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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Apr 26. 2019

잔혹,  살인자와 함께 여행을...

파란만장 감정지도

1990년 후반 배낭여행 중 중국 대련에 도착하고 실크로드 길을 따라갔다. 당시 중국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감했다. 영어도 전혀 통하지 않았고, 같이 동행한 여행객도 초보 수준이었다. 마침 베이징에서 만난 거구의 한국인 남자가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편하게 김형이라 불렀다. 목적지도 같아서 우리는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우선 허난성에 있는 소림사로 향했다. 중국어를 하는 김형 때문에 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며칠간 김형만 따라다니니 정말 편했다. 그런데 몇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김형은 잘 씻지 않았다.


상한 음식도 군말 없이 잘 먹고, 한 달간 이빨을 닦지 않고 가그린만 사용했다. 자기는 평생 이빨을 안 닦다고 한다. 샤워할 때 몸에 비누칠을 하지 않고 머리만 감고 나와서, 냄새 때문에 고역이었다. 뭐, 씻는 거 싫어하나 보다 했는데, 문제는 무기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거리에서 총 빼고 다 살 수 있다. 



중국은 무기를 파는 가게가 거리에 있다. 특히 소림사 근처는 장검까지 팔고 있었다. 김형은 전기충격기, 단검, 너클 등 수집가처럼 하나둘씩 사는데, 같이 다니기 점점 무서워졌다. 한 날은 자기 옆집에서 살인사건이 났는데, 본인이 직접 현장을 목격했다고 고백을 했다. 칼이 가슴에 찔렸는데 피가 어떻게 나서.... 잔인해서 생략.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현장을 생생하면서 잔혹하게 표현하는데 소름이 돋았다. 칼로 찔렀는데 피가 나오는 장면부터, 이때부터 의심이 들었다. 혹시 저 사람 살인자가 아닐까?! 목격자였어도 저렇게 세세하게 알 수가 있는지. 설마설마하며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본색이 드러냈다. 그는 자기 뜻대로 따르지 않으면 살기가 느껴졌다. 정말 무서웠다. 난 도망칠 결심을 하고 기회를 봤다.


한 달째 마지막 날 잠깐 어디 다녀온다고 하고 줄행랑을 쳤다. 내 발이 안 보일 정도 빨랐던가? 정신없이 도망간 거 같다. 계속 있다가 가지고 있던 칼에 찔릴 것 같았다. 확실히 그 사람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범죄 용의자였다. 실제 도망자였던 것이다. 하마터면 나도 공범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 기억을 하면 아찔하다.  



무사히 도망자로부터 탈출하고 중국 실크로드 끝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비자 만류 이틀 전 파키스탄행 버스를 타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다음날 게스트하우스 대기실에서 배낭객들이 TV를 보며 웅성거렸다. 해외 뉴스에서 연신 파키스탄 쿠데타와 테러 소식이 방영되고 있었다. 90년대 파키스탄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사람들은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하필 비자 만료 하루 남았는데, 반드시 넘어가야 했다. 만료일을 넘으면 엄청난 벌금을 물기 때문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포기하고 돌아가거나 대기상태로 있었다. 심사숙고한 끝에 한 일본인 친구와 나는 목숨 걸고 한번 가보기로 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심정이었다. 파키스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행 버스를 타고 카라코롬 하이웨이(Karakorum Highway,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를 연결하는 길이는 780km 고속도로)를 탔다. 며칠을 버스에 몸을 싣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속도로를 달렸다. 내가 본 지구 풍경중 가장 웅장한 광경에 넋을 잃고 구경한 후 처음 도착한 곳.


이슬람 국가를 처음 방문한 곳이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였다. 국제 뉴스에는 난리가 났는데, 의외로 평화로워 보였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생소한 동양인에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Are you muslim?' 묻는다. 첫인사가 '당신은 무슬림입니까'이라니.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 웃었다. 아닌 걸 아니까. 


숙소를 알아보러 시내를 구경하고 있는데, 간혹 폭발음이 들렸다. 거리에는 총알과 머신건을 어깨에 두른 람보들이 다니고 있었다. 환전을 하기 위해 은행에 들어가니, 장총을 든 경비원의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했다. 은행 안에도 산탄총을 든 경비가 삼엄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다녔다. 어? 안전한가? 멀리서 총소리도 들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날 파키스탄은 전시상태였고 여행금지 국가였다고 한다. 테러로 무너진 잔해들이 보였다. 이대로 있다가 총 맞아 죽을 것 같았다. 안전해질 때까지 훈자로 피신하기로 했다. 장수 마을 훈자에는 여러 배낭족들이 장기숙박하며 테러가 잠잠해질 때까지 피신하고 있었다. 나는 훈자에서 두 달간 휴식 겸 안전해질 때까지 숨어 지냈다. 아이러니하게 여행 중 가장 평화로운 한 때를 보냈다.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 라다크 지방으로 가는 길, 히말라야 산자락을 타고 가는 버스를 탔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국경을 맞대고 오랜 기간 적대 관계다. 간혹 국경지역 버스는 상당히 위험하다. 벼랑 끝에 간간히 처참하게 부서진 차량들을 볼 수 있다. 낭떠러지 옆 비포장도로에 가는데 숨이 조마조마했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자고 싶은데, 버스가 좌우로 요동을 쳐 잠을 잘 수도 없다.


밤이 되자 버스는 헤드라이트를 켜지 않고, 달빛으로 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표정과 눈빛이 이상했다. 나는 옆 승객에게 물어봤다. '왜 라이트를 켜지 않냐고?' 대답이 기가 막혔다. '라이트를 켜며 로켓포가 날아올 수 있다'. 아! 그 유명한 RPG 알라봉을 말한다. 얼마 전 버스가 로켓포를 맞아 많은 사상자가 났다고 한다. 이게 전쟁의 현실인가 싶었다. 버스 승객들의 불안하고 두려운 얼굴은 진짜 공포에 휩싸인 얼굴들이었다. 공포영화를 본 관객들의 표정과 전혀 다르다. 



잔혹함이나 잔인함이란 우리가 사랑하거나 가엽게 여기는 자에게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 -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한 사람의 범죄자이며 가해자를 만나고, 평범한 국민이며 피해자들을 보았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잔혹해지는 걸까? 슬프게도 많은 사람들이 잔인한 일로 무참히 살해되고 있다. 어쨌든 인류 역사는 서로 죽여가는 흔적들이니까. 내가 가해자였던 적은 없을까? 6살 때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병아리를 막대기로 잔인하게 괴롭힌 적이 있었다. 죽어가는 병아리의 눈이 나를 바라봤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운전 중 상대방이 위협하면 죽이고 싶은 살의, 신문지상의 살인자들이 나오면 똑같이 죽이고 싶은 상상, 너무 미운 타인을 만나면 사고나 당했으면 하는 저주 등, 살아오면서 이런 잔혹극은 한 번쯤은 상상한다. 보통 사람들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내가 만약 죽어가는 병아리를 보며 희열을 느꼈다면. 이 감정을 간직하고 성인이 되었다면, 나도 어떤 사건의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힘들 때마다 나를 죽이는 상상을 반복적으로 한 것은 성격의 탓이지만, 그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일. 나를 뒤돌아보며 정리할 때, 자신의 잔혹함을 확인하면 함부로 타인을 해하는 상상은 더 이상 하기 힘들어졌다. 세상이 잔혹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를 들여다봤을 때, 비로소 누군가 사랑할 자격은 얻은 것 같다. 잔혹함은 무지의 동의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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