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름표와 매뉴얼

by 오늘의날씨는

입학 준비물과 행정 업무에 매달리다 보니 시간은 야속할 만큼 빠르게 흘렀다.

한국과 달리 4월에 시작하는 일본의 새 학기에 맞춰서 전입신고와 면허 교환, 계좌계설 등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우다 보니 금세 꽃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는 3월이 되었다.


계절은 따뜻한 봄을 향해 달려가는데, 나의 입학 준비는 여전히 차가운 겨울 속에 멈춰있었다.

아마 현지인이거나 일본에서 유치원을 보내본 경험이 있는 지인이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막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낯선 땅의 이방인이었고, 규정이 까다로운 유치원의 입학 안내 서류는

나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문처럼 보였다.


식탁 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 뭉치를 넘길 때마다 "A는 B 규격의 봉투에, C를 넣기 위한 봉투의 규격은 여기"라는 식의 세밀한 지침들이 숨이 턱턱 막혔다.

주변에 물어볼 사람 하나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내가 기댈 곳은 결국 인터넷뿐이었지만, 막상 검색창에 무엇을 쳐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이름표라고 쳐야 할까, 아니면 의류 네임이라고 해야 할까. 일본어 단어 하나를 고르는 데도 수만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아마존 재팬과 구글을 이 잡듯 뒤지며 새 학기 준비물, 이름표, 의류 이름 등을 닥치는 대로 검색했다.

그러다 드디어 한 줄기 빛 같은 존재를 발견했다. 바로 "와펜"이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다리미 열을 이용해 스티커처럼 옷에 착 달라붙는 네임 라벨이었다.

"자수를 놓아야 하나" "매직은 진짜 아닌 거 같은데 난감하네.." 고민하던 날들이 허무해지는 순간이었다.


사람 사는 곳 다 비슷비슷하게 불편한 게 있으면 조금이라도 편한 방법을 찾아보고 개발하면서 발전하는 거 아니겠는가. 아마 인류의 거창한 발전도 이런 작은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시답지 않은 인류학적 고찰을 하며 홀린 듯 주문하기 버튼을 눌렀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학기 시작은 고작 2주 남짓 남았는데, 입학 시즌이라 배송 물량이 밀려 제날짜에 도착할지 불투명했다.


낯선 환경, 더구나 첫 입학식에서 규정을 지키지 않아 미운털이 박힐까 봐 말도 안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며 배송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이름표는 입학식을 이틀 앞두고 기적처럼 도착했다.

나는 밤새 다리미를 들고 아이들의 새 옷 위에, 유치원에서의 시작이 긴장보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며 아이들의 이름을 꾹꾹 눌러 새겼다.

비로소 아이들이 유치원으로 내디딜 첫걸음이, 그리고 내가 일본의 학부모가 될 채비가 아주 조금씩 그럴싸한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차"였다.

지인을 통한 개인 거래도 고려해 보았으나, 시장 조사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일본 내에서 인지도 높은 대형 중고차 매장인 걸리버를 찾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상담을 잘 마칠 수 있을까 걱정하며 들어선 매장 한편에는 작지만 알찬 플레이존이 마련되어 있었고, 크레파스와 색칠 공부, 블록까지 잘 꾸며진 놀이 공간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에게 플레이존을 탐색할 시간을 준 뒤, 점원에게 700만 원 예산의 미니밴을 물었다.


"그 가격대라면 매물을 좀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확답을 주지 못하는 점원의 태도에 그냥 다른 매장을 가보려 일어서자, 그는 다급하게 우리를 붙잡았다.

한참 동안 노트북을 두드리고 수소문한 끝에 그가 보여준 것은 '10년 된 미니밴' 사진 한 장이었다.

아직 매장에 들어오기도 전인 차량이지만, 상태가 좋고 차량 검사 기간도 넉넉히 남았다며 그는 강한 판매 의지를 보였다.


"여보, 그냥 회사 지인 차를 사는 게 나을까?"


남편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매장의 다른 차들을 훑었다.

경차는 너무 작았고, 마음에 드는 SUV는 좋아 보였지만 예산을 초과했다.

"어차피 2~3년이고,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누가 놀러 오면 태울 수 있는 크기면 충분하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단 계약금을 걸고 나왔지만, 마음속 찝찝함은 가시지 않았다.


며칠 후, 남편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폭탄선언을 했다.


"한국에 있는 차를 팔고, 그 돈으로 차라리 여기서 좋은 차를 사자. 나중에 한국 가져가서 10년은 더 탈 생각으로 말이야."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팔 거면 작년 12월에 팔라고 할 때 팔지, 해를 넘겨 연식과 가치가 떨어진 지금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무엇보다 나를 울적하게 만든 건 이 번복된 결정을 수습하고 다시 매장과 연락해 계약을 진행해야 하는 사람은 결국 이 집에서 조금이라도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제안보다 나를 더 울적하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그 제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다시 번역기를 돌리고, 혹여나 말이 막힐까 봐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하며 전화를 준비해야 하는 내 모습이었다.

"아, 일본어 공부 좀 열심히 해둘걸." 때늦은 후회와 함께 낯선 땅에서 가족의 유일한 입과 귀가 되어야 하는 나의 처지가 못내 서글펐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차를 타고 싶어 하는 남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조사해 보니 일본은 연식이 10년을 넘어가면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할 고생이라면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게, 제대로 된 차를 타는 게 낫겠지.'


결국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남편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대신 조건은 단호했다.

한국 차를 판 금액에 맞출 것, 연식은 3년 이내, 주행거리는 5만 km 이하일 것

낯선 땅에서 우리 가족의 얼굴이 되어줄 차인만큼 다시 봐도 후회 없을 근사한 미니밴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 날

걸리버 매장에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취소 의사를 밝혔다.

처음엔 곤란하다는 듯 가라앉았던 점원의 목소리는 "더 높은 등급의 차를 사고 싶다"는 내 말 한마디에 톤이 급격히 올라갔다.


"아, 그러시군요! 당연히 취소 가능합니다. 언제 다시 매장에 방문하시겠어요?"


돈의 논리 앞에서는 나이도, 성별도, 국경도 무의미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차가 반드시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타인이 운전하는 택시 뒷좌석에서 쉼 없이 올라가는 요금기

숫자만 초조하게 바라보던 날들과는 이제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핸들이 반대인 낯선 운전석일지라도, 내 손으로 직접 운전대를 잡고 우리만의 물건들로 차 안을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설레어 왔다.


매장을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고 돌아 드디어 마음에 드는 차를 찾은 거 같아 기쁜 마음으로 점원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차를 사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마저, 일본 특유의 촘촘하고도 까다로운 매뉴얼의 늪을 지나야 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전 10화10.'세 번째 벽' 너머, 몸에 새겨진 정착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