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나열한 것은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사람'의 제한되는 자격 내지 직업을 나열한 것이고 뒤의 것은 제한되지 않는 자격 내지 직업을 나열한 것이다. 참고로,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사람'은 공무원,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공익법인의 임직원이 될 수 없다. 대체로 임원은 법률에서, 직원은 해당기관의 정관에서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사람의 제한되는 자격 내지 직업의 구체적인 명칭과 회사 명칭을 모두 나열하려면 글자포인트 10, 줄 간격 160, 글씨체 신명조로 A4 10페이지 내외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걸 찾아내고 키보드를 두드려 쓰는 것도 고될 것이지만 여러분의 눈과 맑은 정신은 더욱 고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 마음을 굳게 먹고 모두 나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결코 귀찮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특이한 점을 정리해 보겠다.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사람은, 첫째, 공무원은 될 수 없는데 병역의무와 납세의무는 이행을 해야 한다. 둘째, 변호사와 법무사는 될 수 없는데 의사와 한의사는 될 수 있다. 셋째, 건설업의 등록은 할 수 없는데 소방시설업의 등록은 할 수 있다. 넷째, 전통 소싸움경기의 싸움소 주인으로 등록할 수 없는데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될 수 있다.
구분 기준을 찾을 수 있겠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모르겠다.
먼저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은 먹고 살 돈 즉 장래 얻을 소득이 절실하다. 그렇기에 공공부문이든 사부문이든 직업이 중요해진다. 여러분은 위에서 제한되는 자격을 읽었다. 그렇다면 여러 법률에서 장래 얻을 소득을 마련하는 것을 막고 있는지 열어두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재산이 없어 낼 세금도 없겠지만 주민세, 주세, 담배소비세, 부가가치세 등등등 세금은 꼬박꼬박 내야 한다. 내지 않으면? 결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두 번째로 의사와 한의사, 변호사 사무직원, 공인노무사 직무보조원, 법무사 사무원 등은 가능하다. 의사와 한의사 등은 파산선고와 의료인의 면허 취득 간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음을 이유로 2007. 12. 14. 의료법을 개정하여 자격제한을 삭제하였다. 그리고 변호사 사무직원, 공인노무사 직무보조원, 법무사 사무원 등은 파산자의 사회복귀 지원과 개인파산제도 활성화를 위하여 2006년 2007년 관련법을 개정하여 자격제한을 삭제하였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파산선고를 받은 의료인이 나에게 시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채권 추심기관의 극심한 추심을 경험하여 지금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고 있을 텐데 내 팔에 주사를 놓기 위해서 고무줄을 묶고 있고, 나는 그 주삿바늘과 의사와 간호사의 눈빛을 예리하게 추적하고 있다. 그런데 맞는 주사가 영양제라고 한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참고로 필자는 의료분야 종사자 분들을 매우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두겠다.
세 번째로 건설업의 등록은 안되는데 소방시설업의 등록은 된다. 이 쪽 분야의 일을 몰라도 너무 모르지만 건설업은 매우 큰 자재를 사다가 건물을 만들고 소방시설업은 화재방지를 위한 자재를 사다가 만들어진 건물에 추가하는 것일 텐데 어떤 점에서 파산선고로 인해 이 둘을 갈라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네 번째로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사람은 전통 소싸움경기 싸움소 주인으로 등록할 수 없다. 파산선고 후 복권 전에 싸움소를 증여받았거나 대물변제로 받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파산선고를 받은 싸움소 주인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소싸움을 활성화 함으로써 농촌지역의 개발과 축산발전의 촉진에 이바지(전통소싸움경기에관한법률 제정이유)할 수 없기 때문일까? 파산선고라는 사실이 이렇게 엄중하고 중요하다는 여러 법률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의회의 의원은 가능하다는 사실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가? 왜 개인회생은 자격제한이 없는데 개인파산은 자격제한이 있는 것일까?(몰랐다면 지금 알면 된다. 개인회생은 자격제한이 없다.) 왜 개인회생은 재산의 관리처분권을 채무자에게 두는데, 개인파산은 채무자에게 두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재산의 관리처분권이 없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차차 설명을 해가기로 하겠다.
좀 거칠게 살짝 언급하자면, 재산의 관리처분권이 없다는 의미는 재산행위에서 그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망한 것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격과 직업을 제한하는 것의 정당화요소로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개인회생이라는 제도가 들어오고, 개인파산의 면책 제도가 경제생활의 새로운 출발을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 그러한 취급이 적절한가라는 의문이 풍선이 되어 둥둥 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그 의문을 읽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1. 서경환, "파산면책의 정당화 근거 및 개인도산제도 활성화를 위한 개선방안", 법조(제68권 제5호), 법조협회(201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