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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Jun 20. 2019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제 그만 부르자.

어릴 적부터 국경일이나 남북문제가 이슈가 되면 필연적으로 부르게 하는 노래가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음악시간에 부르는 이 노래를 앵무새처럼 아무 생각 없이 불렀다. 역사시간에 얼굴을 붉히며 북한을 때려잡아야 한다는 반공 교육과 음악시간에는 평화롭게 통일하자고 노래를 부르니 내심 어른들의 작태가 웃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도 '빨갱이는 다 죽여!', '이 나라 살리는 통일'이라니! 어쩌자는 말인가? 북한 사람 다 죽이고 평화롭게 통일하자는 소리로 이해했다. 


크면서 그들의 훈육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북한과 통일은 내 관심 밖이었다. 과거 교육받았던 반공, 빨갱이, 통일 등 이런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윗세대들의 정신적인 트라우마 같아서 불편했다. 아마도 통일이란 단어 속에 포함된 부정적 이미지가 포함되어서 외면했는지 모른다. 실로 십년만에 다시 보는 강화도 여행, 주입된 머릿속 통일의 이미지 때문인지 철책선으로 가는 발길은 가볍지 않았다. 


출처 google


김포 함상공원 해군 함선


김포 평화 누리길에 있는 함상공원 해군 함선에 들렀다. 여기저기 녹이 쓴 폐함선을 관광코스로 만든 것은 좋으나 막상 실내에서 본 콘텐츠들은 너무 전형적이었다. 국내 관광단지들 전시형태를 보면 일관적으로 느끼는 것은 재미가 없다. 교과서처럼 적어놓은 글귀들과 단조로운 내용전달력이 문제였다. 이런 경우 대부분 관리도 허술하고 생기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철책길 넘어 보이는 북한 땅이 보였다. 예전에 통일전망대를 가 봐도 전후세대로써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저게 북한 땅이구나’ 이런 느낌. 그런데 현실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다. 중국 여행 중 식당에서 실제로 마주치니 무의식적으로 내 몸이 움찔했다. 무서운데 호기심이 일어났다. 낯선 북한말이 신기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예의 주시했다. ‘오! 내가 북한말을 다 알아듣다니’. 돌이켜보면 세상 어떤 것보다 나도 모르게 끌리고 있었다. 


한민족이란 구심점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때 어렴풋이 느꼈다. 그때 무심결에 듣게 된 북한말이 내 마음속에 주입된 반공을 버리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오랫동안 배운 북한에 대한 선입견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예전에 길거리 전봇대에 붙어 있는 ‘무찌르자 공산당’ ‘간첩신고는 113’ 반공표어는 이웃집 낯선 손님도 의심하는 시대였다. 





모두가 가난해도 반공정신으로 똘똘 뭉친 국민의식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 것은 의심할 여지는 없다. 윗세대들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한 반공은 이제 낡은 정치적 이념이 되었다. 그 이념이 세대 간의 갈등으로 발전하고 있고, 통일이 필요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공교육과 첨단 교육을 모두 받은 중간세대 입장에서 연결점을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한때 나는 슬로건을 믿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던 동력이 반공이었다니!' 그래 놓고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게 하는 것은 최면 효과처럼 애국심으로 조정당했다는 배신감마저 들었다고 생각했다. 젊은 때 윗세대의 교육방식에 대한 반항심이 무관심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이번 짧은 답사는 내 삶에 통일이 주는 이미지를 탐색해보는 시간이었다. 


출처.koreasummit.kr


한국인만 느낄 수 있는 필연적인 족쇄이며 화두와 같다. 태생적으로 가지게 되는 분단의 욕망과 상처가 한국인들만의 특별한 트라우마로 융합되어 다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혐오다. 계급갈등, 남녀 혐오, 세대갈등, 정치적 이념전쟁 등 사회가 수직적 구조의 심화로 내적 분단이 되어간다. 분열은 통합하기 전 재배열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제 통일 이전에 사회적 통합이 이루어야 할 시점이다. 


국민 개개인의 내적 성장만이 가장 빠른 통일의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통일은 판타지 같은 장르처럼 느껴질지 모르는 단어가 돼버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것보다 그룹 BTS의 한류가 더 나은 선택이 되는 시대다. 사회의 변화는 개인의 성장을 필요로 한다. 이제는 한국인들의 잠재의식 속에 통일 트라우마를 벗어던진다면,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의 통일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통일은 충분히 불렀다. 이제 그만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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