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디 Apr 22. 2019

연애의 법칙 - 7

보이지 않는 법칙의 작용

7. 연애의 법칙

나의 잘못된 습관을 탐구하는 동안 내 생각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진짜 내 생각대로 산 것인가? 나를 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신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그 의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초월적 존재는 무의식의 법칙과 합일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면 인간과 초월적 존재의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초월적인 영역을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접근하는 것은 많은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나는 이 문제를 경험과 이론을 토대로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실체 없는 법칙이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나는 기록하고 하나의 가설로 남기며, 증명할 수는 없다.


우리를 움직이는 초월적인 존재를 운명, 창조주, 신, 무의식이라 부른다.


인간이 성장하는데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고 나선형의 형태로 진화한다. 성장이 정체되면 내적인 고통과 외적인 사고가 시간차순으로 다가오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연애의 법칙도 그와 다르지 않다. 또한 성장의 패턴에 포함되어 있다. 지구의 중력처럼 이성의 이끌림은 완벽한 프로그램으로, 각 개인이 성장한 만큼 작동한다. 나의 정신적 성숙도에 정확히 맞는 수준의 상대를 만나게 된다. 그 상대는 나와 대척점에 서 있다. 즉 나의 결핍을 충족시켜 줄 상대를 만나게 프로그램되어 있다. 그래서 두 사람 간의 정신적 교류가 중요하다. 육체적 관계는 부가적이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면적 교류가 없다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우리가 맞는 개인사에서의 사건사고가 이에 해당된다. 문제는 그 어려움들이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은 다르게 창조되어 서로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법칙 혹은 신, 무의식은 인간의 삶의 방향을 바로잡기 위한 의도된 과제를 주게 된다. 법칙의 목적이 바로 인간의 성장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축의 하나가 연애다. 이성에게 강한 이끌림은 완전한 나의 의지가 아니라,  의도된 프로그램의 작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여성 혹은 남성에게 끌린다는 것은 신에게 노예처럼 농락당하는 것인가?


법칙의 목적은 인간의 성장이다.


그것은 성숙함이 어느 선에 와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유아적 상태에 있다면 나의 자유의지보다 운명에 휘둘리고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정신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면, 나의 자유의지가 더 커지게 된다. 내 생각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은 자신의 정신적 성숙도와 비례한다. 물론 이성을 결정할지 말지 선택은 오로지 인간의 몫이다. 내가 왜 상대를 만나는가를 성찰한다면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나는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내가 알아야 할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은 그릇된 생각과 습관을 고집할수록 본질로부터 멀어져 간다. 나는 만나는 여성으로부터 기쁨과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나에게 그녀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여신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 성찰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주었다. 그 여신들에게 감사하다. 

작가의 이전글 연애의 법칙 -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