미하게 깜빡거린다. 그때 필요한 건 어디로 나아갈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아득함을 함께 바라보고 손잡아 줄 수 있는 누군가다.

누구나 비스킷이 될 수 있다. 또한 누구나 비스킷을 도울 수 있다.”

_ 소설 <비스킷> 에필로그 중에서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인 <비스킷>은 2023년에 출간되었고, 지금 현재 교보 베스트셀러에 랭크 중이다. 소리 강박증과 청각 과민증, 소리 공포증을 동시에 지닌 주인공 제성이 존재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 돕는 이야기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이 사람들은 실제로 보이지 않는다. 학대받는 동안 자기 존재감을 잃어버린 아이는 경찰이 찾아와 코앞에서 찾아도 눈에 띄지 않는 ‘비스킷’ 상태가 되어 있다. 직장에서 따돌림당하는 간호사나 채식주의자라는 이유로 고통받던 도주가 제성의 도움을 얻어 또렷한 자기 형태를 찾아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아빠는 나빠. 언니 오빠들은 내가 소중하댔어. 근데 아빠는 나보고 죽으라고 했어. 그런 나쁜 말은 하면 안 돼. 나는 안 죽을 거야.” 외치는 아이 모습에서 판타지라서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든다. 판타지가 아니었다면 리얼리티 떨어진다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을 거야. 맘 졸이며 읽다가 해피엔드라서 다행이야, 생각하며 책장을 덮었다.


영숙이는 지금 어떤 얼굴로 살고 있을까? 끝내 알 길은 없겠지만, 나에게 자기 집을 보여 주고 싶었던 마음을 간직하는 어른으로 당당하게 자랐을 것이라 믿고 싶다. 지금이라면 그 아이가 내 준 용기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수 있을 텐데. 서툴렀던 그 초대에 똑같이 모자라게 대했던 어린 나보다 조금은 더 현명한 하루를 선사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튼 <비스킷>은 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다른 사람 마음을 어떻게 두드려야 할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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