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번째 벽' 너머, 몸에 새겨진 정착의 흔적

by 오늘의날씨는

입학금을 치르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한국의 보일러만큼 훈기가 돌정도로 따뜻하진 않았지만, 실내를 감도는 훈훈한 바람 덕분에 두터웠던 옷차림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제 아이들을 씻기고 나서 감기에 걸릴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아이들을 재우고 마주한 가계부는 냉정했다.


"여보, 우리 택시비가 너무 많이 나와."


같이 생활비를 정리하던 남편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여보니, 택시비 항목이 전체 지출의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은 기본요금 자체가 워낙 비싸다 보니 짧은 거리여도 가랑비에 옷 젖듯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외곽 지역이라 버스는 한 시간에 고작 세 대뿐이었고,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면 그마저도 놓치기 일쑤였다.

외출을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계속 택시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른 둘 뿐이었다면 운동 삼아 여기저기 걸어 다녔겠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때 남편이 회사 지인에게 들은 중고차 이야기를 꺼냈다.

현지 정비소 사장님이 팔 예정이라는 10년 된 미니밴 4인 가족에게 경차보다는 큰 차가 실용적이겠지만,

10년이라는 연식과 알 수 없는 주행 거리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아는 사이끼리는 차나 돈 거래하는 게 아니다'라는 주변의 조언까지 떠올라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차보다 더 큰 문제는 행정 절차였다.

운전면허를 바꾸고 차를 사려 해도, 모든 절차의 기본인 재류자격(COE)이 3개월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1월이 다 지나가는데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 이러다 정말 4개월 꽉 채우는 거 아니야?"


농담처럼 던진 말이 씨가 되었는지,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고

입국한 지 딱 4개월을 일주일 앞둔 2월 초, 드디어 재류자격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남편은 비자 발급을 위해 휴가를 냈고, 나 역시 짧은 한국행 준비를 시작했다.

당장 가져갈 짐은 단출했지만, 돌아올 때 두 손 무겁게 바리바리 챙겨 올 물건들이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비로소 멈춰있던 일본 정착기의 시계태엽이 다시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한국에 들러 비자를 정식으로 발급받기 위해 휴가를 냈고,

나 역시 짧은 한국행 준비를 시작했다. 당장 가져갈 짐은 단출했지만, 돌아올 때는 두 손 무겁게 바리바리 가져올 물건들이 벌써부터 걱정이었다.

비로소 멈춰있던 일본정착기의 시계태엽이 다시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공항에는 시부모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아직 처분하지 못한 우리 차를 끌고 오신 아버님을 뵙고 밖에 나가자 한국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이 차가운 공기마저 감격스러웠지만 감회에 젖어 있을 틈도 없이 집으로 향하는 길에 하루라도 빨리 비자를 받기 위해 우체국에 들러 서류를 담당부서로 보냈다. 할 일을 마치고서야 정들었던 한국 집의 문을 열었다.


"어? 왜 이렇게 따뜻하지?"


보일러를 틀지 않았는데도 집안에는 온기가 감돌았다.

분명 날씨는 한국이 훨씬 추운데, 집은 왜 일본이 훨씬 추운 걸까?

일본에서 냉기와 씨름하던 지난 몇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짐을 푸는 사이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김치찜을 준비해 주셨고, 매콤한 냄새에 이끌려 짐을 대충 한 곳에 몰아둔 채 칼칼하고 따뜻한 김치찜을 한입 가득 입에 넣었을 때였다. 어머니께서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너네들 왜 이렇게 살이 쏙 빠졌니?"


그저 오랜만에 본 자식들이 안쓰러워하시는 말씀이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식사를 마치고 무심코 올라선 체중계 위에서 우리는 당황스러워서 체중계를 몇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했다.

정말로 우리 부부 둘 다 3~5kg이나 줄어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헉, 진짜잖아?" "다이어트하려고 할 때는 그렇게 안 빠지더니, 신기하다."


내 혼잣말에 남편은

"일본에서 유산소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라며 분위기 파악 못하는 소리를 툭 던졌다.

나 역시 멍하니 "아! 역시 군살은 유산소가 답인가" 라며 맞장구를 쳤다.


살이 빠진 본질은 잊은 채, 줄어든 숫자에 잠시 마음을 뺏긴 실없는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대답을 뱉어놓고 나니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이럴 때는 뭔가 감동적이고 따뜻한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감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대화의 흐름에 내가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자, 남편은 아차 싶었는지 이내 멋쩍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다독였다.


"아니, 여보가 그동안 고생이 너무 많았지."


그제야 깨달았다.

낯선 땅에서 겪었던 그 모든 우여곡절이 머리로는 괜찮다고 서로 다독였고 잘 이겨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 작은 일들은 거센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모래에 남은 흔적처럼 우리 몸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어쩌면 살이 빠진 게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이 스스로를 깎아내며 버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몸에 새겨진 정착의 흔적을 발견하고 나니, 한국에서의 남은 시간은 그야말로 치열한 ‘한풀이’가 되었다.


텅 비어버린 마음과 위장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아이들은 그동안의 갈증을 씻어내듯 키즈카페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고, 친정과 시댁 식구들을 두루 만나며 그리웠던 온기를 수혈받았다.

온 가족이 미용실에 들러 단정하게 머리까지 자르고 나니, 비로소 다시 일본 생활을 마주할 에너지가 차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재충전의 끝에는 다시 '이삿짐'이라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회사 지원금 범위 내에서 최대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값비싼 이삿짐센터 대신 겨울을 준비하는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몸을 놀려 이사 박스를 날랐고, 우체국 EMS로 짐을 하나둘 부칠 때마다 비어 가는 집의 모습을 보며 일본 정착이 현실로 다가왔다.


다시 돌아온 일본 집

정확이 우리가 도착하고 다음날 한국에서 보낸 산더미 같은 박스들이 도착했고 그 박스들을 헤치고 가장 먼저 커튼부터 달았다.

창밖의 낯선 풍경이 눈앞에서 가려지고 익숙한 커튼을 보니 비로소 이곳이 "우리 집"이라는 안도감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짐 정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각종 서류 제출과 교복 치수 확인을 위해 방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남편의 휴일에 맞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교복 치수를 재는 시간.

아이들은 낯선 공간이 무섭지도 않은지 처음 입어보는 교복을 입고 거울 속 제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항상 활동성 좋은 맨투맨과 바지만 입혔는데, 빳빳한 셔츠에 치마 교복을 입은 모습이 제법 귀엽고 대견했다.


"하루 종일 교복을 입고 활동하기엔 불편하지 않을까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묻자 등하원만 교복을 입고 나머지 생활은 체육복으로 갈아입는다고 설명해 주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의 성장을 고려해 교복은 한 치수 크게 주문했다.

그런데 한 가지 생소한 옷이 눈에 띄었다. 체육복 위에 입는 스모크였다. 한국에서는 본 적 없는 이 겉옷 역시 크게 주문하려 하자, 직원이 정사이즈를 추천했다.

알고 보니 스모크는 학년마다 색깔이 달라지기 때문에 새 학기마다 새로 주문을 해야 하는 옷이었고 직원의 조언 덕에 시행착오 없이 옷 주문을 마칠 수 있었다.


유치원을 나서는 길

유치원 생활의 규칙과 개인 물품 준비 사항이 담긴 봉투였다. 집에서 확인해 달라는 말에 제출서류인 영문 예방접종 증명서를 내밀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서류는 따로 받지 않습니다. 유치원 사이트에 접속해서 직접 입력해 주세요."


아니 선생님 평소에는 아날로그를 고집하시더니 왜 이럴 때만 디지털인 건가요.... 일본어로 된 시스템에 아이 두 명분의 방대한 기록을 입력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이 질끈 감겼지만, 규정이라니 별수 없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번역기를 돌려가며 한 칸 한 칸 한숨과 함께 빈틈없이 기록을 채워 넣었다.

겨우 입력을 마치고 오전에 받은 서류 봉투를 열어본 순간,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운 숙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받은 봉투 속에는 예상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숙제들이 가득했다.

낮잠 이불부터 점심식사 매트까지 모든 준비물은 정해진 규격에 소수점 단위까지 맞춰 준비해야 했고,

모든 물건에 이름을 적어오라는 안내가 있었다.


학용품이야 이름 스티커를 붙이면 그만이라지만, 옷은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걸까. 빳빳한 교복 셔츠와 스모크에 검정 매직으로 이름을 쓱쓱 휘갈겨 쓰라는 건 설마 아닐 터였다. 자수를 놓아오라는 뜻일까, 아니면 전용 네임 테이프를 일일이 다림질해 붙여야 하는 걸까.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단순한 입학 준비가 아니었다.

규격에 맞춘 수제 주머니부터 옷감 위에 새겨질 이름 하나하나까지, 엄마의 정성 어린 손길이 닿아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일본 스타일의 '유치원 입학식 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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