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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May 16. 2019

측은함, 자살한 사람의 방

파란만장 감정지도

어두컴컴한 방안에 내가 누워있다. 살짝 한기가 들고 공포감이 밀려온다. 다른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악몽이다. 손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허공을 휘젓듯 애타게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아무것도 손에 닿지 않았다. 문득 어둠이 서서히 눈에 익어갈 때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을 맨 여자가 보였다. 잠깐 깜짝 놀랐다. 의외로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나 자신이 이상했다.


천천히 방에서 일어나 목을 맨 여자의 시체를 한 바퀴 돌며 살펴보았다. 고뇌와 비탄에 잠긴 얼굴, 알듯 말듯하다. 분명 낯이 익은데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긴 생머리로 가려져 있는 검퍼런 얼굴, 어깨에 검은색 끈을 하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녀는 아름답고 우아했으며 매우 지적으로 보였다. 멘살이 드러난 긴 두 손과 발목은 허공에서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자살했을까?"


갑자기 방안에 어둠이 걷히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과 나는 자살한 그녀를 잡고 방안에 눕혔다. 그녀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죽어있는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축원을 올렸다. 그녀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보며 헝클어진 머리를 넘겨주었다. 눈을 뜨고 죽어있던 퍼런 그녀의 얼굴과 몸은 눈이 녹듯 땅으로 꺼지고, 영혼은 나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사라졌다. 


눈을 떴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다. 의식이 현실로 돌아와 문득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 전 친구가 찾아와 너무나 슬픈 이야기가 있다며 내게 말했었다. 자신의 친구 여동생이 자살한 사연을 들었다. 살아생전 외모가 너무나 예뻐서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 때문에 우울증으로 자신의 방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했다. 


"왜 내 꿈에 나타났을까?"


이 꿈을 계기로 나는 그녀에게 축원을 해준 것에 주목했다. 내 몸하나 챙기기도 급급했던 지난날에 비해, 비록 꿈이라도 타인을 보는 감정이 한층 성숙해졌다고 보았다. 알지도 못하는 그녀가 측은했고 안타까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정에서 멈추지 않고 축원이란 행동은 인격발달의 상징적 의미였다. 나는 과거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있었다. 타인과 공감하려는 노력은 생각조차 못했다. 나 하나 살기 급급했다.


이것으로 나는 정신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면서 나의 신경증적인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측은함은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려는 감정이며, 인간관계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이 불행하고 치료가 필요한 정신적 상태이면, 측은함은 자신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감정에 빠지고 불행하게 만든 불특정 다수의 가해자를 비난하는 패턴으로 흘렀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자신부터 성숙해지고 행복해져야 측은함은 사회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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