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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Apr 20. 2019

경이로움, 달라이 라마와 함께 30분

파란만장 감정지도

다람살라(Dharamsala)는 인도 히마찰프라데시 주에 있는 마을로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다. 히말라야 산맥 캉그라 계곡에 있으며, 달라이 라마의 궁이 있다. 나는 인도 북부를 여행하며 각 종교성지를 찾아다녔다. 평소 티베트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불교 겔룩파에 속하는 존재로 이어져 환생한 라마이다.  


몽골어 ‘달라이’는 갸초(Gyatso, 지혜를 가진 영혼)와 함께 ‘바다’를 뜻하며, 티베트 ‘라마’는 산스크리트어의 ‘ 구루’에 해당하는 말로 ‘영적인 스승’이라는 뜻이다. 즉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뜻이다.       - 출처 위키백과


겨울철 12월 밤 히말라야 산자락에 위치한 다람살라 맥로드 간지(mcleodganj)는 상당히 추웠다. 배가 고파 티베트 식당에서 둑빠를 시켰는데, 우리나라 음식 수제비와 비슷했다. 아무리 봐도 티베트 사람은 외모도 문화도 한국인과 닮아있었다. 아무튼 티베트 불교도 공부하고 달라이 라마도 만나 뵐 겸, 기약 없는 장기 숙박을 하게 되었다. 


다람살라 맥로드 간지 - 출처 구글

워낙 유명한 관광지여서 수많은 여행객들이 와 있었다. 세계 각국 배낭족의 필수코스가 되었다. 일주일은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히말라야 트래킹도 즐겼다. 달라이 라마가 언제 오실지 모르니, 마음 편히 티베트 박물관에서 공부도 하고, 김치도 담가먹고 외국인들과 파티도 즐겼다. 사원에서 승려들의 수행법도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신기한지, 몇 명의 승려와 친구가 되어 티베트 불교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두 달쯤 한가로이 설산을 보며 차를 마시고 있는데, 여행친구 왈 드디어 그분이 오신다고 소문이 났다. 달라이 라마 노벨 평화상 기념행사가 열리며, 매해마다 치르는 가장 큰 축제였다. 두 달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당일 아침 일찍 길가에 나가니,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너무 많아서 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데, 티베트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오늘 기념행사를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인 줄 알았다.


물어보니 그들은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중국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걸어서 넘어왔다고 했다. 설마 그 먼 거리를 걸어서 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오직 한 분을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넘어오다니... 그것도 히말라야를... 사람들은 지쳐있었지만, 눈빛은 살아있었다. 난 입을 벌리고 끝없는 행렬에 충격에 빠졌다. 경이로웠다!  


- 출처 달라이 라마 홈페이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다. 행사장으로 급하게 뛰어가서 자리에 착석했다. 화려한 군무로 시작해서 티베트 전통 악기가 울려 퍼지며, 다양한 인종들이 운동장에 섞여 춤추며 즐거운 시간이 끝나고 2부가 열렸다. 티베트 독립을 위한 청년들의 시간이었다. 교과서에서 보던 우리 항일운동 때 모습이 생각났다. 그들은 티베트 독립운동의 진행상황을 관중들에게 알리고 기념행사가 끝이 났다.


다음 날 달라이 라마를 만나기 위해 사원에 가서 신청을 했다. 외국인은 특별히 따로 만날 수 있었다. 아마 지금은 달라졌을 수 있지만, 난 운이 좋았다. 현관에서 경호원들이 몸수색을 했다. 예전에 중국인이 사원을 방문해서 달라이 라마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보안이 더 강화되어서 이해해달고 말했다. 


- 출처 달라이 라마 홈페이지

만나는 장소는 사원안에 있는 산책로 같았다. 일렬로 서서 기다리고 달라이 라마가 다가왔다. 한 명씩 흰색천을 목에 걸어주면서 목례하며 눈을 마주쳤다. 어떤 백인 여자는 그를 보자 통곡을 하며 울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대단히 감격스러웠나 보다. 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이렇게 경이롭고 신비로운 적이 없었다. 다른 별에 온 것 같았다.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다가가서 목례를 하고, 달라이 라마는 내 목에 흰 천을 둘러주며 눈을 마주쳤다. 아늑하고 인자한 눈이었다. 웃으며 그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습니다.'

'멀리서 왔구나'


이후 몇 번의 질문과 대답으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심오한 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동문서답을 한 것 같았다. 의미 있는 답을 주신 것 같은데, 워낙 미숙한 상태였 던지라 아쉬웠다. 돌이켜보면, 내가 한 나라와 종교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을 받은 분과 30분을 함께 한다는 것이야말로 신기했다. 이후 용기가 생겨 교황 바오로 2세와의 만남도 도전했었다.


- 출처 달라이 라마 홈페이지


다음날 티베트 사람들을 위한 법문이 열렸다. 티베트어로 하는 법문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금강경 몇 문구는 낯이 익었다. 한국 불교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옴마니반메훔이 한 마음으로 울려 퍼졌다. 매일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다람살라의 두 달은 사람을 보는 내 태도가 바뀌게 되었다. 만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소중한 이틀이었다.  


 지혜의 추구는 경이로움으로부터 출발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난관에 부딪혀 경이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자신이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사람들이 철학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목숨을 건다는 것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정말 내가 본 관경이 이해되지 않아 난관에 부딪혔고, 고민했다. 철학적 사유의 출발이었고, 무언의 질문을 나 스스로 받은 느낌이었다. 너무 어린 나이라서 어떤 해답도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적인 개념도 경험적인 척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다 높은 성숙의 길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7살 때 시골 할머니 집 밤길을 걸으며,  별이 쏟아지는 은하수와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반딧불에서 느낀 경이로움이 내 머릿속 어떤 스위치를 올린 것 같았다. 자연은 순수한 경이로움을 주었고, 인간이 준 경이는 생각을 주었다. 이제야 나는 나의 체험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구글 이미지


한 번은 티베트 승려들이 모래로 만다라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승려들은 며칠을 필사적으로 집중해서 만다라를 그렸다. 완성된 만다라를 한 승려가 일순간에 손으로 쓸어버렸다. 옆에서 보던 한 외국 여성은 그 모습에 보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도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말로 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경험은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바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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