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집을 엿보다

모르는 사람과 동네 친구 되기

by 단비

한자 각各은 ‘각각’이나 ‘따로’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뒤져서 올 치夂’ 자와 ‘입 구口’ 자가 만난 글자인데, 치夂 자는 발을 그린 글자란다. 그러니 이 글자는 어딘가 도착한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각’ 혼자 있을 때는 별로 사랑스럽지 않은데, 다른 부수와 만나면 꽤 정다운 글자가 된다. 어딘가 도착해서도 여전히 혼자일지 아닐지, 풍찬노숙 신세를 면할지 어떨지 궁금해진다고나 할까.


各 자 위에 갓머리를 씌우면 ‘손님 객客’ 자가 되고, ‘문 문門’ 자를 씌우면 ‘집 각閣’ 자가 된다. 누각, 장서각 할 때의 그 ‘각’이다. 혼자, 각자, 따로 있던 존재가 지붕을 만나 손님이 되고, 나그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문 안으로 들어서면 안정감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즉자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누군가의 집을 엿본다는 것은 그래서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이 된다. 어떤 아름다움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을 집에 담고 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설렌다. 그러나 그 집이 나를 환영해 줄지,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내 마음이 통할지 어떨지 모른다는 점에서 두렵다. 스레드에서 @jeongbalsancatcher 님이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걸 보고 용감하게 초대에 응했다. 내가 지금 발을 내밀어 가 닿은 곳이 그저 스쳐 지나는 풍경이 될지, 아니면 나를 정겹게 머물게 해 줄 지붕이 될지는 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를 초대한 ‘정발산’ 님이 단독주택 단지로 이사한 것은 이제 1년 정도다. 집을 짓는 일은 사람을 10년쯤 늙게 만드는 일이라던데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분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집과 더불어 새 삶을 찾아가려 애쓰는 동안 집을 매개로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고민했고, 음식과 책이 함께하는 행사를 준비하게 됐다. 정발산을 오르내리거나 아이들과 숲체험을 가거나 마두도서관에 들렀다 잠깐 산책을 하면서 수도 없이 오갔던 마을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다. 모르는 이웃의 집에 들어가는 마음이 조심스러우면서도 두근두근 즐겁다.



자신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 주고 그곳에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겠다 생각한 자체만으로도 놀라운데, 음식 솜씨마저 굉장한 분이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좋아하기는 하는데 잘하는 건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식탁 위에 펼쳐지는 음식들은 그런 겸양을 무색케 했다.


라임을 곁들인 상큼한 ‘허브 라임 피즈’부터 직접 구운 빵 위에 아보카도와 당근 라페, 수란을 올린 ‘오픈 샌드위치’, 그리고 4시간도 넘게 끓였다는 볼로네제 소스가 감동을 준 ‘볼로네제 파스타’, 피스타치오를 품은 ‘미트볼 폴페테’에 이어 달콤상큼한 디저트 ‘바닐라 판나코타’로 이어지는 모든 요리가 일반인이 준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 집에서 차로 5분밖에 안 걸리는 곳에 왔는데, 어딘가 멀리 여행이라도 온 것처럼 생경한 신선함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조명을 적게 쓰고 햇볕을 최대한 끌어들인 따뜻한 집이라 더욱 정겨웠고, 숨어 있는 별채는 보석처럼 빛났다. 이렇게 멋진 공간을 숨기고 있는 집이라는 건 밖에서 보아서는 절대 몰랐을 테지. 스쳐 지나가는 만남과 더불어 시간을 보낸 벗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눈 오는 날 창밖을 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은 그런 공간을 만들어낸 집주인을 새삼스레 돌아보게 되는 곳이다.



“평범한 동네의 하루를 기록하는 건, 그래서 사사로운 기억의 복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억의 조각보를 모아 만든 지도가, 동네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 오늘 내 삶터는 무사한지 들여다보는 질문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_ <평범한 동네의 하루> 프롤로그 중에서


책과 요리가 만나는 ‘북셰프’ 행사였던지라 <평범한 동네의 하루>를 만든 이야기도 곁들여지고, 마을과 집의 이야기가 오르락내리락 자연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함께 간 일행이 말했다.


“우리 잠깐 딴 세상에 다녀온 것 같아.”


그래, 그랬다. 누군가의 대문 하나를 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는 현대인으로서는 모르는 이의 주방에서 받은 환대와 곁을 내준 그 마음이 차라리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저 손님으로 지나갔을 법도 한 우리의 만남은 어느 순간 견고한 ‘각閣’으로 세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6년엔 뭔가 재미난 일들이 많이 생길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하는, 기꺼운 시간이었다.



* 이번 행사를 진행한 @culibus 의 인스타그램에 가면 ‘정발산의파수꾼’ 님 말고도 어려 다양한 하우스테이너들을 만날 수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방문 바란다. 행사를 기획해 준 분들과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분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시간이 되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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