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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Apr 22. 2019

연애의 법칙 - 3

아니마와 아니무스

3. 남성 내면의 여성성(아니마)

우리 무의식에는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존재한다. 아니마는 남성 속의 여성, 아니무스는 여성 속의 남성을 말한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개인적인 무의식의 내용과 원형적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 남성 내면에 여성성, 여성 내면에 남성성은 여러 가지 요소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중 가장 중요한 지점은 아이의 성향이 결정짓게 되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 어른들의 관점에서 사소한 일이 아이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된다. 나의 경우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감정의 도화선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두 분의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셨다. 군사정권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 가족 여성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교육받지 못한 두 할머니는 비교육적으로 자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여기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다음 세대까지 대물림이 되었다. 나는 그 당사자이며 왜곡된 여성관을 받았다. 할머니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원한다. 반면에 할아버지들은 창조적인 삶을 원했다. 


여성은 지적 무능과 남성은 경제적 무능으로 갈등의 시작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남편들의 경제적 무능으로 항상 부부싸움의 원인이었다. 자연스럽게 여성이 가정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고, 남성은 부권을 상실하고 무능한 사람이 되어갔다. 놀라운 사실은 3세대에 걸쳐 똑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필자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가 되어갔다. 나의 할아버지 아버지 나는 똑같은 문제로 반복되는 갈등 때문에 괴로워했다. 나는 뒤늦게 이것을 알아차림으로써 벗어날 수 있었다.  


여성의 지적 무능 vs 남성의 경제적 무능


‘공동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집단이 요구하는 나의 태도, 생각, 행동규범, 역할을 분석심리학에서는 페르 소나 또는 외적 인격이라 부른다. 사람이 외적 인격을 가지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세계에도 외적 인격과 매우 대조되는 태도와 자세, 성향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내적 인격이라 부른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바로 이 내적 인격을 말한다


내적 인격은 자아가 내면세계와 관계를 맺는 징검다리와 같은 것으로서 나와 무의식의 더 깊은 층을 이어주는 매개자이다.  - 이부영 저 아니마와 아니무스


엄마와 아빠의 반복되는 갈등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무능한 사람으로 될 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집단 사회가 요구하는 태도와 규범을 강요로 받아들였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교육시스템, 낮은 성적 때문에 집단구타와 수치심 주는 행위, 경제적 불안정으로 갈등과 불안은 인격형성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는 철학과 인문학서를 읽음으로써 내적 인격의 목마름을 채우려 했다. 불안정한 환경은 내적 갈증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무능한 사람으로 되었다.


불안정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은 올바른 이성관을 가질 수 없다.


왜 그럴까?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외적 인격과 내적 인격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막연하게 바깥세상이 두려워졌다. 또 강한 여성은 왜 두려워진 것인가? 20년에 걸친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비추어진 강한 여성성에 거부감이 생기고, 그 강함이 내면의 안정감을 깨버리게 만들어서 거북한 느낌을 들었다. 생활력이 강한 두 여성의 모습은 정신적 안정감을 주지 않고, 불안한 상황만 연출이 되어서 반항심만 점점 커져갔다.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자란 시절은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대한 교육은 전무했다. 그래서 의무교육을 마치고 나오니, 마치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고 야생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한동안 이성이 옆에 있는 것이 불안해서 도망 다녔다. 소개팅은커녕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 무렵부터  나의 내면의 여성성은 빛보다 그림자의 영역이 커지고 있었다.


나 자신이 여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듯이 여겨졌다.


돌이켜보면 유아기부터 10대 시절까지 나는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감성적이었다. 외모와 내면에 여성적 성향이 많았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어릴 때 남성들로부터 몇 번의 성추행이 있었다. 어린아이에게 이러한 경험의 여파는 무의식 깊이 각인되어 정신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 하여 성욕은 나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고 욕망과 왜곡된 윤리의식이 충돌하게 되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어 성욕은 죄의식으로 이어지고 왜곡된 금욕주의자가 된다. 연애를 하게 되면서 성욕이 강한 여성을 만나면 결국 도망쳐 버린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성인이 정신적으로 유아기 상태라면, 원시적이고 에로스적인 환상을 가진다. 말하자면 상대에게 육체적으로 끌리면서 자신 스스로 아닐 거라고 최면을 건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이런 모순된 상황에서 나는 오랫동안 여성스럽고 약하고 감각적인 여성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연인관계로 발전하다가 작은 다툼 속에서 거친 면이 드러나면 회피하고 도망가는 게 문제가 되었다. 반면 남성적이고 자유분방한 여성은 거부감과 동경을 느꼈다. 문제는 내가 거부하고 도망칠수록 반드시 어디를 가도 만나게 되었다. 만나고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아이러니하게 사회에서 만난 첫 여성 직장 상사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강한 여성을 만남으로써 충돌과 성장을 반복했다. 이런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자극이었다. 결국 이 문제를 극복하게 만들어준 여성은 오랫동안 피해 다녔던 강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왜 싫어하는 것을 계속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 걸까?  바로 이 부분이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매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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