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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Nov 17. 2019

습관의 기원을 찾아서

선생님의 위로의 말씀 ‘590등! 꼴찌네’


강남으로 전학 후 첫 시험 성적 전교 590등, 학교 총인원 600명이다. 멘붕! 내 뒤 10명은 어떤 심정일까. 이런 성적표를 받은 부모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식 한번 잘 키워보시겠다고 강남 8 학군으로 이사하셨다. 한참 흥행 몰이한 스카이캐슬의 무대, 대치동. 초등학교를 강북에서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사한 후 지옥 같은 입시교육에 던져졌다. 강북과 강남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자유롭다 못해 놀기만 했던 강북 생활이면 옴짝달싹 못하게 교육의 감옥생활이 강남이었다. 처음 중학교 전학 온 날, 수업시간에 단 한 명도 떠들지 않는 아이들, 쉬는 시간에도 떠들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중학교가 이 정도라니...... 다들 미쳤다.


반 분위기가 이러니 금세 적응했다. 모두 공부하니 나도 공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기초지식이 없다 보니 강남 아이들의 학업성적을 따라갈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밥 먹고 공부만 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등수의 변화가 없다. 열심히 노력하는 꼴찌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겠다. 시험성적이 나오는 날, 담임은 반등수 깎아먹는 학생들을 일으켜 세웠다. 난 항상 일어나야 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내 탓만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상처가 곪아서 못된 습관으로 연결될 줄이야. 고등학교 3년은 수업마다 긴장상태였다. 선생님들이 수업마다 지목하면 불려 나가 문제를 풀어야 했다. 못 풀면 맞거나 창피를 당했다.


‘너 나와’


별명도 무서웠던 피바다, 한번 때리면 피를 본다는 가장 무서운 선생님 수업시간. 이때 학생들은 감히 떠들지 못한다. 점심시간 후 수업이어서 노곤함 때문에 졸아버렸다. 난 지목을 받고 불려 나갔다. 나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무안하면 나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나와 웃고 말았다. 눈앞이 번쩍번쩍하더니 내 몸은 어느새 교실 뒤에 있었다. 피바다 선생님의 허벅지만 한 팔 두께로 수대의 빰을 맞고 기절직전이었다. 인성, 인격, 예의, 존중 이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1등은 고위층이며 꼴찌는 하층민, 한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나누기에 적응해야 했다. 돌봄이라고는 없는 혹독한 강남 8 학군의 고등학교 3년은 내적 갈등의 기원지가 되었다.


사람이 3년 동안 꾸준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정신적으로 어디엔가 고장 나는 것은 당연하다. 꼴찌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괴롭혔다. 청소년기의 폭력적인 교육을 받은 세대로써 한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무너지고 고통받았는지, 그 극복과정을 낱낱이 올리고 싶어 졌다. 10대의 상처가 20대로 어떻게 전이되고 습관화되는지 소상히 알려주고 싶었다. 꼴찌라도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나 답게 사는 것이 등수와는 상관이 없는 시대로 변해간다.  




노력하는 꼴찌학생


내 인생의 절대적 암흑기.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선택권도 없이 고1 담임선생이 나를 이과로 보내버렸다. 숫자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수학이 가장 중요한 이과에 갔으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다.


고등학교와 서도 반등수 깎아먹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하필이면 이과로 와서 제일 중요한 수학을 가장 못했다. 그렇게 3년을 긴장하며 살게 되었는데, 이게 미칠 것 같았다. 강남학교는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들을 보내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 같았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 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나는 여전히 노력하는 꼴찌학생이었다.


열심히 공부는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이, 하필이면 친한 친구는 나와 반대였다. 놀면서 좋은 성적이 나오는 친구였다. 그렇게 같이 지내다 보니 열등감은 점점 깊숙이 쌓여갔다. 친구보다 2~3배는 책상에 앉아있는데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아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무슨 공부비법이 있는 것 아닌가? 내 머리가 돌머리라고 자책하게 되었다. 이제 좋은 대학은 글러먹었고 매나 맞지 말자. 선생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본능적인 생존 방식을 택했다.


나만의 생존 방식


사라지는 것, 내 존재감을 없애고 조용히 가만히 있기. 친구들이 나를 볼 때, 멍 때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니 칠판만 바라보았다. 그러니 성적이 오를리 없고 집에 와서 책상에 앉아 졸다가 끝나는 경우가 일상이 되었다. 시험을 망치고 스스로 자책하고 화를 내는 것을 반복했다. 안 좋은 습관의 시작이다.


성적표 학습평가에 항상 적혀 있던 말, ‘의지박약, ‘집중력 부족’. 무서운 매질을 견디기 위해 정신을 놔버린다. 혹독한 현실을 잊기 위해 고통을 회피하는 습관이 이때 생기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이 습관이 커져서 은둔형 외톨이로 연결되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학생들의 대표적인 갈등 회피형이다. 사랑의 매로 포장된 폭력은 생존을 위한 여러 가지 습관을 만들어 갔다. 덕분에 고등학교 졸업할 때 자존감은 바닥상태였다.


성인이 된 후 멍 때리는 습관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를 5분 이상 할 수 없었다. 상대방과 대화하다가 뇌 회로가 딱! 끊어지는 것 같다. 3년의 습관이 자동화되어 버렸다. 듣기가 안되니 말하기도 어설퍼졌다. 자신감이 떨어져 어휘력도 줄어들었다. 이러한 불능 상태는 의도치 않은 묵언수행처럼 되어 버렸다. 한국말도 안 하면 단어를 잊어버린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처럼 얼마나 10대 청소년기가 중요한 지 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열등감, 그것은 갈등의 진원지.


소수의 우등생 빼고 다수의 열등한 인간을 만들어 가는 입시제도, 나는 오랜 시간을 선생님과 학교를 증오하고 있었다.  습관성 자기 비하로 자기 계발서를 얼마나 읽었는지 모른다. 열등감 극복하기 쉽지 않았다. 자칫하면 삶이 송두리째 파괴될 뻔했다. 지난 과거 폭력적인 학교환경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어른의 한마디가 한 아이를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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