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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Jun 04. 2019

팝캐스트 DJ 도전기

어느 날 심리상담사 공부하는 여사친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빠 같이 인간 심리 주제로 팝캐스트 해 볼 생각 없어?” “오~~~~ 라디오? 내가?...... 오케이” 전화를 끊고 별일이다 싶었다.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글보다 말이 더 하고 싶을 때가 그때였다.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잘 말할 수 있을까?


꼬맹이때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벌벌 떨면서 횡설수설했던 바보였는데. 지금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글이 편할 때가 많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결정해버렸다. 그 당시 내 인생 실패담을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인지 모르겠다. 단지 나처럼 괜한 시행착오하는 짓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첫 방송 일어날 방송대본을 숙지하고 스튜디오에 앉았다. 마이크가 내 입 앞에 놓여있으니 입이 바싹 말랐다. 선정한 시그널이 흐르고 방송 소개 멘트로 첫 방송을 시작했다. '두근두근' PD는 평소 대화하는 것처럼 편하게 하라고 하는데 그게 쉽나! 마이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니. 


식은땀을 흐리고 DJ의 질문에 답하는데 급급했다. 말이 꼬이면 다시 녹음 편집했다. 익숙해질 무렵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 보니 녹음이 끝났다. “어? 벌써 끝이에요?” PD는 첫 방송치고는 정말 잘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첫날 방송대본

주제: 좀비의 심리학-은둔형 외톨이에 관한 고찰

제가 처음 이 주제를 잡은 것은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생각하면 이때였거든요. 한 번도 아니고 습관적인 은둔생활을 하게 되었어요. 그럼 왜 좀비와 연결시켰냐면 이들의 특성이 좀비의 특성과 너무 많이 닮아있다는 것이죠. 좀비의 특성이란 본능 즉 식용에 지배되어 있죠. 이들은 몸은 살아있을지언정 정신이 죽어있는 캐릭터죠. 생각하는 좀비는 없겠죠. 뭐. 최근 웜 바디스는 빼죠.

전문가님은 좀비 영화 좋아하시나요?

제가 최초로 좀비 영화를 본 것은 85년도 작 바탈리언이란 작품인데, 인터넷이 없던 시절 큰 스크린으로 좀비를 처음 접했죠. 온 가족과 함께 좀비 영화를 앞자리에서 본 경험은 당시 충격적이었죠. 동양권에서 강시가 있는데 귀엽죠. 그런데 갑자기 징그러운 외모로 떼거지로 달려드는 장면은 동양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죠.

여기서 간단히 좀비의 특성을 알아보면, 오로지 인간을 먹겠다는 생존본능에 움직이죠. 먹지 못하면 괴사 돼버리죠. 은둔형 외톨이도 이와 같습니다. 스스로를 가두고 본능이 몸과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결국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괴사 하죠. (괴사. 세포조직이 붕괴되거나 기능이 정지되며 죽어가는 상태)

좀비화되는 과정은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를 좀비라는 소재를 가져와 이야기를 만들어 대본을 짜보았다. 역시 주제와 소재를 어떻게 재밌게 구성해야 할지 고민이다. 방송을 하면서 느낀 점은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재밌어야 했다. 방송사들이 왜 그렇게 시청률에 목숨을 거는지 체감했다. 열심히 이야기를 해도 조회수가 적으면 쉽게 지쳤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재밌게 구성하는 게 실력이었다. 생생한 내 체험을 바탕으로 주제와 연결시켰다. 방송 횟수가 거듭될수록 메모와 글을 재구성했고, 내 이야기를 심리학과 융합했다. 횟수가 거듭할수록 조회수가 증가했다.


꾸준히 기록한 덕분에 매 방송마다 소재는 떨어지지 않았다. 라디오 방송대본이 콘텐츠화하는 연습이 되었다. 심리학 전문가는 이론으로 비전문가인 나는 경험으로 지식을 전달했다. 전문가의 심리 이론과 경험이 정확히 일치해서 시너지 효과가 커졌다. 특히 솔직한 나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솔직함이 중요했다.


“전교 600명 중에 590등 정도 했는데요. 하위권 학생으로서 겪어야 했던 자괴감...”

“학창 시절 싸움도 못하고 공부도 못했던 쭈글이였습니다.”

“여자들한테 지독히도 인기 없는 남자였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연애를 하게 되었는데, 남자가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짓들을 했어요.”

“전 습관성 은둔형 외톨이였어요.”


나의 모순점을 드러내고 그 습관의 행동의 원인과 분석한 결과가 대본의 내용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못난 점을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나를 들여다보는 공부를 할 때 죽을 만큼 싫었다. '이렇게 멍청했나.'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고비를 넘기고 나니, 나의 흑역사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되었다. 창작자에게 불행은 선택받은 자의 축복이라는 말이 맞나 보다.


6개월간의 방송 경험을 해보니, 어떤 형식(글, 라디오, 영상 등)이든 콘텐츠는 공유해야 발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0년간 무공 수련을 하고 하산하는 것보다 어설퍼도 먼저 실전을 익히 자를 당해낼 수 없다. 개똥 같은 콘텐츠라도 먼저 시작하는 자가 발전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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