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한기와 싸우며 에어컨을 기다리던 중
한국에서 미리 신청해 두었던 영어 유치원 설명회 날이 다가왔다.
집안의 냉기보다 더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내 마음이 공식적인 첫 외출을 앞두고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설명회 전날
준비물인 실내 슬리퍼와 신발주머니를 챙기고 나니 정작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았다.
일주일이면 재류자격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옷을 단출하게 챙겼던 게 화근이었다.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들 옷은 틈틈이 샀지만, 내가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면 귀신같이 아이들이 지루함에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등 떠밀리듯이 다른 곳으로 가기 바빠 옷을 한벌도 사지 못했다.
결국 나는 후쿠오카의 어느 공원
늘 같은 시간에 하얀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타나는 NPC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누군가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영혼 없는 눈으로 느릿느릿 아이들을 쫓아다니는 나를 보며
'저 사람은 옷이 저것뿐인가'라는 합리적인 의심과 함께 이 공원의 풍경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트레이닝복 사이에서 언제 챙긴 지 기억도 안나는 니트 원피스 한 벌을 발견했다.
신발은 운동화뿐이었지만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알람을 맞췄고, 혹여나 늦을까 걱정했만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낯선 길을 헤맬까 싶어 서둘렀더니 예정보다 조금 일찍 유치원에 도착했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설명회장으로 들어갔다.
강당 앞쪽에는 몇 개의 의자와 입구 쪽엔 이 유치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교복과 체육복, 앙증맞은 가방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참석한 학부모는 10명에서 15명 남짓 그들의 옷차림을 슬쩍 보니 격식 있는 쓰리피스 정장차림과 편한 원피스 차림등이 보였고, 그 사이에 내 니트 원피스와 운동화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살피는 사이 교장 선생님의 인사와 함께 설명회가 시작되었다.
유치원의 교육 방향부터 과목별 수업 방식, 평가 시스템까지 꼼꼼한 설명이 이어졌고, 추후 입학 의사가 있다면 원서를 접수해 달라는 안내로 마무리되었다.
설명회의 마무리는 시설 견학이었다.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모든 공간이 반짝거리고 깨끗하며, 잔디밭까지 잘 되어있어 아이들이 놀기 좋아 보였다.
작은 의자와 책상에서 교복을 입고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상상을 해보니 괜스레 마음이 설렜다.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아이가 일본어와 영어를 전혀 못 하는데, 원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원 측의 대답은 명쾌했다.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흡수가 빨라 전혀 문제없으며, 그저 집에서 간단한 일본어 정도만 익혀오면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하긴, 아이들보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문제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설명회가 끝나고 남편과 아이들이 집 앞 공원에서 놀고 있다는 메시지를 확인 후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좀 전까지 유치원의 정갈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상상하면서 왔는데, 지금은 그와는 거리가 먼 꼬순내가 날 거 같은 강아지 두 마리가 공원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이 된 채 뻗쳐 있고, 분명 아침에 세수를 했다고 들었는데 그새 공원 먼지를 다 뒤집어썼는지 얼굴이 꾀죄죄했다.
도대체 내가 없는 오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남편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준비해서 나왔다며 천진하게 웃었지만, 평온함 뒤에 숨겨진 알 수 없는 수라장이 아이들의 눈동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예상보다 비싼 유치원 원비에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남편과 치열한 설전을 벌였지만 결론은 면접에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일단 신청부터 하자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도보로 다닐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고, 여러 조건을 따져봤을 때 우리 가족에게는 로컬 유치원보다 더 나은 선택으로 보였다.
로컬 유치원이 나쁘다거나 수준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다만, 홈페이지의 설명을 읽다 보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다는 "주먹밥의 날"과 "빵의 날"인데, 그날의 급식은 정말 주먹밥 혹은 빵만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니, 애들한테 밥을 야무지게 먹여야지. 이게 뭐야."
아무리 생각해도 주먹밥 한 덩이로 점심을 때우는 건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웠다.
다른 모든 조건이 완벽하고 아이들이 잘 적응한다 해도,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그 부실한(?) 점심 식사가
내내 마음에 걸려 다니는 내내 찝찝할 것 같았다.
'정 안 되면 그날만이라도 내가 도시락을 따로 싸주면 되지 않을까?'
든든한 밥 한 끼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잠시 희망 회로를 돌려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융통성보다는 매뉴얼이 앞서는 이곳에서, 개인 도시락은 보나 마나 "규칙 위반"이라며 단칼에 거절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입학 신청을 마치고 면접일을 정했다.
일본 계좌가 없는 탓에 지인의 도움을 받아 면접비까지 무사히 입금했다.
면접은 다음 주 수요일 오전 거실에서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는 남편과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번갈아 보며 걱정이 앞섰다.
불안함은 여전했지만, 늘 그랬듯 우당탕탕 부딪치고 얼레벌레 수습하며 어떻게든 이겨낼 것이라 믿어보기로 했다.
완벽한 계획보다는 일단 뭐라도 해보는 게 중요했다.
면접 당일
아이들에게는 가장 깔끔한 원피스를 입히고, 나는 설명회 때 입었던 그 니트 원피스를 다시 꺼내 입었다.
남편 역시 면접을 위해 급하게 장만한 바지를 차려입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안내를 받아 들어선 면접장에는 어른용 의자와 앙증맞은 아이용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세 명의 면접관과 마주 앉은 순간, 적막한 공기 속에서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아이들의 성향, 못 먹는 음식 등 기초적인 질의응답이 오갔다.
그러다 면접관 중 한 명이 우리 부부가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를 물었다.
"저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남편은 한국어와 영어를 할 줄 압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을 향해 영어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훗날 아이를 국제학교에 진학시킬 계획이 있는지, 왜 하필 후쿠오카를 정착지로 선택했는지 등
제법 심도 있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남편의 유창한 답변 덕분에 면접장 분위기는 이내 훈훈해졌고, 합격의 기운이 가까워지는 듯했다.
그때, 조용히 지켜보던 면접관 중 한 명이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이가 어떤 성인으로 자라길 바라나요?"
"사회에 잘 스며드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식으로 스며들기 바라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이 면접인데 왜 부모 면접을 보고 있는 것 같지?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자 손이 뜨거워지면서 식은땀이 맺히는 기분이었다.
저들이 원하는 모범 답안은 무엇일까? 뭐라고 대답해야 이 고비를 무난히 넘길 수 있을까?
나름 심도 있게 고민해 봤지만 나는 꾸며낸 말 대신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저... 아이가 이제 겨우 세 살이라, 거기까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답변이 떨어지기 무섭게 면접관들의 잠깐의 정적과 함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 그렇죠! 맞아요. 세 살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죠."
팽팽했던 긴장감은 눈 녹듯 사라지고 면접장은 다시 화기애애해졌다.
역시 진심은 어디서나 통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분위기가 풀리자 이번에는 아이들의 놀이 테스트가 이어졌다.
면접관 한 명이 면접장 한쪽에 마련된 놀이 공간으로 아이들을 불렀다.
과일이 그려진 낱말 카드와 색깔 블록을 늘어놓더니, 카드 속 과일 색깔과 똑같은 블록을 골라보라고 권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하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이라 걱정했던 둘째가 의외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당당하게 '한국어'로 대답하며 열심히 블록을 고르고 뭐라고 재잘재잘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첫째는 말은 없었지만 묵묵히 과일 색에 딱 맞는 블록을 하나씩 찾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면접관들이 조용히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귀동냥을 해보니 "생각보다 금방 적응할 것 같다* 는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물론 저 대화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합격의 시그널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처음보다 누그러진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다.
모든 테스트가 끝나고 나가는 길
기분이 좋아진 첫째는 언제 긴장했냐는 듯 선생님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유치원 문을 나서는 우리 가족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3일 후, 떨리는 마음으로 확인한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다.
드디어 일본에서 일상을 지낼 수 있는 걸까 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려던 찰나, 안내문에 찍힌 입학금 액수를 보고 조용히 남편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금액을 확인한 남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이게 뭐야? 대학 등록금이야? 0이 하나 더 잘못 붙은 거 아니야?"
눈을 씻고 몇 번을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0은 제자리에 정확히 붙어 있었다.
물론 실제 대학 등록금보다는 저렴했지만, 일반적인 유치원에서 청구할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였다.
일본 정착의 벽은 '시스템'뿐만 아니라 '비용'이라는 이름으로도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래도... 합격했으니까. 아이들이 깨끗하고 좋은 시설에서 웃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결국 입금 버튼을 누를 채비를 마쳤다.
통장 잔고는 깃털보다 가벼워지겠지만, 그 빈자리에는 아이들이 이곳에서 만들어갈 추억이라는 확신이 채워지길 바랐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와 함께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